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해주세요, 꽃들의 비밀을 - 꽃길에서 얻은 말들
이선미 지음 / 오엘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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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문득 눈에 들어온 꽃들이 내 눈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그제야 계속 그곳에서 자신의 생을 살아온 야생화의 존재를 깨닫는다.

누군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니고, 누군가 심은 것도 아닌 뿌리에서 저 홀로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태어난 야생화.

그 꽃을 야생에서 보는 건 태초의 순간을 만나는 일과 같다는 이선미 저자의 말에 무심코 내가 지나쳐온 태초의 순간을 되돌아본다.



 

누군가 말해주세요, 꽃들의 비밀을’은

저자가 오며 가며 만난 변산바람꽃, 비비추난초, 산해박, 타래난초 등 120여 컷에 담긴 야생화와 더불어 작가가 그 꽃을 만나러 가던 순간과 오며 가며 스친 사람들 그리고 그 과정으로부터 얻은 생각들을 담아놓은 야생화 포토 에세이 책이다.

복과 장수를 뜻하는 ‘복수꽃’

무덤에서 만난 먼 여행을 뜻하는 ‘산해박’

숨어 사는 자란 뜻을 가진 ‘애기풀’

오랑캐꽃, 나폴레옹꽃이라고도 불리는 ‘제비꽃’ 등

야생화와의 만남에서 성경과 신화, 시와 노래를 넘나들며 전해주는 꽃들의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삶 이야기가, 길 위에서 만난 야생화와 주고받은 이야기필사를 자극할 정도로 좋다.


 

꽃은 거기 피었다가 시나브로 진다

내가 꽃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꽃이 살아나고

비로소 나의 꽃이 거기 피고 진다

p.77

마음의 뿌리를 다치지 말고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며 토닥토닥 전해주던 힘겨운 겨울을 지나 눈 속에 핀 꽃들의 말.

때가 있다는 것,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내가 보지 못하거나 갖지 못한 것, 내게 머물지 못하는 것 등 다양한 야생화가 건네주던 사랑의 말, 희망의 말, 위안의 말.

언제 비우고 채워야 하는지 그리고 주어진 삶이란 무엇인지, 꽃을 찍을 때 적절한 거리가 필수적인 것처럼 사람의 관계에도 필요한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고, 지는 꽃을 보며 모든 것에 때가 있음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핀 꽃들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등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보게 만든 포토 에세이 책 ‘누군가 말해주세요, 꽃들의 비밀을’이었다.


꽃이 온 길, 꽃이 가는 길을 안다는 건

내가 온 곳, 내가 떠나갈 곳을

안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 아닐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알게 된 사람은

뿌리를 얻은 것이 아닐까.

p.243

야생화가 가진 의미와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좋았고 중간중간 저자의 애정이 담긴 사진도 보는 즐거움이 있었던 책으로, 수많은 꽃들이 세상 곳곳 많은 길에 새겨놓은 다채로운 활자를 엮어놓은 꽃길에서 마음을 비우고 나아갈 수 있는 말들을 만나보길 바란다.

그런데 시마저 잘 쓰시는 저자님! 나중에 꽃들의 비밀을 담은 시집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좋았던 시와 함께 인상 깊었던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해 본다.

역시 자연이 주는 위로와 힐링은 말이 필요 없다.❤️

봄, 찬란한 예배

꽃은 침묵한다.

그런데 누구든 어떤 말을 알아듣는다.

침묵 안에서 알아듣는 말은 늘 귀하다.

영원이라는 침묵에서 태어난 말들이

꽃들 안에, 꽃이 핀 숲속에 있다.


……

비가 내리는 건 그 이유다

기억하라고

너 또한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였다고

이렇게 꼬물꼬물

꽃처럼 이쁜 시간이었던 몇 해 전

몇십 년 전

그 봄, 그 봄들을 p.24

……

영원한 것은 없으니

영원하리라고 바라지 않고

한때, 잠시, 그 눈부신 순간이

힘이 되기를.

빈 무덤에서 바라기를

누구나 제 안의 빛을 찾기를

그 빛으로 꽃을 피우기를 p.35

나는 차마 도저히 '빛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차마 꽃이 덜 이쁘다는 말도 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앞에 피어준 꽃에게 그저, 그저, 인사한다. 애썼어, 고마웠어. 만나서 정말 반가워.

p.41

모든 만남이 좋지 않아? 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언제든 다가오는 게 좋아.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떤 순간도 의미 없이 소멸하지는 않아. 지금 이 순간도 좋지 않아?

p.47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 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p.75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의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무엇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기쁨은 한순간이어서 아쉽고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위로를 얻는다. 그래서 사람이 산다. 살 수 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지 않으면, 망각의 힘이 없다면, 때로 처절한 고통의 날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모든 것이 지나가고 스러지고 퇴색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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