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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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눈알'이라고 표현을 한 책을 알고 있다. 『눈알 수집가』.  수집할게 없어서 눈알을 수집하나 싶었는데, 책표지만으로 끔찍함이 몸서리 쳐질 것 같은 그런 책이었고, 여전히 난 책을 책장에 모셔두고 읽지 않고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시리즈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맞다.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눈알 수집가』의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냈단다.  전편을 읽지 않아도 별 상관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전편에 대한 스포가 굉장히 많이 나와서 이 책을 읽은 후 전편을 읽게 될지는 의문이 든다.  전편의 내용을 모두 알아 버렸으니 말이다.

 

 

 

  전편의 스포를 책이 해주고 있으니 써도 될 것 같다.  아이들을 죽이고 눈알을 파내는 잔인한 연쇄살인마 눈알수집가를 쫓아 베를린의 황량한 겨울을 함께 누비는 맹인 물리 치료사 알리나와 범죄 전문 기자 초르바흐.  알리나는 신체접촉을 통해서 미래를 볼수 있고 그를 통해서 범인을 찾아낸다.  범인을 쫓던 초르바흐는 알리나의 도움으로 마지막 희생자를 구해내지만 자신의 아내는 살해를 당하고 아들 율리안은 납치를 당한다.  게다가 '눈알 수집가'로 불리는 살인마인 프랑크 라만은 초르바흐가 일하는 유력 일간지의 수습기자로 어린시절의 공포를 게임으로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다.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자신의 아들을 살인마에게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전편은 이렇게 끝나버렸다.  구해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야기는 새로운 시점으로 시작된다.  아들을 구하기위한 초르바흐와 게임을 하고 있는 라만. 아들을 살리기 위한다면 죽으라는 라만의 메세지에 초르바흐는 자신에게 권총을 겨눈다.  무슨 주인공이 이렇게 어이없게 죽어버릴까?  <왕좌의 게임>마냥 주인공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책인가 싶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분명 초르바흐가 주인공인듯 싶었는데, 나오자마자 죽으니 말이다.  물론 알리사는 남아있다.  전편에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알리사가 만나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계적인 안과의 차린 주커 박사. 낮에는 가장 복잡한 안과 수술을 집도하고, 밤에는 여자들을 납치해 눈꺼풀을 도려내고 강간한 후 버리는 사이코다.  버려진 여자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살을 택하면서 증거도, 증인도 없는 경찰은 눈알수집가 사건에서 활약한 ‘미래를 보는’ 맹인 물리 치료사 알리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알리나는 환영 속에서 주커의 다음 희생자를 보게된다.

 

  이제 이야기는 반전을 들려 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다음 희생자를 봤다고 하지만, 희생자의 얼굴은 언제나 알리사가 알고 있는 엄마의 얼굴.  다른 얼굴을 알리 없는 알리사에게 어린시절 본 엄마, 아빠의 얼굴만이 가능하니 그걸 '봤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은 줄 알았던 초르바흐가 살아있단다.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것 같은 초르바흐. 주커 박사와 라만의 연관관계를 찾고 있는 이들이 움직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다.  휠체어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줄을 놓아버린것 같은 초르바흐에게 알리사의 납치 소식은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알리사가 '본'미래가 자신일지 누가 알았겠는가?  사라져 버린 알리사와 알리사의 안내견, 톰톰.  율리아가 그렸던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주커의 희생자, 타마라.

 

  끊임없이 반전에 반전을 몰고오면서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범인이라 의심하는 순간 여차없이 작가는 다른 사람을 보여주고, 마음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순간 악은 눈앞에서 악마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진짜 '악'인지 알 수가 없다.  악마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려오면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전편을 흐르고 있던 무거운 공기는 '45시간 7분 뒤에 공기가 빠지는 은닉처와 왼쪽 눈이 없는 시체'를 완전히 잊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왜 율리아일수 밖에 없고, 알리사가 주커박사에게 납치를 당할 수 밖에 없었을까?  반전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소생불가능할것 같은 초르바흐가 주인공임을 알리는것 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일어나서 율리안과 알리나를 찾게 만든다.  타마라가 그린 그림 속 힌트를 단번에 알아내는 놀라운 이 남자.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너무 쉬운 힌트일지라도 제정신이 아닌 초르바흐가 그곳으로 향하는 자체가 대단하다.

 

  사이코스릴러다.  『눈알 사냥꾼』에는 어찌나 많은 사이코들이 등장하는지 정상적인 인물이 한명도 없어보인다.  주인공인 초르바흐나 알리나 조차도 정상이라 이야기하기 힘든 인물들이지 않는가?  딸을 잃은 요한나 슈트룸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희생을 강요하는 경찰들까지 누가 하나 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어느 누구에 편에 서도 안된다.  분명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뒷통수를 강하게 맞은것이 한두번이 아니니, 이쯤이면 무덤덤 할만도 한데,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은 할리우드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것에 있는것이 아닐까?  작가는 대놓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할리우드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하지 않는가.  사건의 과정속에서 인지하지 못한 아둔함의 결과가 너무 크니 말이다.  

 

'나의 현실에는 아름다운 장면 따위는 없다. 나의 삶은 한 번도 할리우드의 법칙을 따른 적이 없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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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원포인트 자수 스티치 750 - 작고 귀여운 동물과 꽃, 이니셜의 750가지 도안과 16가지 기초 스티치 두근두근 자수 레슨 시리즈 1
applemints 지음, 김수정 옮김, 심플소잉 감수 / 참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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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렸을 때 나와 동생이 입던 옷은 언제나 팔꿈치와 무릎에 각양각색의 귀여운 아플리케가 되어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린시절 내가 살던 동네엔 남자 친구들이 많았고, 노는 것도 남자아이처럼 놀았다고 한다.  그러니 옷들이 멀쩡하게 있는게 없었고, 엄마는 우리 남매의 옷에 아플리케를 꼭 해주셨었다.  옷이 헤어져서 아플리케를 한건지, 모양으로 미리 하신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플리케를 한 옷을 입을때면 대단한 옷을 걸치기라도 한것처럼 의기양양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다른 친구들의 옷에도 아플리케가 되어있었지만, 우리 엄마의 솜씨는 의뜸이셨다.  엄마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잘하셨다.  지금이야 연세가 많이 드셔서 눈이 침침해지셔서 바느질에서 손을 놓으셨지만, 어린시절 기억의 잔상속 엄마의 손은 언제나 바쁘셨다.

 

 

  흰 레이스실과 코바늘로 도일리를 뜨시고, 헤어진 옷위에 바늘 몇번 스치기만 하면 예쁜 문양이 놓여있는 걸 볼때마다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고, 어쩜 엄마는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마법사이니 나 역시 엄마만큼 손재주가 뛰어나리라 생각을 했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가사 시간에 뜨개질, 바느질, 자수등의 실습 시간이 다가올때면 여지없이 나의 손재주는 바닥을 치곤했었다.  종이접기 외에 손으로 하는 것들이 어찌나 어려운지, 내 한계를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보는것은 좋아한다.  깨끗한 블라우스에 작게 놓여져 있는 앙증맞은 문양을 좋아하고, 시간을 아껴가면서 손을 움직이는 손들을 보는것을 즐긴다. 

 

  

  '작고 귀여운 동물과 꽃, 이니셜의 750가지 도안와 16가지 기초 스티치'로 되어있는 이 책은 보는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행복한 책이다.  처음 자수를 시작하는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스티치 기법을 시작으로 생활소품에 활용하는 15가지 특별한 방법과 함께 준비 도구부터 실을 꿰는 방법, 매듭을 짓는 방법, 색의 색상과 사용법까지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설명을 해주고 있다.  나같은 이들을 위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이상하게도 손재주가 전무하다고 하지만, 주부경력 15년차가 넘으니 그림이 이해되어 지고 손이 근질근질해진다.  눈으로 들어오는 고운 자수들이 손끝에서 만들어 졌으면 하는 생각들이 저절로 들정도로 책은 실행의지를 높여주고 있다.  

 

 

  일본 수예전문출판사인 applemints의 자수 도서 중 독자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도안 750가지를 선별해 모아놓은 이 책은 총 4개 파트로 나뉘는데, Part 1은 꽃과 잎사귀, 열매, Part 2는 작은 동물과 생명체, Part 3은 영어를 이용한 장식 문자와 숫자, Part 4는 꽃과 화초, 동물을 사용한 다양한 라인과 코너를 담고 있다. 출판사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 책에 담긴 모든 꽃과 화초는 사계절을 모티브로, 작고 귀여운 동물은 육상동물과 수생동물, 곤충으로 나누어 보다 다양한 수를 놓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눈을 사로잡는 자수는 꽃과 동물이다.  꽃이 지고 푸르름이 세상을 덮고 있어도 여전히 나는 꽃이 좋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게 표현을 했는지, 책을 보면서 미소가 머금어 진다.  게다가 작은 동물들은 어떠한가?  고슴도치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데, 수놓아진 고슴도치를 보니 너무나 사랑스럽다.  울집 아이도 이런가?  서있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 자수 속 고슴도치는 두발로 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앙증맞고 세밀한 자수의 특징이 일본 자수의 특징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굉장히 오밀조밀하고 사랑스럽다. 볕 좋은날 창가에 앉아 고운 옷 한귀퉁이에 사랑스런 자수 한땀 놓으면서 행복해지고 싶은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예쁜 책. 『처음 시작하는 원포인트 자수스티치 750』은 내게 자수의 두근거림을 일깨워주는 그런 책이다.  이렇게 다양한 도안이 실려있으니 자수에 세계에 빠지기를 원한다면 입문용으로도 중고급용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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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피터 - 인생을 바꾸는 목적의 힘
호아킴 데 포사다.데이비드 S. 림 지음, 최승언 옮김 / 마시멜로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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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난쟁이에 얼굴도 못생겼습니다.  심지어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친구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결국 가출을 했고 노숙자로 살았습니다.  소년에게는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삶을 살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 소년이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가 되었답니다.  무엇이 이 소년을 바꾸게 만들었을까요?  이 답이『난쟁이 피터』에 들어있습니다.

 

 

  자기계발서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작가는 호아킴 데 포사다가 으뜸일 것이다. 『바보 빅터』를 읽으면서 재미있는 동화 한권을 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고 나타났다.  워낙에 히트를 친 책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고, 전작이 의미하는 것이 강했기에, 이번 이야기 역시 가슴 뛰며 출간을 기다렸다.  역시나 작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야기속에 교훈과 자기계발서의 요소들을 적절하게 버무려 놓았다.  이야기의 초반부터 양념처럼 뿌려놓은 줄기들은 '목표'와 '목적'을 생각하게 만들어 내고 있고, 그 줄기들은 커다란 나무가 되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동전의 양면처럼 정반대인 신시아와 벤저민 사이에서 태어난 피터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피터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엄마의 영향과 해봤자 안 되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아빠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자란다.  "책을 읽고 공부하며 마음의 키를 키우면 얼마든지 큰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아니, 마음의 키가 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거인이야. 엄마는..., 내 아들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자이언트 피터!"(p.21).  '괜찮아. 저까짓 녀석들이랑 어울리는 거 하나도 재미없어. 피터, 너는 어차피 환영받지도 못하는 존재잖아...'(p.31)  그러기에 이 아이는 신사아의 품 안에서만 숨을 쉴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죽은 후, 불평이 입에 벤 벤저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피터를 더욱 움추리게 만들었고, 피터는 엄마처럼 자신을 믿어주던 사서 선생님인 크리스틴을 뒤로 하고 가출을 하게 된다.

 

  세상밖으로 나오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린 아이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지, 힘든 거리 생활을 하는 피터에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주시던 크리스틴 선생님, 노숙자지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알렉스 경,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고 인생의 목적을 찾도록 도와주는 프랭크 교수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로 인해서 피터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피터는 우리가 사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모아 드림 카드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피터의 노력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가 돌고 돌아 결국엔 피터를 변화시키니 말이다.  이제 피터는 낮에는 택시운전을 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 하면서, 노조 파업, 911 테러 등을 겪으며 인생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던 난쟁이 노숙자가 택시 운전을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들어가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삶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엔 인간의 삶이 들어있다.  호아킴 데 포사다는 '목표'와 '목적'을 이야기 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으로 피터가 변화하고, 미셸이라는 사랑을 얻으니 말이다. 저자는 피터와 윌리엄 교수의 입을 통해 동기부여를 이야기 하고, 인간의 생각의 3단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내 감정말 생각하는 단계에서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 감정, 욕구, 애환, 꿈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단계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삶이 풍요로와지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변화로 세상이 갑자기 변화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피터를 통해서 세상이 살기 좋아 질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윌리엄 교수의 강연을 통해 '목표 의식과 동기부여'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각인을 하게 된다.  "기록은 행동을 지배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시신경과 운동근육까지 동원되는 일이기에 뇌리에 더 강하게 각인됩니다."(p.239). 여러 책들을 통해서 만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독려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계발서의 힘이다.  게다가 딱딱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작가가 책 속 인물들을 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 결국 우리 삶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니 책을 읽고 작가의 의중을 떠올리는 지금 역시 얼마나 기분 좋은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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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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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증 Portnoy's Complanint  (명) (앨릭잰더 포트노이(1933~)의 이름을 딴 병명) 강력한 윤리적, 이타주의적 충동들이 종종 도착적 성격을 띠는 극도의 성적 갈망과 갈등을 일으키는 질환....슈필포겔은 이 증상들 가운데 다수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 널리 나타나는 결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10여년이 넘었는지 모르겠지만, <몽정기>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중학교 남자 아이들이 성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방법으로 성을 배우고, 교생선생님에 대한 아릇한 짝사랑에 가슴 졸이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장면 장면이 다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꽤나 충격이었다.  남자아이들은 저렇게 자라는구나도 느꼈었고,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신선했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 먼저 <색즉시공>이라는 슬프게 야한 영화도 접했던 내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1960년대에 발표되었다면 어떤 반향을 일으켰을까?  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출판사의 평을 빌리자면 '1969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출간 몇 주 만에 <포트노이의 불평>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필립 로스는 작품의 선정성 논란 속에서 각종 미디어의 가십과 토크쇼 농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책을 둘러싼 격찬과 혹평의 대립 역시 뜨겁고 팽팽했다. 문학비평가 어빙 하우는 “<포트노이의 불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일은 이 책을 두 번 읽는 일”이라고 비난한 반면, 버나드 로저스는 “이 소설이 1960년대 문화의 이정표라는 데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미국 도서관들은 사춘기 소년의 자위행위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상당한 양의 비속어들 때문에 <포트노이의 불평>을 금서로 지정했고, 호주에서는 이 책의 수입을 금지했다.'라고 되어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하고 싶은것이 인간의 본능인지 그때나 지금이나 금서는 몰래 유통이 되었던것 같다.  글을 읽다보니 당시에는 외국 작가들의 책을 배로 실어오는 게 상례였는데, 호주에서는 금수 조치되어 펭귄북스는 검열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 인쇄소에서 제작한 다음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책을 배본했고, 이 일로 법정에 서기까지 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러니 그 시대에 『포트노이의 불평』을 봤다는 것은 진보처럼 느껴졌을것이고, 젊음의 상징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현재에는 이 책에 따라다니는 수식어구가 상당하다. <타임> 선정 100대 소설,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100대 영문소설, <가디언> 선정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소설 100권’ 까지 굉장하고 꼭 읽어야 할 필독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선생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벌벌 떨며 사는 건 더이상 못 견디겠어요! 남자가 되게 해주세요! 강하게 만들어주세요! 온전하게 만들어주세요! 착한 유대인 소년은 이제 됐어요. 남들 앞에서는 부모 비위나 맞추고 혼자 있을 때는 자지나 주물러대고! 이런 건 이제 됐다고요!' (p.58~59)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엘리트 변호사 앨릭잰더 포트노이과 정신과 의사에게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들려준다.  만성 변비에 시다릴고, 평소의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보험외판을 하는 유약한 아버지와  자신이 정해놓은 룰데로 살기를 원하는 강합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온 포트노이는, 늘 부모님 말에 순종하는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툭하면 감상적인 자기 연민에 빠져들고, 섹스를 꿈꾼다. 게다가 자신이 유일하게 자신의 말을 듣는 성기를 가지고 시도때도없이 사정을 하는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에게 들려주고 있다.  정신과에서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지만, 놀랍기는 하다. 1969년에 발표된 이야기가 아닌가?  분명 과장이 적지 않게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적나라해도 너무 적나라하다. 그렇다고 야한것은 아니다. 

 

  책에 대한 호평들을 보니 날 것 그대로 쏟아놓은 섹스 편력, 분노, 원망, 빈정거림들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겐 확 와닿지 않는다.  문화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지만, 억눌리고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포트노이가 엘리트 변호사가 된것도 의아하다.  책은 정말 포트노이의 불평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문제들을 분출해내고 있고, 독자는 의사의 눈으로 보고 들을 뿐이다.  어쩌면 옮긴이의 말처럼 작가 로스가 만들어낸 차가움과 유머의 공존이『포트노이의 불평』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내겐 이렇다 할 느낌이 없다.  어쩌면 옮긴이 처럼 시간이 좀 더 흘러서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 올지도 모르겠다.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웃음은 '펀치 라인'이었으니 말이다.  '펀치 라인'에서 의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배가 아플 정도로 깔깔 거리고 웃었으니 말이다.  단 한줄로 이렇게 웃길 수 있다니 유머러스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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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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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의 책을 읽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기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측면의 아기 모습이 보인다.  아니, 아기라고 하기보다는 태아가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순간 섬뜩하게 다가온다.  읽은지는 꽤 되었는데, 다른 책들 밑에 깔려 리뷰를 쓴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다, 책 정리를 하는 중에 다시 들여다 보게 되었다.  어떤 느낌으로 읽었었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굉장했다는 느낌은 남아있다.  이래서 리뷰는 바로 써야만 한다. 읽으면서 생생하게 전달되어지던 느낌과 생각들이 사라져 버리기전에 말이다.  갈무리해두었던 부분들을 다시 간추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떠올려 본다.  어떤 느낌이었었던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면서 김유철 작가의 필력에 놀랐던 기억도 떠오른다.

 

 

'부산 용호농장에 있는 병원에서 12월 24일 저녁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지면서 서른한 명의 사상자를 낸 뒤 진화되었다.  경찰은 방화로 인한 화재로 보고 수사 중이다.' (p.79)  

 

  색이 바랜 1999년 12월자 신문에 실린 기사가 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 작가로 알려진 민성은 대학 강의 도중 한 남자로부터 자신의 소설과 똑같은 형태의 모방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12년 전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간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자신의 기억과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사건을 조사한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이 연쇄살인과 깊은 연관이 있음이 드러나고 경악한다.

 

  민성의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사건을 담당하는 박 형사는 여성을 살해한 후 처참하게 훼손하여 유기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피해자의 주변을 탐문하다가, 그녀가 과거 몸담았던 특정 모임에 의심을 품는다. 모임의 주최자인 김현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 그의 과거를 쫓다 그가 쌍둥이였으며, 둘 중 하나가 사이코패스임을 알게 되고, 김현이라는 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주변인물들은 모두 김현을 이야기하지만 어디에도 김현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김현이 살았던 곳에서는 경찰을 무시하는 것처럼 사건의 흔적들을 흩으려 놓고 있다.

 

'저렇게 예쁜 여성들을, 그리고 젊은 청년들의 튼튼한 심장과 붉은 피를, 토나이투에게 바치면서 영원히 그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기원했던 거지.' (p.115)

 

  토템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황금가지인 겨우살이을 들려주고 있지만, 이 제단의 의미는 교묘하게 감추어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근간이 되었던 사간이 하나씩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부산용호농장의 화재사건.  화재사건으로 서른한 명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병원장을 포함해 세명뿐이었다.  사망자 중에 신원확인이 가능했던 사람은 모두 다섯명에 불과 했다. 병원장을 뺀 생존자는 현장에서 검거된 방화용의자와 혼수상태로 종합병원으로 후송된 정체 불명의 남자였고, 그 생존자는 1개월만에 병실에서 깨어났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제 독자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남자의 존재. 그는 민성인가? 김현인가?  작가는 드문드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마지막 카드는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듯 숨겨둔다.  물론 결론은 난다. 왜 이책의 표지가 쌍둥이를 겹쳐놓았는지도 알게되고, 왜 용호농장이 사건의 중심인지도 알게되지만, 결말은 독자를 충분히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아니, 모두가 두려워했지....... 녀석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능력으로 농장 전체를 광기 속으로 천천히 몰고 갔지......." (p.230)  생존자인 병원장이 박형사에게 표현한 인물.  인간이지만 인간이기를 거부한 몬스터. 몬스터를 잡을 수는 있을까?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과 잔인함을 작가의 말처럼 애써 외면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평범하게 그려지고 있는 인물이 혹시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스치듯 하긴 했지만, 사건의 결말은 독자만 알게 만들어 버린다.  몬스터의 복수는 끝이 난 것일까?  자신의 복수를 위해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희생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레드』는 이 모든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만족을 주기는 힘든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음에도 김유철이라는 작가를 확실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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