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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외삼촌 - 한국전쟁 속 재일교포 가족의 감동과 기적의 이야기
이주인 시즈카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청춘 시절에 나는 거칠고 난폭한 아버지보다는 단 한번밖에 만난 적이 없는 외삼촌을 더 존경했다. 가업을 물려받을 것을 거부했다가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아버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 P.632
읽고 난 후에야 이 책이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는 걸 알았다. 이야기의 흡입력이 얼마나 깊은지, 읽는 중에는 이렇게 두꺼운 책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읽어 내렸으니 말이다. 재일 일본인, 다다하루가 외삼촌을 본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 서였다. 19년에 세월이 흘러 일본 올림픽에 한국 통설자로 왔다는 외삼촌은 당당하고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다. 그런 외삼촌이 자신이 보긴엔 고집불통에 외도도 서슴치 않는 아버지에게 큰절을 한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 어머니가 너무나 사랑하는 동생이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외삼촌이 돌아가셨단다. 한국에서 육군 대위까지 지냈다는 멋진 외삼촌이 말이다. 다다하루는 자신의 집에서 오랜세월 함께 동거하며 일을 도와준 겐조 아저씨에게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일본 세토나이카이의 작은 항구 마을 미타지리. 소지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요코와 가족을 일구고 열심히 살아간다.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아 사업을 확대하던 그에게 한국전쟁 발발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함께 생활하다가 전쟁의 종전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간 처가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치기만 있고 아직 세상을 모르지만, 아내가 너무나 사랑하는동생, 고로. 일본 천황앞에서 검도 시합을 할 정도로 멋지지만, 아직은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그런 어린 처남, 고로가 마을 사람들에게 북한군 첩자라는 의심을 받고 집 마당의 닭장 아래에 파놓은 구덩이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남, 고로, 한국 이름으로 오덕이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위기 상황인데다, 장인 장모는 쇠약해져서 더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불행한 소식이 전해졌다. 소지로는 처가 식구들을 구하려고 밀항선을 타고 한국에 간다. 전쟁의 포탄과 포성을 피해 산의 능선을 따라 걷고, 곳곳에 산재한 게릴라의 눈을 피해 처가로 간다.
나는 어려운 말은 몰라. 하지만 공산주의나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은 알아. 전쟁터에서 자네가 무엇을 보았는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나 사람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사람의 손에 죽기위해 태어난 것도 아냐.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그것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P.514
소지로에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가득한 이념 전쟁은 문제가 아니었다. 오직 목표는 살아남아서 희망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굳은 의지로 가족을 지켜내고 가족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결혼 6년만에 일본에서 어지간한 부를 이루고 있음에도 아내에 가슴 아픔을 소지로, 윤종래는 묻어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땅을 팔고 금을 마련하고, 배를 개조해서 한국으로 갔다. 아내가 사랑 하는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지로에 이야기만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덕이 왜 북한국에 휩쓸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면서 전쟁에 참상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책이 말하는 것은 가족이다. 실성한 것처럼 닭장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 비가 퍼붓던 날, 아들을 찾아 산을 달리고 쓰러져 버린 아버지. 이들 모두는 가족을 이야기 한다.
설날이다. 올해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네가 무사히 새해를 맞이하게 된 것이 우리는 가장 기쁘다. 살아만 있으면 반드시 기쁜 날이 올 거야.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쁜 일만 계속 되라는 법은 없어. 나는 믿는다. 너와 함께 설날의 맑은 하늘 아래를 활보할 수 있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P.297
편치 않은 몸으로 닭장밑에 구덩이를 파고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는 아들을 숨겼다. 그리고 기다렸다.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매형은 그런 처남과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왔다. 이야기는 액자소설의 구조를 띄고 있다. 갤러리에서 액자속 그림을 보듯이 하나의 이야기인, 다다하루에 이야기와 겐조를 통해서 들은 아버지, 소지로와 어머니, 요코, 그리고 그녀의 친정 이야기가 그림을 그리듯 그려지고 있다. 어린시절에 아들이 느끼던 아버지와 커서 느끼는 아버지는 다르다. 청년기에 반항처럼 그렇게 커다랗게 느껴지던 아버지가, 어느 순간 만만하게 느껴질때도 있다. 그런 다다하루에게 외삼촌, 고로는 존경에 대상으로 찾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겐조로 부터 들은 아버지와 외삼촌에 이야기. 가족을 위해서 모든것을 희생할 수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새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기에 서장과 끝장에 나오는 말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멀기는 무슨. 날씨만 좋으면 하룻밤 만에 갈 수 있는 곳인데. 국경? 바다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네가 더 자라면 그 마을에 가보자. 아빠가 태어난 마을에도 가보고. P.9 / P.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