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빛
마이클 온다치 지음, 아밀 옮김 / 민음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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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빛』

마이클 온다치 | 김지현 옮김 | 민음사


캐나다 소설 / 388 p.

나는 공인되지 않은,

그럼에도 격렬한 전투가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규칙과 협상들이 반만 작동하고,

대중이 접하는 소식 너머에서는 전쟁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

보복과 보복이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며 작은 마을들이 파괴되었고,

더 많은 슬픔이 남았다.

막 해방된 유럽 지도 전역에 존재하는 민족들만큼이나 많은 파벌들이 부딪혔다.

p.187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을까?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알게 모르게 진행되어오던 음지 속 전쟁에서 개인의 욕망가족의 사랑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길로 나아가야 했을 사람들. 그리고 전쟁에 엮인 문제의 소지가 있는 증거들이 화급히 철저히 파괴되고, 수정 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쓰였을 역사.

이 모든 것이 마이클 온다치 장편 소설 『기억의 빛』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진다.

그것도 스파이 스릴러이고 로맨스이면서도 주인공의 성장과 가족의 사랑 이야기도 만날 수 있는 이야기로....!

나는 한 종류의 잎사귀에서 다른 잎사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은 채 몸 색깔을 바꾸는 애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p.120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 어머니는 아버지가 싱가포르로 발령을 받게 되어 한동안 그곳에서 지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며, 그동안 세 들어 살고 있던 남자가 돌봐줄 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모님이 범죄자 비슷한 두 남자들에게 14세 널새니얼과 누나 레이첼을 맡기고 떠났고, 두 남매는 '나방'이란 별명을 붙인 남자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이 떠난 후 나방은 집에 온갖 손님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 집 상황이 좀 이상해서 그래. 엄청 이상해.

왜?

항상 사람들이 드나들어. 이상한 사람들이. p.154


그렇게 나방의 지인 전직 복서이자 개 경주에 미쳐 있는 '화살'과 '화살'의 여자친구이자 민속 지학자인 올리브 등 여러 사람들이 집을 드나들었고, 너새니얼과 레이첼은 그들을 경계하면서도 유대관계를 쌓으며, 그들을 통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실에서 어머니의 트렁크를 발견하게 된다.(동공지진, 작가님 이거 스릴러였어요?!) 어머니는 분명 아버지를 따라 싱가포르로 간다며 짐을 싸지 않았던가?!(궁금증 폭발!)

그렇다면, 그녀가 싱가포르로 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너새니얼을 쫓고 있던 수상한 사람들의 정체는??

결국, 수상한 자들에 의해 납치된 두 남매와 화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것이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고 진화하는 과정일까? 정확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을 짜 맞추는 일? …… 내게 불완전하고 되찾을 수 없는 존재로 남은 그들 모두가, 내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분명하고 정확해지는 걸까? 안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알지 못한 채 지나온 청소년기라는 드넓고 험악한 지형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p.165

사람들은 우리가 살면서 겪은 사건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연속성을 늘 찾아 헤맨다고 한다.

p.183

저자 마이클 온다치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1992년 부커상을 수상했고, 2018년 부커상 50주년을 기념해 수상작 중 최고의 작품에 주는 황금 부커상까지 수상한다. 그리고 이번 최신작 장편소설 『기억의 빛』 역시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너새니얼의 성장을 담은 1부와 소년이 성인이 된 이후를 담은 2부로 나뉜다. 특히 2부에선 1부에 등장했던 의미들이 뒤집히는 반전으로 흥미를 더하고 장외에서도 생각지 못한 또 한 번의 반전으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감기약에 취해서인가?! 분명 읽기 쉽지 않은 책이라 힘겹게 읽은 거 같은데 이야기의 끝을 보고 나니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소설이다.

전시 상황에서 등화관제로 사방이 칠흑처럼 깜깜할 때 길을 밝히기 위해 쓰이는 희미한 빛을 의미하는 원제 『War light』.

뭔가 알 거 같으면서도 안갯속 목적지를 모르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기분이었던 이야기였고, 그 속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지난 일을 회상하며 성장해가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 가족의 어머니이자 여성으로서 살아갔을 그녀와 그녀의 숨겨진 삶의 흔적을 추적하던 아들 너새니얼의 이야기를 통해 음지에서 중요한 활약을 했던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던 시간이기도 했다. 저자의 또 다른 책은 어떤 여운을 남겨주게 될지 궁금해진다.

ps. 그 어떤 사람도 그 사람 자체로 보지 못하고 의심하게 만들었던 상황에서 그들 모두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자였음을 알았을 때 너새니얼은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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