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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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의 책을 읽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기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측면의 아기 모습이 보인다.  아니, 아기라고 하기보다는 태아가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순간 섬뜩하게 다가온다.  읽은지는 꽤 되었는데, 다른 책들 밑에 깔려 리뷰를 쓴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다, 책 정리를 하는 중에 다시 들여다 보게 되었다.  어떤 느낌으로 읽었었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굉장했다는 느낌은 남아있다.  이래서 리뷰는 바로 써야만 한다. 읽으면서 생생하게 전달되어지던 느낌과 생각들이 사라져 버리기전에 말이다.  갈무리해두었던 부분들을 다시 간추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떠올려 본다.  어떤 느낌이었었던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면서 김유철 작가의 필력에 놀랐던 기억도 떠오른다.

 

 

'부산 용호농장에 있는 병원에서 12월 24일 저녁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지면서 서른한 명의 사상자를 낸 뒤 진화되었다.  경찰은 방화로 인한 화재로 보고 수사 중이다.' (p.79)  

 

  색이 바랜 1999년 12월자 신문에 실린 기사가 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 작가로 알려진 민성은 대학 강의 도중 한 남자로부터 자신의 소설과 똑같은 형태의 모방 살인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12년 전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간 어떤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고, 자신의 기억과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사건을 조사한다. 그러나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이 연쇄살인과 깊은 연관이 있음이 드러나고 경악한다.

 

  민성의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사건을 담당하는 박 형사는 여성을 살해한 후 처참하게 훼손하여 유기하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자 피해자의 주변을 탐문하다가, 그녀가 과거 몸담았던 특정 모임에 의심을 품는다. 모임의 주최자인 김현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 그의 과거를 쫓다 그가 쌍둥이였으며, 둘 중 하나가 사이코패스임을 알게 되고, 김현이라는 인물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주변인물들은 모두 김현을 이야기하지만 어디에도 김현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김현이 살았던 곳에서는 경찰을 무시하는 것처럼 사건의 흔적들을 흩으려 놓고 있다.

 

'저렇게 예쁜 여성들을, 그리고 젊은 청년들의 튼튼한 심장과 붉은 피를, 토나이투에게 바치면서 영원히 그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기를 기원했던 거지.' (p.115)

 

  토템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황금가지인 겨우살이을 들려주고 있지만, 이 제단의 의미는 교묘하게 감추어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근간이 되었던 사간이 하나씩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부산용호농장의 화재사건.  화재사건으로 서른한 명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병원장을 포함해 세명뿐이었다.  사망자 중에 신원확인이 가능했던 사람은 모두 다섯명에 불과 했다. 병원장을 뺀 생존자는 현장에서 검거된 방화용의자와 혼수상태로 종합병원으로 후송된 정체 불명의 남자였고, 그 생존자는 1개월만에 병실에서 깨어났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그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제 독자는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남자의 존재. 그는 민성인가? 김현인가?  작가는 드문드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마지막 카드는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듯 숨겨둔다.  물론 결론은 난다. 왜 이책의 표지가 쌍둥이를 겹쳐놓았는지도 알게되고, 왜 용호농장이 사건의 중심인지도 알게되지만, 결말은 독자를 충분히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아니, 모두가 두려워했지....... 녀석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 능력으로 농장 전체를 광기 속으로 천천히 몰고 갔지......." (p.230)  생존자인 병원장이 박형사에게 표현한 인물.  인간이지만 인간이기를 거부한 몬스터. 몬스터를 잡을 수는 있을까?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과 잔인함을 작가의 말처럼 애써 외면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평범하게 그려지고 있는 인물이 혹시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스치듯 하긴 했지만, 사건의 결말은 독자만 알게 만들어 버린다.  몬스터의 복수는 끝이 난 것일까?  자신의 복수를 위해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희생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레드』는 이 모든것을 포함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만족을 주기는 힘든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음에도 김유철이라는 작가를 확실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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