소크라테스가 들려주는 지혜 이야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11
서정욱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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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도 작고, 몸에 털도 많고, 들창코에 짱구 머리. 게다가 팔다리도 가늘도 누더기를 입고 다니는 그런 사람에게 신이 말했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모르는게 너무 많은 사람에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니.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록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이 이상한 남자, 소크라테스일까?   이번에 만난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의 지혜 이야기다.  물론, 저자는 서정욱 교수다.  한동안 푹 빠져 있는 배제대학교 심리철학과 교수님이 이번엔 어떤 형식으로 지혜에 대해서 알려주실까?

 

 

 

 바다 속 외땀 섬, 아고라는 굉장히 작은 섬이다.  하지만, 아고라 밑에 세상엔 온갖 바다 속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바다 속 동물들은 바다 밑을 땅이라 부르고, 높은 바다를 하늘이라 부른단다.  하늘엔 귀여운 멸치 떼가 만드는 구름도 고등어 떼가 만드는 먹구름도 있을 뿐 아니라, 미역과 다시마가 이루는 숲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넓은 바다를 가로 지르며 여행을 하는 철새 도요는 아고라는 끝이자 시작인 곳이라고 한다.   아고라를 뒤덮은 거대한 구름이 나타났다.  큰고래가 이끄는 고래 떼.  큰 고래 탈래스는 로고스를 찾아 가는 중이란다.   고래들이 사는 세상은 아고라 밑에 동물들이 사는 세상과 다른 곳, 철학이라는 세상이란다.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고라에 여행자 날치 선생, 프로타고라스가 들어왔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롭다.  모든 궁금중은 프로타고라스 선생이 해결해 준단다.  프로타고라스 선생은 '세상의 중심은 바로 너희들 자신이란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니. 그리고 아고라라니 이보다 멋진 것이 있을까?  프로타고라스 선생으로 부터 아고라의 동물들은 멋지게 말하는 법도 배우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식도 배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제 아고라의 어린 물고기들은 집을 나가고, 작은 소라개들은 다른 소라개들의 집을 빼앗기도 한단다. 또 다른 하늘을 보려고 나갔다가 갈매기에게 잡혀먹히기도 했단다.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니 맘데로 해도 된다고 믿게 된 아고라의 물고기들.  대장 상어, 카이레폰이 델피 언덕을 찾은 이유는 아고라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였다.  모두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모양이 되어 버린 아고라.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지혜로운 자를 찾아야 하네. 아는 것은 모르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아는 것이니, 모르는 자를 찾도록 하게나.  지금 세상에서 지혜가 감춰졌듯이 드러나지 않은 모습으로 드러날 걸세."(p.49)

 

 작은 소라게 플라톤은 궁금했다.  세상에 모든것이. 항상 물음표를 그리고 있는 못생긴 달팽이 소크라테스에게 큰고래 탈래스가 찾는 로고스를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정말 못생긴 아저씨를 찾아갔는데, 로고스를 물어볼 수가 없다.  아저씨가 자꾸만 질문을 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먹으라고 하니 배부르고 졸립다. 로고스를 알아야 하는데.. 아저씨가 알긴 아는걸까? 거기에 아저씨만 볼 수있는 다이몬.  신기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대장 카이레폰이 뜬금없이 소크라테스 아저씨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이 아닌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맞을까?  아저씨와 함께 '지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프로타고라스, 델피신전, 탈래스, 카이레폰, 소크라테스, 다이몬 그리고 플라톤까지.  철학개론에서 열심히 외웠던 인물들과 용어들이 물고기들에 이름을 빌려서 나오고 있다.  이렇게 재미있게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이야기 해도 되는 걸까?  조각술, 산파술이라고 불리우던 소크라테스의 독특한 대화법은 그의 부모의 직업에서 따온 말이란다.  산파가 아기를 낳도록 도와주거나 조각가가 조각을 하면서 도구가 필요한 것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제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질문과 대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카이레폰이 델피신전에서 받아온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소크라테스'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하게 된다.

 

  

 달팽이 소크라테스와 소라게 플라톤은 여행을 통해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하는 지덕합일설, '안다는 것'은 바로 '덕'이라는 것과 함께 악덕이나 죄를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 나간다. 그러기 때문에 덕은 행복과 연결된다.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의 무지한 행동이 불행하게 하고 죄의 나락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험이라는 것은 어떨까?  경험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낀 것에 의해서 형성된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지식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경험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의해서 우리 자신이 속지 않으려면 변하지 않는 참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참된것이 진리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세상은 여전히 소피스트들이 설치는 곳이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만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속에서 남에 이야기를 듣는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고, 소크라테스에겐 사형이 선고된다.

 

 왜 소크라테스는 그 법을 그대로 따랐을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때문에 그랬을까?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될까? 이 영혼에 대해 가장 먼저 이야기한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으며, 영혼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죽음은 꿈꾸지 않고 자는 것이고 사람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소크라테스의 영혼 불멸에 대한 '영혼론'.  그의 '영혼론'의 진위는 알 수가 없다.  철학자들의 모든 생각이 진리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지혜. 지혜를 이끌어 내는 대화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도움을 주는 것임에는 확실하다.  그리고, 이 어려운 철학을 동화읽어내리듯 알 수 있다는 것.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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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더스가 들려주는 인구론 이야기 경제학자가 들려주는 경제이야기 4
김용조.이강복 지음, 황기홍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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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맬더스와 애덤스미스 하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인구론', '보이지 않은 손'하고 툭 튀어나온다.  고교시절 죽어라 외웠던 것이 스무해가 지났는데도 튀어나오는 걸 보면, 어린 시절 교육은 중요하다.  그런데, 인구론이 뭐였지?  '인구론'이니 인구에 관한 것이겠지만, 어떤걸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 경제가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서 알아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애덤스미스가 맬더스보다 조금 더 각인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코즈의 '외부효과'이야기를 읽고서, 굉장히 지루했었던 경제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오는 걸 보고, 경제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었다.  그렇게 손에 든 이야기가 <맬더스가 들려주는 인구론 이야기>다.  꽤나 많이 접한 것 같은데, 설명을 하자니 콱 막혀서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인구론'. 들어가 보자.

 

 

 

 맬더스는 지금으로부터 180 여년 전<인구론>을 저술한 영국의 경제학자다.  인구론은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고전중에 하나다.  1882년 구스타프 콘은 '지금까지 모든 국가경제에 기반이 되는 중요한 자연법'이라고 평가했고, 1938년 독일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세계의 문헌 중 가장 멍청한 책'이라고 평가를 했었다. 21세기를 살고있는 우리는 맬더스의 <인구론>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인구론>은 인구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닌 저출산 문제와 지구의 생태환경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1798년에 맬더스 쓴 <인구론>은 어떤 책이기에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 되어지고 있을까?

 

 <인구론>이 쓰여진 19세기 초 영국의 대도시 런던은 자본주의가 서서히 싹트면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산업혁명으로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페티는 '인구가 적다는 것은 곧 빈곤하다는 것을 의미하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은 '인간은 완전하다. 적어도 영원히 발전할 수 있다'라고 주장을 했었다. 프랑스의 콩도르세는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적 개관>(1793)을 통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식량은 점차 늘어나며, 인간이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더 이상 인구를 늘리지 않음으로써 인구가 억제되어 인간의 행복은 달성 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렇담, 인구론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맬더스가 제기한 중요한 주제의 첫번째는 어떤 개혁가가 자본주의의 여러가지 나쁜 점들을 개선할수 있다해도 자본가 계급과 가난한 노동자 계급이라는 계급 구조는 없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둘째, 비참한 빈곤과 고통은 모든 사회에 있어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이기 때문에 빈곤과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담, 맬더스는 이 주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을까?  우선은 맬더스의 인구증가에 대한 생각을 알아봐야 한다.  당시 사회는 산업혁명의 초기였고,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맬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1,2,4,8,16,32...)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1,3,5,7,9...)으로 증가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결국엔 식량 생산의 부족으로 끔찍한 미래만이 남는 다는 주장이었다.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에 대해서 맬더스는 '인구 억제 프로젝트'를 주장한다. 첫째, 인구는 생활필수품의 양에 의하여 억제된다.  둘째, 강력하게 억제하지 않는다면 인구는 최저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함께 증가됨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어야 한다.  셋째, 인구의 증가를 사전에 억제하는 방법으로 늦은 결혼과 어린이의 사망률을 높이고 굶어 죽는 사람을 늘리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구빈법(생활 능력이 없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만든 법률)을 완전히 철폐하고 목장을 농경지로 전환하도록 촉진하는 것이었다.  물론, 맬더스만이 이렇게 주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윌터 롤리는 인구의 억제 수단으로 전쟁과 질병을 지적한 적이 있고, 1677년에 매튜헤일 역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1753년에 로버트 윌리스 역시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를 이야기한적이 있지만, 그 당시에 맞는 현실적인 이론과 신학적인 문제(맬더스는 목사였다)등으로 <인구론>은 쟁점의 중심이 되었다.

 

 

 

 목사이자 경제학자인 맬더스의 <인구론>은 사회적 빈곤이 인구의 증가에 의한 결과라고 정의하고 출산의 제한을 주장하였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인구론>이 주장하고 있는 '인구 억제 프로젝트'는 '빗나간 예언'이다.  인구 과잉의 문제보다 저 출산의 문제는 사회 여러곳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저출산은 보다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는데 1960년대 여성 1인당 출산율은 5명 이상이었지만, 2009년 통계에서는 1.15명으로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국가들 중 최저 수준이다.  출산률 감소는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요인 등 다양한 축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가장 큰 요인은 초혼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인구 감소는 노동 공급이 감소하고 노동력의 고령화로 노동 생산성이 낮아지는 등 미래의 성장 동력 기반의 붕괴 가능성 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맬더스의 <인구론>은 부유한 선진국에서는 불길한 예언으로 부터 해방되었다고 좋아할 수 도 있지만, 오늘날 지구 인구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빈국에서는 여전히 '맬더스의 비극'이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맬더스의 중요한 업적 중에 하나는 공황의 필연성을 발견한 점이고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과잉 생산 체제라는 것, 공황의 원인이 유효 수요 부족에 있다는 것을 언급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점과 이런 모든 그의 논리들이 후대의 여러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반박할 것이 없는 듯 하다. 그리고, 맬더스의 '인구 억제 프로젝트'를 만나지 않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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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주홍색 연구 : 최신 원전 완역본 - 셜록 홈즈 전집 0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바른번역 옮김 / 코너스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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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코난 도일에 흥분하고, 셜록에 흥분하는 나는 셜로키언이다.  아니, 셜로키언이라고 생각했었다.  셜록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고 여겼었다.  벌써 몇번째 다른 버전으로 <주홍색 연구>를 읽었었고, <네 사람의 서명>,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뿐 아니라 꽤나 많은 셜록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셜로키언들의 이야기를 다룬 <셜록미스터리>도 무리없이 읽었기에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분명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낯설다. 새로운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구름위에 놓여져 있는 이야기들 처럼 시간과 함께 퇴색되어 버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1. 문학지식-없음.  2. 철학지식-없음.  3. 천문학지식-없음.  4. 정치 지식-거의 없음.  5. 식물학지식-때에 따라 다름. 벨라도나와 아편, 독성 물질 일반에 대해서는 해박. 실용적인 원예 지식은 없음.  6. 지질학 지식-실용적이지만 제한적. 여러 가지 토양을 구별가능. 산책 후 바지에 튄 흙탕물 자국을 내게 보여준 뒤, 흙의 생과 경도만으로 그것이 런던 어디에서 묻은 것인지 밝혀 냄.  7. 화학지식-깊음.  8. 해부학지식-정확하지만 체계적이지 않음.  9. 범죄 문헌지식-막대함. 금세기에 자행된 모든 범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듯함.  10. 바이올린 연주에 능함.  11. 목검술, 권투, 펜싱 실력이 뛰어남.  12. 영국 법에 대한 실용적 지식을 지님. (p.25)

 

  아프카니스탄에서 군의관으로 근무를 하다 제대후 비싼 런던에서 하숙집을 찾다 홈즈를 만난 왓슨박사가 한동안 홈즈를 관찰 한 후 쓴 기록이다.  왓슨을 보자마자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오신 모양이군요"(p.15)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 이상한 룸메이트는 유식한 만큼이나 무식한 인물이다.  현대 문학, 철학,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고, 19세기를 살고 있는 문명인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내가 알고 있는 셜록 홈즈가 맞는 걸까?  맞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알아도 머리가 아픈 홈즈에게 필요없는 것은 그냥 넘기고 싶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역사상 가장 특출한 사립 탐정 셜록 홈즈와 그의 사건 기록자 왓슨이 베이커가 221B번지에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왓슨을 놀라게한 홈즈의 첫번째 명추리가 시작된다.

 

  로리스턴 가든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벽위에 쓰여진 'RACHE'. 남자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녹 J.드레버로 밝혀지고 그곳에 떨어진 유일한 증거품은 반지 하나.  드레버의 죽음 이후 드레버의 비서인 조지프 스탠거슨이 핼리데이 프라이빗 호텔에서 살해된체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1880년에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내겠는가?  드디어 홈즈의 시간이 왔다.  왓슨이 깜빡 넘어갈 수 밖에 없을 정도의 추리력을 펼치는 홈즈. 21세기에서나 가능한 일들을 19세기에 펼쳐내기 시작한다.  미드시리즈 CSI에서나 이용할 것 같은 혈흔 검사법을 알아내고, 발자국 관찰로 범인의 윤곽을 잡아내고, 행동분석팀의 프로파일링 기법보다 더 빠르게 법인의 상을 그려낸다.  어느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때 혼자서 해결을 해낸다.  일반인을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탁탁탁 몇번의 움직임만으로 홈즈는 사건을 해결해 버렸다.  하지만, <주홍색 연구>는 이제 부터 시작이다.  

 

  이야기는 알칼리 대평원에서 부터 시작된다. 죽음에 문턱에서 존 페리어와 루시 페리어는 종교 탄압을 피하여 새로운 낙원을 찾아 황량한 미국 서부 지대를 횡단한 모르몬교도인들에 의해서 구출된다.  존 페리어와 루시 페리어는 모르몬교도를 살게 되지만, 모르몬교도와의 혼인만을 인정하기에 일부다처제가 당연한듯이 받아들여지는 그곳에 존은 루시를 남겨두고 싶어하지 않고, 때마침 루시는 비모르몬교도인 제퍼슨 호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자신들의 규율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만이 있는 곳.   모르몬교의 교리와 규율속에서 존과 루시는 죽음을 맞이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제퍼슨 호프는 드레버와 스탠거슨을 쫓으면서 이야기의 전말은 들어나지만 황량한 미국 서부의 역사 속에 서려있는 그들의 원한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렇게 사건은 해결이 되지만, 역시나 모든 공은 런던 경찰국의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에게 돌아가고, 아마추어 탐정인 셜록 홈즈는 왓슨에 위로를 들을 뿐이다. 

 

"내가 이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일기에 적어두었으니 언제든 세상에 발표할걸세.  그때까지 자네는 보물을 꽁꽁 숨겨두고 그저 성공했음을 음미하는 로마의 구두쇠처럼 만족하게나"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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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거리에서 1
오쿠다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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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라, 100퍼센트의 악도, 100퍼센트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p.7 작가의 말 중에서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한여름, 구와바타 시립 제 2중학교에서 한 소년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남자아이들의 담력테스트정도의 단순한 사고사나 자살로 단정을 짓고 싶은 학교와 달리 경찰은 아이등에 서 발견된 피하출현의 흔적으로 학교 폭력을 결부시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와 연관이 있는 네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학교, 유가족, 가해 학생, 경찰, 검사, 언론이 이야기하는 한 소년의 죽음. 어떤것이 진실인지 아직은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아니, 어쩜 이들 모두가 진실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모든 일에는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소설의 서두에서 세상어디에나 있는 '중학생의 왕따'문제를 다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아이가 속해있는 곳에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내 아이에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이기에 단 한줄의 글이 심장을 쿵쿵거리게 만든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문제.  소설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들은 모두가 자신에 위주로 그려져 있다.  겉모습 만으로도 유약한 도련님의 인상이 강한 아사히초의 커다란 포목상 집 아들인 나구라 유이치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  나구라 유이치의 죽음 이후 경찰은 아이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면서 아이에게 상해를 입혔던 네명의 소년들을 체포하게 된다.  14세인 사카이 에이스케와 후지타 가즈키는 경찰에 입건되고 14세 미만인 이치카와 겐타와 가네코 슈토는 아동 상담소로 보호 조치가 되면서 사건을 바라보는 여러개의 시각들이 보여지기 시작한다.  아들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유이치의 부모와 포목점에 눈을 돌리는 유이치의 삼촌.  자신의 아이는 무죄이고 다른아이에게 휩쓸렸다고 믿는 네 아이의 부모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시선들.

 

'중학생은 잔인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은 혼자 서는 과정에서 터지는 고름 같은 것이다.  다들 더는 어른들에게 울면서 매달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들끼리 생존 게임을 시작한다.' (p.70)

"맞아. 거의 집단 폭력 수준이야. 어른이라면 눈을 돌리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제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혼자라는 선택지가 없어.  중학생이란 생물은 연못 속의 물고기 같은 존재라,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밖에 없어." (p.260)

 

  우수게 소리로 우리나라의 전쟁이 안나는 이유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같은 중학교 학생들 때문이라고 한다.  그만큼 중학교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이면서도 훌쩍 커버린 겉모습에 함부로 위화감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도통알수없고 궁금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모두 같은 물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아이들. 가장 잔인한 시기에 생존 게임을 시작하는 아이들.  이 말이 어쩜 이렇게도 와 닿을까?  일본과 우리의 현실이 그리 다르지 않은지, 『침묵의 거리에서』속 일본의 중학교는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학교와 선생님들은 왕따 문제를 척결하기 위해서 나서지만, 이 문제는 고름이 되어 터져도 문제고, 그렇지 않을때도 문제로 다가온다.  작년에 아이반에서도 가해자였던 학생이 피해자가 되어 전학을 간 경우를 본 적이 있었다.  쉬쉬하면서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숨을 막히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아이의 입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는 피해와 가해의 차이가 없다.  '구와바타 시립 제2중학교 근처의 숨죽이면서 침묵하고 있는 주변 역시 똑같다.  여러사람이 말풍선을 터트리고 있지만 조용한 모습으로 있는 표지가 『침묵의 거리에서』를 한장면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일러로 다가오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 자식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 네 소년의 부모들에게 죽은 학생을 애도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모든 걱정이 오로지 자신의 자식에게 쏠려 있을 것이다. (p.185)

 

  중학생이 되어 스스로 어렴풋하게 겨층을 나누기 시작하는 아이들.  인기가 많은 아이, 인기가 없는 아이, 인정받는 아이, 무시당하는 아이, 모두 자신의 위치에 무관심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나구라 유이치는 스스로 그룹을 택해서 뛰어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성가셔 해도 졸졸 쫓아다닐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의 학교 생활이 어떠했을까?  그녀석에 눈에 산처럼 보이는 아이들 외에는 여전히 나구라 유이치는 부자집 도련님이었다.  그러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흥'하면서 눈을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도련님의 죽음은 분명 아픔으로 다가오지만, 소년의 죽음에 관련된 네 소년의 부모들에게 죽은 아이를 애도할 여유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제 자식이기에, 모든 걱정이 오로지 자신의 자식에게 쏠려 있기에 누군가에게 눈을 돌리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구라 유이치를 처음 발견한 교사 이지마 히로시, 학년주임 나카무라, 교장 시시도를 비롯해서 이지마의 동창인 형사 도요카와, 검사 하시모토 히데키와 주오 신문기자인 다카무라 마오까지 구와바타 시립 제2중학교라는 울라리 안에 있는 아이들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매섭게 다가온다.

 

  '부탁'이라는 정중한 어구를 가장한 휴대 전화 협박문자, 죽은 소년의 등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 혐의를 부정하는 모범생들, 엇갈리는 아이들의 증언, 가해 학생 부모들이 보일수 밖에 없는 다른 얼굴들, 신참 기자와 젊은 검사와 말단 형사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보이지 않는 소문들은 굴절되고 왜곡되면서 구와바타의 작은 마을로 퍼져나간다.  사건의 행간에 있는 사람들이 올라가 본 지붕위와 모든 진실을 지켜 본 교정의 은행나무는 아무말 없이 그대로 서있을 뿐인데, 퍼져나가는 소문과 진실의 간극은 알 수가 없다. 사건 발생후의 시간의 흐름속에 과거의 아이들이 만나는 시점을 그려놓음으로써 용의자로 여겼던 아이들이 우리가 믿고 있는 내 아이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매 장마다 새로운 가능성이 등장하고 사건의 진실은 더욱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결코 그럴리가 없을거라고 믿는 부모의 믿음과 의리파라고 인정하는 친구들의 믿음.  하지만 이 속에 분명 죽은 아이는 존재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을 그냥 사고로 넘길 수는 없다.  미미여사의 『솔로몬의 심판』을 읽은 후에 만난 『침묵의 거리에서』는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가 다르고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무거운 주제를 통통 튀게 만들고 있다.  사건의 진실은 아직 모른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2권을 통해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에 서서히 다가갈수록 두렵다.  사람의 민낯을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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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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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누구도 지금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과거의 한점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지면서 하나의 선을 이루고 그 선이 현재를 만들고 또 그순간의 점들이 또 다른 선을 이어 미래를 만들어 낸다.  과거로 갈 수 있는 토끼굴을 발견한 순간 제이크 에핑은 현실에서 미래로 가는 선을 끊어버렸다.  그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었지만, 베트남전이나 세상을 혼란스럽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일들이 사라지고 더 나아질 거라고 믿는 앨의 말에 고등학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케네디를 살리기 위해 과거 속에 발을 디밀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엘로운맨의 죽음. 블랙맨.  하지만 단순하게 케네디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넘어온 1958년은 제이크에게 있어 현실의 삶이었던 2012년과 전혀 다른 삶이 아니다.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의 교류가 있었고,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1962년 말에서부터 1963년 초까지 이중생활을 살았다.  조디와 킬린의 캔들우드에서 보내는 즐거운 생활.  그리고 댈러스에서 보내는 그 나머지 생활.'  (p.271)

 

  분명 그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과거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 제이크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만나면서 그의 삶을 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속에 있는 그의 사람들.  그가 미래에서 왔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는 이들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고, 그들을 제이크는 외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계속해서 '변화를 싫어하는 과거'라는 표현을 쓰면서 과거를 변화시키려는 제이크를 붙잡는다.  머릿속으로 그린 미래가 고통없는 삶으로 다가올지 예전과 같은 삶이 되어 다가올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오직 과거에 갇혀있는 제이크에게 미래는 앨이 꿈꾸던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다.  어설프지만 아주 용감한 여인, 새디의 전 남편조차도 과거의 변화를 끊어버리는 존재로 나타나고, 오스왈드 주변의 인물들 조차도 앨이 제이크에게 알려줬던 모습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 서거한 대통령을 살릴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이런 단순하리만치 간단한 질문 하나로 인해 제이크의 인생은 격변하는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버린다.  그리고 그 안엔 새디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새디 곁을 돌고 있는 또 다른 축의 역사는 거대한 팬처럼 제이크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새디에게도 강풍을 몰아치기 시작한다.  물론, 그런 바람을 맞는 이가 새디만은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이었다고 해도 교사를 아무런 자격 확인도 없이 채용을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제이크는 조지 엠버슨이라는 이름으로 덴홈 통합 고등학교 대체 교사가 되고 그 과정속엔 제이크와 운명을 같이하는 이들이 함께 커다란 축을 이루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저 작은 날개짓 한번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제이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나비나, 나비떼의 날개짓처럼 제이크 곁에서 펄럭이기 시작한다.

 

'내가 오스왈드를 죽여도 케네디가 암살당한다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되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깨끗이 털고 다시 시작하면 될까? 크랭크 더닝을 다시 죽이고, 캐롤린 풀린을 다시 살리고, 댈러스로 다시 건너오고. 새디를 다시 만나고...' (p.366)

 

  역사속에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할 수 있을까?  내삶을 포기하면서 역사 속 인물을 살려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작가는 제이크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거를 조금씩 바꾸면서 생기는 끈이 어떻게 엉키는 지는 알수 없지만 알수없을 정도로 살짝 살짝 엉켰던 실타래는 이제 풀어 낼 수가 없다고 말이다.  변화를 싫어하는 과거속에 잡혀 있는 한 남자.  이 남자의 행동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작가는 분명 우리에게 보여준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희생시키고 얻은 댓가를 제이크의 눈앞에 보여주면서 제이크에게 케네디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 그리고 새디의 인생을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버렸다면 그저 그런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은 '이야기의 제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이 한편의 소설 속에 현대 정치, 사회, 대중문화의 모든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 내는 세상속에 스펀지처럼 흡수되어 읽는 이를 제이크가 아닌 조지가 되어 새디를 만나고 사랑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기에 역시 스티븐 킹이라고 외칠 수 있게 만든다.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다고 또 다른 과거로의 여행으로 리셋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순간에 독자의 기대를 포기하게 만들면서도 또 다른 희망을 보게 만들어 내는 능력.  대단하다.  가장 원했던 결말이라고 해야하나?  아니, 아쉽다고 해야하나?  어쩌면 요즘 트랜드가 이런 결말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에 읽은 『광해의 연인』의 마지막 결말과 비슷했으니 말이다.  시간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이지만, 희망과 불안이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 가장 옳은것을 찾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한번뿐인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존재는 슈퍼맨뿐일 테니 말이다.  지구의 자전을 돌려 시간을 돌리는 슈퍼맨도 과거의 시간을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지 않았을까?  더 많은 시간이 흐른뒤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는 영원한 미스테리며 가장 핫한 화두중에 하나일 것이고, 스티븐킹이 풀어낸 시간여행은 굉장히 근사하고 가슴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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