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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눈알'이라고 표현을 한 책을 알고 있다. 『눈알 수집가』. 수집할게 없어서 눈알을 수집하나 싶었는데, 책표지만으로 끔찍함이 몸서리 쳐질 것 같은 그런 책이었고, 여전히 난 책을 책장에 모셔두고 읽지 않고있다. 책의 제목만 보고 시리즈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맞다.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눈알 수집가』의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냈단다. 전편을 읽지 않아도 별 상관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전편에 대한 스포가 굉장히 많이 나와서 이 책을 읽은 후 전편을 읽게 될지는 의문이 든다. 전편의 내용을 모두 알아 버렸으니 말이다.

전편의 스포를 책이 해주고 있으니 써도 될 것 같다. 아이들을 죽이고 눈알을 파내는 잔인한 연쇄살인마 눈알수집가를 쫓아 베를린의 황량한 겨울을 함께 누비는 맹인 물리 치료사 알리나와 범죄 전문 기자 초르바흐. 알리나는 신체접촉을 통해서 미래를 볼수 있고 그를 통해서 범인을 찾아낸다. 범인을 쫓던 초르바흐는 알리나의 도움으로 마지막 희생자를 구해내지만 자신의 아내는 살해를 당하고 아들 율리안은 납치를 당한다. 게다가 '눈알 수집가'로 불리는 살인마인 프랑크 라만은 초르바흐가 일하는 유력 일간지의 수습기자로 어린시절의 공포를 게임으로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다. 알렉산더 초르바흐는 자신의 아들을 살인마에게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전편은 이렇게 끝나버렸다. 구해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야기는 새로운 시점으로 시작된다. 아들을 구하기위한 초르바흐와 게임을 하고 있는 라만. 아들을 살리기 위한다면 죽으라는 라만의 메세지에 초르바흐는 자신에게 권총을 겨눈다. 무슨 주인공이 이렇게 어이없게 죽어버릴까? <왕좌의 게임>마냥 주인공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책인가 싶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분명 초르바흐가 주인공인듯 싶었는데, 나오자마자 죽으니 말이다. 물론 알리사는 남아있다. 전편에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알리사가 만나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계적인 안과의 차린 주커 박사. 낮에는 가장 복잡한 안과 수술을 집도하고, 밤에는 여자들을 납치해 눈꺼풀을 도려내고 강간한 후 버리는 사이코다. 버려진 여자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살을 택하면서 증거도, 증인도 없는 경찰은 눈알수집가 사건에서 활약한 ‘미래를 보는’ 맹인 물리 치료사 알리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알리나는 환영 속에서 주커의 다음 희생자를 보게된다.
이제 이야기는 반전을 들려 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다음 희생자를 봤다고 하지만, 희생자의 얼굴은 언제나 알리사가 알고 있는 엄마의 얼굴. 다른 얼굴을 알리 없는 알리사에게 어린시절 본 엄마, 아빠의 얼굴만이 가능하니 그걸 '봤다'고 할 수 있을까? 죽은 줄 알았던 초르바흐가 살아있단다. 간발의 차이로 살아났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것 같은 초르바흐. 주커 박사와 라만의 연관관계를 찾고 있는 이들이 움직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이다. 휠체어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줄을 놓아버린것 같은 초르바흐에게 알리사의 납치 소식은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알리사가 '본'미래가 자신일지 누가 알았겠는가? 사라져 버린 알리사와 알리사의 안내견, 톰톰. 율리아가 그렸던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주커의 희생자, 타마라.
끊임없이 반전에 반전을 몰고오면서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범인이라 의심하는 순간 여차없이 작가는 다른 사람을 보여주고, 마음 놓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순간 악은 눈앞에서 악마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진짜 '악'인지 알 수가 없다. 악마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려오면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전편을 흐르고 있던 무거운 공기는 '45시간 7분 뒤에 공기가 빠지는 은닉처와 왼쪽 눈이 없는 시체'를 완전히 잊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왜 율리아일수 밖에 없고, 알리사가 주커박사에게 납치를 당할 수 밖에 없었을까? 반전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소생불가능할것 같은 초르바흐가 주인공임을 알리는것 처럼 위기의 상황에서 일어나서 율리안과 알리나를 찾게 만든다. 타마라가 그린 그림 속 힌트를 단번에 알아내는 놀라운 이 남자.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너무 쉬운 힌트일지라도 제정신이 아닌 초르바흐가 그곳으로 향하는 자체가 대단하다.
사이코스릴러다. 『눈알 사냥꾼』에는 어찌나 많은 사이코들이 등장하는지 정상적인 인물이 한명도 없어보인다. 주인공인 초르바흐나 알리나 조차도 정상이라 이야기하기 힘든 인물들이지 않는가? 딸을 잃은 요한나 슈트룸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희생을 강요하는 경찰들까지 누가 하나 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 어느 누구에 편에 서도 안된다. 분명 이야기는 결말을 맺는다. 뒷통수를 강하게 맞은것이 한두번이 아니니, 이쯤이면 무덤덤 할만도 한데,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은 할리우드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것에 있는것이 아닐까? 작가는 대놓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할리우드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하지 않는가. 사건의 과정속에서 인지하지 못한 아둔함의 결과가 너무 크니 말이다.
'나의 현실에는 아름다운 장면 따위는 없다. 나의 삶은 한 번도 할리우드의 법칙을 따른 적이 없다. ...' (p.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