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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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음과 동시에 빠져들어 술술 읽히는 매력적인 이야기 <아킬레우스의 노래>, 그저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다 표현을 못 한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까지도 이 책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매들린 밀러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며 바로 이어 읽을 예정인 작가의 또 다른 책 <키르케>에 대한 기대감에 설렐 정도였다.



"나의 아버지는 왕이었고 왕의 자손이었다."

p.9

파트로클로스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작고 가냘팠으며 빠르지도 않았고 튼튼하지 않아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던 귀족의 아들을 죽이는 실수로 인해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쫓겨나게 되고 그가 도착한 유배지 프티아에서 펠레우스 왕의 아들이자 여신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나라에서처럼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은 채 생활해 나가던 파트로클로스가 수업을 빼먹어 벌을 받을 처지에 놓이게 되자 아킬레우스가 나서 알려주면서 둘의 우정이 시작되었고 우정이 어느덧 애정으로 변하게 된다.

인간을 혐오하고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할 거라는 예언으로 인해 인간과 결혼을 해야만 했던 여신 테티스는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신이 되길 원했고 그녀의 주선으로 헤라클레스와 아이손을 가르쳤던 케이론 밑에서의 배움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든 볼 수 있다던 어머니의 눈이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킬레우스는 이 사실을 파트로클로스에게 전하고 서로의 애정을 확인함과 동시에 밤 역사도 시작되었다. 어머 어머

어머니는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 보인대.

p.118

어릴 적 파트로클로스가 아버지를 따라 헬레네에게 청혼을 하러 가는 에피소드를 볼 때만 해도 이 일이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거라고, 전쟁의 계기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 추후 헬레네가 스파르타의 왕궁에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구혼하는 장소에서 했던 맹세 - 헬레네를 빼앗아가려는 남자가 있을 경우 그녀의 남편의 편에 서겠다는 맹세-를 한 모든 영웅이자 왕들이 참전하게 된다.

전쟁에 참여하길 원치 않았던 어머니 테티스에 의해 여장까지 하며 스키로스의 폐하의 수양딸로 지내던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여 안 하면 그의 안에 신성이 쓰이지 않은 채 시들어 버려 무명인 채로 죽거나 전쟁에 참여해 명예를 얻어 영광스럽게 단명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예언을 듣게 되고, 명예를 선택한다. 이때부터 이들의 비극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른 확신에 목이 메었다.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그가 날 내치지 않는 한 영원히 이렇게 있을 테다.

p.122



"무서워?" 나는 물었다. 우리 뒤편 숲속에서 나이팅게일이 첫 울음을 울었다.

"아니." 그는 대답했다. "나는 이걸 위해서 태어났잖아."

p.257

아킬레우스를 따라 전쟁에 나섰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죽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케이론에게 배운 의술로 다친 병사들을 치료했으며 포로로 끌려온 여성 포로들이 병영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킬레우스에게 그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와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약자의 편에서 손을 내밀고 보살폈던 파트로클로스의 모습에서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 약했던 파트로클로스가 어느덧 성인이 되고 아킬레우스와 함께하며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멋졌으며 그가 나에겐 주인공이었다.

아킬레우스가 눈을 든다. 핏발이 서 있고 아무 감정이 없다.

"이 친구가 당신들 모두 죽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요."

p.392

아킬레우스가 명예를 얻어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예언에 묶여 예전의 정직하고 강인했던 본인의 모습을 점차 잃어만 가는 거 같아 안타까웠다. 꼭 신이 넌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농간을 부리듯이...

파트로클로스를 잃고서 그 시신조차 묻지도 못한 채 자신의 곁에 두고 슬퍼하며 무너져가던 아킬레우스, 그 죽음이 네가 지키고자 했던 명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소리쳐주고 싶었지만 자신을 죽여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아킬레우스의 처절한 모습에서는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죽어서도 함께 하고 팠던 그의 유언이 그의 아들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안타까웠고 마지막까지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모든 걸 지켜보며 이야기를 하던 파트로클로스의 부분에서는 묘하게 마음을 울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너의 짝으로는 한없이 부족한 아이라며 못마땅해하던 어머니 테티스에게 자신의 추억 속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파트로클로스의 모습부터, 그 어머니가 마지막 아킬레우스의 유언을 들어주던 모습 또한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 아이를 신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한다. 상심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그를 만드셨잖습니까.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사그라져가는 마지막 햇살에 눈을 반짝이며 앉아만 있다.

"내가 써두었다." 그녀가 말한다. 처음에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비석 위에 새긴 이름이 내 눈에 들어온다. 아킬레우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파트로클로스가 있다.

"가거라." 그녀가 말한다. "그 아이가 널 기다리고 있다."

p.427

수많은 리뷰에서 책을 읽는 순간 책에서 손을 넣을 수 없다는 말은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공감을 하게 된다. 정말 모든 책들이 이러하다면 수많은 책을 좀 더 즐기면서 읽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매들린 밀러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키르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매들린 밀러라는 작가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 한없이 기쁘다. 어떤 이야기로 나를 또 초대할지 기대된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가망이 없는

묵직한 어스름을 뚫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손과 손이 만나자 빛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태양 밖으로 금 항아리 백 개가 퍼붓듯 쏟아진다.

아킬레우스의 노래 p.428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왜 제목이 <아킬레우스의 노래>였는지 알 거 같았다. 영웅이라고 불리던 아킬레우스도 인간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그는 나를 지켜본다.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나는 미세하게 그의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꼭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기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뭘 할 생각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몸을 기울이자 우리의 입술이 어색하게 맞닿는다.

p.80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구나. 너는 헤라클레스의 모든 기술과 그 이상을 알고 있다. 너는 네 세대, 그 이전의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p.109

내가 그를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 걸까? 나는 살짝 스치는 감촉만으로도, 체취만으로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눈이 멀어도 그가 숨을 쉬는 소리와 땅을 밟는 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죽더라도 땅끝에서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p.175

나는 침을 삼켰다. 프티아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음은 딱딱하게, 모음은 입을 크게 벌리고 발음했다. 처음에는 듣기 싫었는데 아킬레우스의 말소리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얼마나 물들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p.184

"내게 명성은 목숨과도 같아." 그가 말한다. 숨소리가 거칠다. "내가 가진 건 그게 전부야. 나는 앞으로 오래 살지도 못하잖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이 내가 바랄 수 있는 전부라고." 그는 침을 꿀꺽 삼킨다. "너도 알잖아. 그런데도 아가멤논이 그걸 짓밟도록 내버려 둘 거야? 나한테서 그걸 앗아가도록 도울 거야?"

p.342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내가 연고를 발라서 낮게 해준 상처의 흉터로 가슴이 뒤덮인 사람들이다. 내 손으로 살갗에 박힌 쇠와 청동을 제거하고 피를 닦아준 사람들이다. 나에게 치료를 받는 동안 농담을 하거나 감사 인사를 건네거나 얼굴을 찡그렸던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이 흘린 피와 부러진 뼈로 다시 곤죽이 됐다. 그로 인해. 나로 인해.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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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변신
피에레트 플뢰티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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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선에서 본 동화라니! 이건 안볼수가 없습니다!! 너무 기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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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 전8권 - 깊이에의 강요 + 로시니 + 비둘기 + 사랑 + 승부 + 좀머 씨 이야기 + 콘트라바스 +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외 지음, 장자크 상페 그림, 김인순 외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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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 신드롬을 일으킨 대표작을 리뉴얼한 시리즈라뇨!! 정말 소장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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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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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당신께 간청했습니까, 창조주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저를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실낙원》

작가 메리 셀리가 열여덟 살에 쓴 <프랑켄슈타인>이 200주년을 맞이해 풀컬러 일러스트로 출간되었다. 공포 소설을 보지 못하는 내가 고급스러운 벨벳 코팅과 개성 가득한 일러스트에 반해 용기 내어 신청하고 읽게 된 책이다. 받아보는 순간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이 책은 꼭 소장해야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 내기까지 했으니, 정말 이건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알던 그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강렬한 문구와 함께 흔히 책의 시작과 동시에 볼 수 있는 책의 차례가 생략된 채 이 이야기의 탄생을 설명하는 서문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북극 탐험을 나선 월튼이 탐험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마거릿누님에게 쓴 편지로 이어지니 이 책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독학을 한 탓에 항해를 하며 같이 기뻐하고 자신을 위로해 줄 친구가 없다며 아쉬움을 누님에게 토로하던 월튼은 어느 날 거의 죽어가는 이방인을 구조하게 된다. 이 이방인을 살뜰히 돌보며 그와 우정을 쌓길 원하는 월튼을 보며 자신의 과거와 닮았다고 느낀 이방인은 자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쫓다 자신을 무는 독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준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드러나는 진실, 그중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사실은!! 이 이방인의 이름이 바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내 기억 속의 프랑켄슈타인은 머리에 나사를 꽂은 초록빛 괴물인데, 그 캐릭터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고?! 이 이방인의 친구 앙리 클레르발이 그를 보며 부르던 이 대사! "아니 이런, 프랑켄슈타인!"을 읽는 순간 정말 '오마이갓!'이 절로 나왔다. 무려 이 사실을 79페이지에서 알 수 있었으니, 정말 그 충격으로 인해 뒷이야기가 눈에 안 들어올 정도였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의 탄생

트레싱지에 인쇄된 프랑켄슈타인의 작업 노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 출신으로, 공화국에서도 손꼽히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너그러운 부모님 밑에서 다정한 친구들과 공부하는 걸 좋아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독일의 연금술사, 신비주의 철학자)의 책을 발견하게 되고 무모한 망상을 신이 나서 읽으며 현자의 돌과 불로장생의 묘약을 찾는 연구에 매진한다.

인간의 몸에서 질병을 내쫓고

살인과 사고가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인간을 파괴할 수 없게 만든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업적이겠습니까!

p.36




열일곱 살이 된 프랑켄슈타인은 잉골슈타트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발트만 교수를 통해 자연 철학에 빠지게 된다. 한 가지 학문에 매진한 결과 생명과 생명의 근원을 밝혀내는 데 성공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생명이 없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동물과 시체를 이어 붙인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 창조물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새로운 종은 나를 창조주이자 근원으로 창조할 테고,

행복하고 탁월한 많은 생명체들이 나로 인해 생겨나겠지.

나만큼 완벽하게 자손의 감사를 받을 자격을 갖춘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 거야.'

p.55

2년 가까이 생명 없는 육체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생각 하나로 연구해왔던 그였지만 일이 성공하고 보니 꿈꾸었던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 가슴에 가득했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던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홀로 연구실에 남겨둔 채 도망친다. 그로 인해 탄생과 동시에 버림받아야만 했던 그 괴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져 태어나야만 했던 그 악마,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름조차 받지 못한다. 그저 '괴물', '악마'로 불리는 그 창조물의 슬픈 여정과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이 이렇게 시작된다.




홀로 남은 이 괴물은 아무것도 모르고 뭐가 뭔지 구분도 할 수 없었으며 사방에서 엄습하는 고통에 주저 않아 울기도 했다. 그러다 추위에, 배고픔에 마을로 우연히 가게 되고 자신의 외모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헛간에 몸을 숨긴 괴물은 그 헛간의 가족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관찰하며 삶을 배우고 감정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게 된다. 마치 부모를 보고 모든 것을 배우는 아기처럼...

자신의 외모로 인해 홀로 살아가야 했던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렇게만 해주면 다시는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을 헤치지 않을 거라고 제발 자신과 살아갈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애원한다.

"썩 꺼져라, 이 비열한 버러지 같은 놈! 아니, 멈춰라. 너를 짓밟아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아, 너의 그 비참한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네놈이 극악무도하게 살해한 희생자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p.127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악마는 말했습니다. “인간들은 전부 추한 것을 싫어하니까. 그러니 살아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볼품없는 내가 얼마나 혐오스럽겠나!”

p.127

과연 누가 악마인 걸까?!

"당신의 아담이어야 하는 내가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당신은 기쁨에서 내몰았다. 온 세상에 축복이 가득하건만 오로지 나만 돌이킬 수 없어 쫓겨났다. 나는 자비롭고 선량했건만,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어."

p.128~129

내가 머물고 있는 그 집 사람들의 완벽한 외모는 감탄스러웠다. 그들의 우아함, 아름다움, 섬세한 이목구비까지. 그런데 맑은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은 어찌나 끔찍하던지! 처음에는 거울 같은 물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로 나라는 걸 믿을 수 없어서 흠칫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괴물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는 쓰디쓴 절망과 굴욕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p.149

상상 속에서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천 번쯤 그려봤다. 그들도 혐오스러워할 테지만, 상냥한 태도와 친절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사면 나중에는 나를 사랑해 줄 거라고 상상했다.

p.150

"저주받을 창조자! 당신조차 역겨워서 고개를 돌릴 만큼 흉측한 괴물을 왜 만들었는가? 신은 인간을 가엽게 여겨 자신의 모습을 본떠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만들었는데, 내 모습은 추잡하고, 동시에 인간과 너무 닮아서 더 소름이 끼치니. 사탄에게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동료가 있거늘, 나는 혼자 미움을 받는구나."

p.171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불쌍한 괴물의 최후가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음산하면서도 섬뜩한 일러스트가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 <프랑켄슈타인>은 처음엔 월튼의 편지로, 그리고 이방인 프랑켄슈타인의 과거 본인 이야기로, 이어 프랑켄슈타인을 찾아온 괴물 본인의 이야기, 마지막엔 현재로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과학만능주의로 탄생했던 괴물을 피해 다니며 두려워하고 아파했으며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잃게 된 프랑켄슈타인의 괴로움은 나에게 가해자의 변명으로 들렸다.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한 태도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 괴물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프랑켄슈타인이 함께했다면... 태어남과 동시에 버림받은 존재, 괴물의 고독과 울분이 더 크게 와닿았아 안타까움이 더 컸다. <프랑켄슈타인> 읽다 보면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지 묻고 싶어진다. 정말 책 시작과 동시에 적혀 있던 문구로 프랑켄슈타인에게 따져 묻고 싶다.




제가 당신께 간청했습니까, 창조주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저를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실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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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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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p.16

신판소리로 만들어질 정도로 사랑받은 청소년 문학 <깡깡이>가 성인 독자를 위한 특별판으로 출간되었다. 책 표지에서 느껴지는 흘러간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과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어른이 된 맏딸 정은이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의 어릴 적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항상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부모님의 말에 기특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던 정은이었지만 오히려 그 말이 정은이에게 옥쇄가 되어버린 듯하다.

배를 타다 보니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나가 있던 시간이 많았던 아버지가 배사고로 실업자가 되고 추후엔 딴 살림을 차린다. 결국 다섯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마는 깡깡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맏딸 정은이가 살림을 하며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게 되면서 중학교 진학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아버지를 대신한 엄마의 노동을 지켜보며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응어리졌고 나는 남자라는 인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엄마는 아버지한테서 자유로워졌을까?

p.64

엄마는 딸이라서 부모한테 관심 받지 못한 걸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딸한테 그런 관심을 기울일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동식이 육성회비는 밀리는 법 없이 꼬박꼬박 제 날짜에 쥐여 보냈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거라면 어떻게라도 갖춰줬다.

p.150

본인도 맏딸이라는 말에 묶여 희생해왔기에 너만은 그러지 말라고 말했던 엄마, 정작 맏딸인 정은이는 중학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아들 동식이는 어떻게 해서든 다 해주던 엄마, 치매에 걸려 정신을 놓았을 때조차 아들 동식이만 끊임없이 찾는다. '그래 그 시절엔 아들을 더 위했지' 싶다가도 맏딸 정은이가 무슨 죄인가 싶다. 깡깡이 망치 하나로 큰 아들을 공부시켜 가까스로 회계사를 만들어 놓음 뭐하나 엄마에게 목숨 같았던 그 아들 결혼하자마자 처가 식구들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버리는데.. 엄마의 지나친 사랑과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정은이는 말하지만, 정은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난 엄마를 뒤로하고 떠난 동우가 밉다.

"깡깡깡깡깡깡깡……." 조선소에서 깡깡이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늘 듣는 귀에 익은 그 소리. 울고 싶을 때는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기쁠 때는 노랫소리처럼 들리던 깡깡이 소리. 지금은 희망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지르는 함성처럼 들렸다.

p.176

납작한 끌처럼 생긴 망치로 쇠를 두드려 배에 붙어 있는 녹을 떨어낸 다음 쇠 솔로 다시 한번 더 문질러 남은 녹까지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의 고달픔을 망치에 실어, 떨어져 나가는 녹에 담아 털어내고자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에서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였기에 이겨 낼 수 있었던 그 시절, 난 그저 골목 여기저기 누비며 뛰어놀기 바빴던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어른이 된 후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과 동네를 찾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대로인 골목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아이였을 때 그렇게 넓어 보이던 골목이 커서 보니 그렇게 좁아 보일 수가 없었다. 예전에 자주 갔던 책방은 없어졌고 살던 집도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세월로 인해 변한 그 모습들에서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사라진듯한 기분이 들어 쓸쓸했다. <깡깡이>를 통해 다시 그때 그 시절의 공간과 사람들을 추억해본다.

맏딸이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자 엄마도 동생들도 비로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생각은 사람의 운신 폭을 얼마나 좁게 만드는지,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과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p.167

맏딸 정은이는 첫째, 나의 바로 위 친언니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에야 같은 눈 높이로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게 되었지만 뒤돌아보면 언니도 첫째라서 알게 모르게 무거운 짐을 가지고 힘들지 않았을까? 가끔은 그 무게가 지금도 보이는듯해 미안할 때가 있다. 맏딸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정은이처럼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모든 첫째들~ 응원합니다!


+ 특별한서재 출판사 지원도서로 직접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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