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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ㅣ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평점 :
드디어 3권을 읽었다. 고마운 이웃님이 선물해 주셔서, 일주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은 것 같다. 3권을 읽다보니, 이 엄청난 사람들 이름 덕분에, 1.2권을 또 다시 뒤적거리게 되고, 마지막 장까지 갈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엔 책장을 덮었다. 아득함... 이 허함을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1차에서 시작해서 8차까지의 이 기나긴 전쟁에서 남은것이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텅비어 버린 느낌이다. 또 다시 내 머릿속 지우개로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십자군 이야기 3>로 들어가야 겠다.

십자군의 남자들과 이슬람의 남자들을 지나서 이름만으로 헉 소리 나오는 인물들이 즐비하게 나오기 시작하는 제 3차 십자군의 문이 열렸다. 제 3차 십자군에는 '교황대리'가 동행하지 않았다. 독일 황제도, 프랑스 왕도, 영국왕도 성도 예루살렘이 이제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시키고 남았기 때문에, 교황이라는 제창자도, 그 제창을 받들어 유럽 전역을 설득하러 다니는 설교사도 필요하지 않은 '세속인들의 십자군'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움직이고, 싸움만 좋아하는 사람도 십자군이라는 이름하에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제 3차 십자군은 프랑스 왕과 영국 왕이 이끄는 군대가 중근동에 도착한 1191년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하틴'에서 대패하고 예루살렘마저 탈환당한 1187년의 나머지 반년이 채 지나기 전에 티루스를 놓고 벌어진 공방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티루스 공방전이 제3차 십자군의 첫번째 전투인 셈이다. 상대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하는 일신교끼리 격돌한 싸움. 양쪽 다 이교도를 죽이는 것을 신을 기쁘게 하는 행위이고, 설령 죽임을 당한다 해도 순교자가 되어 승천할 따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을 잃은 그리스도교측에는 한층 그런 마음이 강했으니 이 싸움의 끝은 알수가 없었다.
'붉은 수염'이라는 독일황제는 싸움터까지 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익사를(작가는 늙은이의 냉수라는 표현을 한다. p.67) 하고, 프랑스의 젊은 왕 필리프는 잔머리를 굴리느냐고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온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가 '프랑크인'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중 영국왕 리처드는 달랐다. 퍼포먼스로 사람들을 모을 줄 알았고, 지략과 전략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도착과 함께 그리스도교측은 지휘계통의 일원화가 실현되면서 수뇌들은 리처드의 명을 따르기 시작한다. 예루살렘 왕, 기드 뤼지냥이 있었지만, 누가 그의 말을 들었겠는가? 야코의 들어서기 전부터 그리스도측에 도움이 되는 안티오키아, 트르토사, 트리플리, 티루스와 키프로스를 제압한 후 리처드는 아르수프, 야파, 아스칼론을 차례대로 제압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로 나가면 성지수복은 코앞에 있을 것 같은 그때에 먼저 귀국해버린 프랑스왕 필리프가 리처드의 동생인 존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전쟁(시오노 나나미)>중 '살라딘과 리처드 1세' by 구스타브 도레
로빈후드 속 존왕과 사자왕 리처드가 이렇게 연결이 되는지 <십자군 이야기>를 통해서 알았다. '사자의 심장을 가진 자'처럼 전장을 누비는 갑옷을 두른 장수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었을 이슬람교도들이 붙힌 별명. '사자심 왕 리처드'가 로빈후드의 위기 때 짠하고 나타나던 그 사람이라니.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어쨌든, 이제야 무적의 살라딘에게 적수가 생겼는데, 너무 많은 사상자를 내다보니 양쪽이 다 쉬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리처드. 점점 십자군측에 유리한 상황에서 살라딘과 강화를 맺을 생각을 한다. 교섭은 고급 아랍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협상에 달인이라는 발리앙 이벨린과 살라딘의 동생 알 아딜이 맡는다. 리처드는 전쟁을 좋아했던 인물이었지, 신앙심이 좋은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누이 동생 조안나를 알 아딜에게 주어서 예루살렘 왕으로 추대를 하겠다는 말까지 하니 말이다. 물론,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알 아딘이 받아들였을리도 만무하지만, 조안나 역시 가만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기나긴 밀당끝에 리처드는 예루살렘을 포기하겠다, 아스칼론도 포기하겠다면서 빨리 강화를 체결하자는 서신을 살라딘에게 보내고, 살라딘은 종교적인 관용과 경제적인 고려를 포함한 강화를 한다. 이렇게 제3차 십자군은 끝이 난다. 분명 십자군측은 예루살렘을 수복하지 못했다. 이를 목표로 세우고 원정을 시작했으니 군사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하지만 리처드와 살라딘이 성립한 이 평화는 강화조문에 명기된 3년 개월이라는 기한을 훌쩍 넘어, 1218년까지 26년 동안 이어진다. 물론 중간에 사고가 있긴했지만 말이다.
이제 로마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와 베네치아 공화국 도제 단돌로, 살라딘의 뒤를 잇게 된 알 아딜이 주역으로 나오는 4차 십자군 전쟁의 막이 오른다. 시종 표면에 나섰던 이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였으니 이 싸움은 이교도와의 싸움이라고 보기 보다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실리를 위한 싸움이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도이기에 앞서 베네치아인'이라는 이들은 철저하게 실리를 앞세우면서 자신들에게 빚을 진 십자군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하면서 같은 그리스도교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도 한다. 어쨌든, 원리주의와 무관한 일반 사람들에게 제 4차 십자군으로 얻어진 베네치아가 기지로 삼은 섬과 영리사업 덕분에 순례행은 더욱 안전하고 쾌적해졌다. 교황대리 '펠라조'가 움직인 제5차 십자군은 뭐라 할말이 없다. 무엇을 했는지도 모를정도로 헛수고였음에는 지명한 사실임에도 펠라조에게 책임을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1228년부터 1229년까지의 황제 프리드리히가 이끄는 제 6차 십자군의 이야로 들어가보자. 제 3차 십자군이야기 만큼 재미있는 제6차 십자군. 교황은 십자군 참전을 끊임없이 하라고 하고, 죽어라 뻰질거리면서 가지않는 프리드리히에게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파문'을 공표하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이 남자는 가고 싶으면 가고 맘에 내키지 않으면 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카노사의 굴욕'을 생각했을 교황청에게 '로마 교황청이 어린 나를 도와주었다고 하는데, 내가 유년기였을 무렵 로마 교황청은 시칠리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 내 지위를 노리는 자들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다녔다'(p.365)라는 서신을 보내니, 열받을 만큼 받은 교황은 두번째 파문을 내린다. '애랑 노는 사람은 다 적이다'를 공표한 셈이니, 교황이나 황제나 유치하기가 짝이 없다. 어쨌든 이 지조 강한 남자는 싸움보다는 교섭을 좋아했고, 알 카밀과의 교섭은 10년간의 평화를 가져오는것 처럼 보였다. 문제는 불신앙의 무리와 교섭을 한 황제를 교황이 너무 미워했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황제 프리드리히를 '그리스도의 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교황. 1230년 9월 1일에 '평화의 키스'로 화해를 하긴 하지만, 이 웃긴 남자들 덕분에 <십자군 이야기 3>편에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게 만든다.
제7차와 제8차 십자군 전쟁을 끝으로 십자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성인이라는 칭송을 받는 프랑스왕 루이9세가 제1차 십자군을 시작으로 얻어냈던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기기 시작하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성지만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성지 탈환'을 위해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든것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교황이 콕콕 찔러서 십자군을 일으켜야하는데, 프랑스의 미남왕 필리프 4세는 십자군도 성지도 되찾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프랑스에 있는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붙이는 것이었다.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적극적이던 템플 기사단은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단재판소를 통해서 벌어지는 템플 기사단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한다. 성지에 세운 십자군 국가를 2백 년 동안 지탱해온 기둥 중 하나로 2만 명이 넘는 단원을 희생해온 템플 기사단은, 그릇된 신앙방식을 고발하는 '이단재판'의 심판을 받게 된 것만으로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것이다. 거기에 이단의 증거가 127가지나 된다고 고발을 했으니 왕이라는 자들의 상상력이 좋았던 것인지, 비열하기가 극을 달했던것인지 알수가 없다.

'성묘의 수호자' 고드프루아와 젊음의 상징이었던 탄크레디를 시작으로한 제 1차 십자군부터 문둥이 왕, 보두앵 4세와 이슬람의 장기를 거친 누네딘, 살라딘, 알 아딘, 사자심왕 리처드와 존엉왕 필리프등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십자군 이야기>는 끝이 났다. 유일신을 믿는 두 종교 집단의 이야기였지만, 진정 이 싸움이 신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200년에 걸친 8차에 걸친 싸움은 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십자군을 모티브로한 이야기 또한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럽에 싸우는 영주들에 눈을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자신의 권위를 위해서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로 젊은이들을 싸움터로 보내버린 200년의 싸움. 왜 유럽에서 이 먼곳까지 와서 싸움을 걸까하고 아무 생각없이 싸우다,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말로 유일신들의 싸움이 되어버린 곳. 그들의 싸움은 분명 끝이 났는데, 여전히 나는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나는 어느곳을 향해야 할까? 바라보는 눈이 진정 신의 눈이 되어 신이 바라시는것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십자군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십자군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마, 이 싸움은 인류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