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 1.2 세트 - 전2권
시미즈 이사오 지음,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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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알듯 모를듯 역사시간에 외우던 단어가 메이지 유신이다.

학교에 다닐때는 그냥 지나쳤던 이 메이지 유신은 일본 메이지 왕[] 때 막번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변혁과정을 말한다.

 

우리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바로 옆에서 볼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것은 그냥 지나쳐 버린다.

내게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타인에게는 흥미로운 일들.

그 일들이 100년전, 200년전 일이라면 분명 지금과는 틀릴것이다.

당연하여 놓쳐버렸던 일들. 그 궁금함을 내 눈이 아니 타인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 본다면 더욱더 사실적이지 않을까?

거기에 일본.

우리 눈에 일본은 우리의 역사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억압하는 침략자의 얼굴이다. 그래서 제대로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

19세기 일본의 얼굴을 우리의 눈이 아닌, 프랑스인 비고의 눈으로 본 『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는 메이지 시대의 일본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하게 만든다.

 

이 책에 나온 삽화들은 풍자화로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다.

1882년부터 18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풍자잡지 <도바에> 를 발행하고 일본인의 일상을 풍자화집으로 출간한 프랑스인 화가

조르주 페르디낭 비고의 풍자화 모음집.

유럽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근대 일본인의 모습과 살아남기 위해 매진하던 일본인들의 집념과 열정을 담고 있으며, 메이지 시대에 부국강병과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정치가들의 모습과 일본 근대화가 실은 자유민권운동을 탄압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고,
전통 문화와 근대문물이 혼재된 가운데 일본의 평범한 하층민에게 근대라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게 하고 메이지시대를 이끌어간 진정한 주인공이야말로 일본 근대를 살던 하층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두 권으로 나뉘어진 책은 많은 삽화가 들어가 있지는 않다.

'근대'라는 열차 안의 일본인들 - 도쿄,고베 간 철도, 병사의 하루 /  굴절된 근대 공간 속 하층민의 일상 - 게이샤/창부/하녀의 하루/

메이지의 일본인, 생활의 발견 - 일본인, 남과여, 일하는 사람들 / 메이지 시대의 사건과 인물
한 페이지는 삽화, 한 페이지는 친절할 정도로 그림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삽화만으로 그냥 지나쳐 버릴 이야기거리들을


들려주고 있다.

 

사실, 이 삽화들은 다분히 유럽인의 눈으로 본 아시아인의 모습을 조소와 함께 그리고 있다.

그래서 삽화를 보는 중에도 유럽의 신민사상이 보여진다. 그래서 눈쌀이 잡히기도 하지만, 우리의 역사속 일본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알기때문에, 혼도시에 서양식 와이샤츠를 입고 사타구니에 부채를 부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역시 씽끗 웃어넘긴다.

이래서 왜국놈들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나라를 지키지 못해, 왜국놈들이라 하던 그들에게 굴복했던 우리의 역사 말이다.

 

조소가 보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보다 앞서 신문명이 들어온곳. 그래서 이런 그림이라도 남아있는 곳.

일본은 자신들이 보여주기 싫어 꽁꽁 숨겨놓았던 모습까지도 남의 눈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다.

우리의 숨겨지고 감춰어져 있는 역사가 이렇게라도 보여진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일본에서 일본인이 아님에도 일본인처럼 살려고 애를 쓰던 비고에게, 일본에게 새삼 질투심이 이는것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애잔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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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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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가 자판기 앞에서 작은 플라스틱 컵 속으로 따뜻한 차가 쏟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엘스페스는 숨을 거두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연인의 이야기 일까?  연인중의 한사람이 죽었나보다. 그래서 마음에 두고 산다는 이야기인가?

『내 안에 사는 너』라는 제목과 책 앞머리를 읽고 드는 생각이었다.

 

주변에 쌍둥이가 많다.

그래도 나는 그 아이들을 다 구별할수 있다. 느낌이 틀리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강하고, 어떤아이는 쑥쓰러움을 많이 타고...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는 이렇게 느낌으로 구별이 된다.

이란성은 당연 별 구분이 필요없고 말이다.

 

오드리 니페네거의 두번째 작품. 『내 안에 사는 너』는 쌍생아의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요즘은 400페이지 가량되는 책도 두텁다 생각되진 않지만, 얇지않은 두권의 책을 별 어려움 없이 읽어내려갔다.

오드리 니페네거의 필력이 좌우했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오드리 니페네거는 런던의 유서 깊은 유적지 하이게이트 묘지공원과 비밀의 인물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선보인다.

평범한 쌍둥이 자매 줄리아와 발렌티나는 어느 날 엄마의 쌍둥이 자매인 엘스페스 이모가 자신들에게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겼다는 소식을 듣는다. 상속 조건은 단 한 가지, 1년 동안 무조건 이모가 살던 런던의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파트로 이사간 자매는 각자 위 아래층에 사는 남자들과 사랑에 빠진다.

뭐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버리면 오드리 니페네거가 아니다.

아니, 처음에 로버트와 엘스페스를 설명할 이유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죽음 이후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 치기어리게 생각해 보던 문제들을 작가는 살살 건드려본다.

오호... 그럴수도...

사랑이라는 이름만으로 사랑을 얽메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을 갈구한다.

인간이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얽메이는 것이 아닐까?

 

난, 책을 텍스트로만 읽는 경향이 있는듯 하다.

이 두권을 읽으면서 영화로 본다면 뒷이야기를 상상도 해보았을 텐데, 텍스트데로 읽다가 허걱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쌍둥이 자매 줄리아와 발렌티나, 그리고 엘스페스와 에디.

각기 다른 성격의 쌍둥이 자매와 영혼 엘스페스의 각자의 사랑 이야기.

어디서 얽혔는지 파헤치는 과정과 사랑과 연민, 인간 내면의 적나라와 감정과 욕망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죽음은 단지 또다른 시작일 뿐, 그녀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책 커버에 실려있는 한줄의 문장.

이 한줄의 문장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이야기 해줌은 책 커버를 덮으면서 알아버렸다.

 

그녀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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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 드리세요
이상훈 지음, 박민석 사진 / 살림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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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합니다.

이번에 고향에 가면 어머니 손잡고 오랜만에 그 옆에서 하루라도 같이 자고 오겠다고요. 』

 

화면으로는 느낄 수 없는 책표지가 감성적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이다.

감성적인 책.  근래들어 죽음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있어서 이 또한 그런 내용인가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 드리세요>라는 제목과 동일한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부모님과 옛날 앨범을 보며,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나눠보세요>까지 부족한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주시기 위해 밤낮 고생하셨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등 32편의 감동
적인 이야기들이 잔잔한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

사진만으로도 눈물이 핑도는 그런 사진들.

 

회사동료중 나이가 같은 친구가 있다. 올 초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친구는 이 책을 읽는것이 아닌, 보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대한 감정은 잊혀지거나 묻혀지는게 아닌가 보다.

아직은 절실하게 와 닿지 않는 부모님의 부재.  하지만, 부재만으로 이 책의 가치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 평범해서, 미안하고 너무나 평범해서 눈물짓게 만드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기때문에 한장을 펼치고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을 것이다.

거기에 부모님으로 한정되어진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삶의 이야기.

 

회사를 갓들어가서 월급날이 되면 작은 과자를 잔뜩사가지고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난다.

함께 살았던 할머니. 내 어린시절엔 할머니의 작은 농이 먹을것이 끝없이 나오는 화수분같은 보물창고였었는데, 성인이 되어

직장에 들어가서는 할머니는 손녀딸의 손을 바라보시곤 하셨다.  다 잊고 있었던 기억의 파편들이 책을 읽으면서 스물스물 되살아난다.

할머니에게 받았던 사랑을 나는 그냥 받고 사라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나와있는 서른두가지의 이야기중에서 내가 행동으로 옮긴건 몇가지나 있을까?

책을 읽다 문득 문자메세지를 아버지께 보내봤다. 문자메세지를 보내보세요라는 문구가 가장 쉽게 와 닿았나보다.

사랑해요 아빠...  천천히 도착한다.  '나도 사랑한단다. 우리 공주님'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딸은 아직도 아빠에겐 공주님이다. 눈물이 핑돈다. 

부모의 사랑은 그런건가 보다. 내리사랑이라 그랬던가?  어느 순간 내 새끼들부터 보이기 시작해버렸지만, 

내 마음의 영원한 고향은 부모님이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감성적인 책. 이 책 한권이 내 어린시절의 추억부터 지금까지 끌어다 놓는다. 

그리고 나와 부모님. 조부모님. 내 아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더 늦기전에, 더 늦기전에 전화드리고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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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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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이름 왕(). 인조의 장자, 효종의 형이며, 어머니는 한준겸의 딸 인열왕후()이다. 1625년 세자로 책봉되었고, 부인은 강석기()의 딸인 민회빈강씨이고 보통 강빈()이라고 부른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한 이후,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귀국 두달만에 사망하였다. - 두산백과

 

표지의 일러스트가 쿵하고 가슴을 누른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소현세자를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읽으면서 이런 인물일꺼야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표지를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기에 이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현이 보인다.

슬픈 눈. 깡다문 입술. 시린 콧날. 아무것도 할 수없는 몸. 그럼에도 그는 한 나라의 세자였다.

인질이 되어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은 아비도 어미도 울게 만들었을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한해, 두해..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 질것이다. 아니, 그러하지 않는것이 상식이라도

임금이라면 그러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아비가 아닌 임금이니 말이다.

 

명에서 청으로 넘어가는 시기.

명을 명분삼아 임금이 된 인조. 변발을 하는 떼놈이라 여겼던 청으로 끌려간 세자.

'소군'이라 불리는 아들을 보면서 인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청에서 명나라의 패망을 보면서 조선의 정치적 입장과 달리 청과 명의 현실을 직시하는 아들과. 그 명분이 사라져 버린 왕.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들과 아비의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입장이 보인다.

저 슬프고 시린 눈이 아들의 입장을 말해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 묶여있지 않음에도 묶여있어 어디도 갈 수 없는 몸.

역사는 효종을 이야기 하지만, 책은 소현을 이야기한다.  그림자 처럼 소현에 뒤에 있는 봉림이 아닌 소현을..

 

세자가 원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 작은나라의 비루함이 아니었다. 비루함의 너머에 있는 것.

혹은 그 중심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만 할 꿈이었다

'내가 저들의 세자이다.' ' 그리고 네가 저들의 원손이다.'

'보거라. 네가 비루하나 갸륵한 저들의 임금이다.' ' 반드시 돌아가리라. 저들과 함께.' - p.208~209

 

얼마전에 읽었던 '덕혜옹주'처럼 동화같은 책은 아니다.

하나의 사실들을 세세히 들여다 보지도 않는다. 공이 튀듯 건너뛰어져 있고, 그후에 이런일이 있었구나를 알게만든다.

석경의 이야기가 그렇고, 흔의 이야기가 그렇다.

끝까지 나오는줄 아는 막금의 이야기도 튕기듯 건너뛴후에야 알게된다.

그런데도 그의 몸속에 있는 울음이 느껴진다.

눈물로 가득차있어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릴것 같은 세자의 울음이 느껴진다.

 

아들이면서 아비인 소현.

감추고 나오지 않고 꾹꾹 누르는 것이 몸에 베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들었을것이다.

 

조선을 사랑한 세자. 소현.

정복자들의 전쟁이 남긴 조선의 상흔, 소현세자의 마지막 2년이라고 책의 뒷표지는 말을 해주고 있지만,

소현세자가 볼모에서 풀려나 귀국후의 2년은 너무나 적게 나와있다.

그냥 느낄 뿐이다. 명분과 실리. 그리고 두려움... 이 모든것이 합쳐진 마지막 2년.

소현은 알았을까? 자신이 사랑한 조선이 자신이 사랑했던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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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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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지금 뭘 읽은거지?

도통 알수가 없다.

러브 차일드. 제목만 보고는 사랑이야긴가 했다. 아니, 표지때문에 그렇게 생각을 했다.

긴머리에 갸냘픈 여인의 뒷모습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love child라는 단어가 사생아라는 것을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고 알았다.

아니, 제목이 러브 차일드임에도 내가 뭘 읽고 있고, 뭘 읽었는지를 모르겠다.

결국엔 김현영작가와의 좌담까지 읽었는데도 내겐 너무 어렵다.

 

김현영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이 너무나 낯설고 무서웠기 때문일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가장 처음 본 것은 난도질된 우리의 몸이었다.

온전한 문장을 쓸 수 없어 몇 개의 물음표와 느낌표, 그리고 말줄임표만 늘어놓은 연서처럼 점점이 흩어진 우리의 몸이

한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왔다. ...  여자는 다만, 우리가 몇 주간 거주했던 집에 불과했다 - p. 9

 

이렇게 처절하면서도 소름끼치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문학평론가 심진경씨의 말처럼 쓰레기에 의한(의료폐기물로 분류되는

낙태아들), 쓰레기를 위한(생애전환기 검사를 통해 폐기물로 처리되는 노인들), 쓰레기의(우리들 자신)의 소설이다.

비유적이고 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이 쓰레기라는 단어는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성정하지만 노화하지 않고, 폐기물로 처해질 인간의 팔을 도려내도 그것은 신체 훼손이 아니라 재산 손실 일 뿐인 세상.

우리들이 인간이 맞는건가?

아니, 이 속에 나오는 두 주인공, '수'와 '진'은 인간이었던가?

 

작가는 이야기한다.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은, 곧, 내게, 우리들 모두에게 일어날 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미래라는 시간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나는 그 시간과 공간속에 갇혀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우적 거리고 있다.

 

너는 그냥 변해. 마음놓고 변해가. 대신 내가 변하지 않을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원히 이 모습 그대로 있어줄게. 네가 언제 어디서든 나를 알아볼 수 있도록.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세계에서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 40년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시간이었다. 진과 수를 결국 페기물로 만들기 위해 이 세계가 필요로 했던 시간이었을 뿐. ..

수는 더 이상 늙을 수 없을 만큼 늙어버리고, 진은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영원히 늙지 못한채..

그럼에도 공평하게 모두, 폐기물이 되어  - p. 237

 

작가가 내게 이야기하는건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이 한곳에 모일수도 있고, 그것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일까?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  무엇을 보고 무엇을 희망으로 삼아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찾고 싶다.

세상은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이지 만은 아닌곳이라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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