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는 정신 소설, 향
한은형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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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하는 정신

한은형 | 작가정신

한국소설 / 312p.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 여기 이러고 있었지만.

인생에 있어 나쁜 일만은 없다고 생각하려 애쓰고 있었다.

하나가 나쁘면, 하나는 좋다.

세상은 그렇게 시소처럼

양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져 있다고.

p.11

정말 사람 인생,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불안한 만큼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게 아닐까?! 때론 나쁜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걸 보상하듯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당장 5분 후의 일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의도치 않는 재미와 행복을 얻는 삶. 이런 게 사는 거겠지?!

'서핑'이라는 소재로 만난 실시간 재생되던 우리의 현실 이야기를 통해 내가 나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했던 이야기. 그것도 길지 않은 짧은 호흡으로, 툭툭 던지듯 무시함 말투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매혹적인 필력으로. 그러다 따옴표가 생략된 인물들의 대화에 녹아들다 못해 '분홍 코끼리'의 일원인듯한 착각에 빠져들며 그들을 따라 외치게 만든 이야기.

그래, 이게 사는 거지.


결정적인 순간 같은 건 인생에 별로 없다고 생각해왔다. 따지고 보면 매 순간이 결정적이고, 순간순간의 결정이 나를 이끌어온 거라고.

p.18

하와이에서 태어난 '나'는 생각지도 않은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것도 죽음을 선택했다는 큰이모로부터. 

큰이모의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 형제자매가 모두 없어서 형제자매의 자녀인 그녀가 상속 대상이 되었고, 양양 하조대 근처의 동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게 지어진 아파트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였으면 좋아했을 이 유산을 그저 인생이 좀 덜 복잡하기를 원하던 그녀였기에 그다지 기쁘지 않아 한다. 하지만 유산 대리인이 올해 전에는 와야 한다는 말에 7일간의 휴가를 내고 양양으로 가야했던 그녀이다.

그렇게 연말을 양양 아파트에서 보내게 되었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아파트 상가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서핑 강습을 하며 가족들이 서퍼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꾸린다는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게 되면서 서핑 강습을 받게 된 그녀. 그저 해변 아파트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알아보겠다며 와이키키에 발을 들였다가 어느새 본래의 목적은 잊고 서핑에 집중을 하게 된 그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한 겨울 바다에서 넘실대는 파도 서핑 위에서 연말연시를 보내게 될 줄을!! 정말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딱 맞다.



무슨 의지일까요?

놀겠다는 의지. 파도와 놀겠다는 의지. 힘들어도 힘껏 놀아보겠다는 의지. 파도를 타겠다는 의지…… 뭐 이런 게 아닐까요?

p.145

「서핑하는 정신」을 읽다 보니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해 나가는 과정들이 우리의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서퍼들 사이에서는 파도를 타는 것만을 서핑이라고 말하지 않고, '파도를 타기 전, 타는 중, 그리고 타고 나서의 변화된 삶 모두를 서핑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잔잔한 파도여도 타기 쉽지 않은 서핑. 그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패들, 패들, 패들... 팔이 저려올 정도로 저을 뿐이다. 그래, 어디 인생 또한 쉬운 게 있던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듯 깨지고 좌절해도 결국은 나 자신에게 지지 않는 법을 배워나가며 내가 나로 살기 위한 도전을 해나가길. 

그리고 함께 서핑 강습을 배우며 돌고래, 해파리, 상어, 미역, 우뭇가사리라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잊고 있었던 사람의 온기와 위로 또한 전하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자신의 하루를 사랑하고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애쓰던 그녀처럼, 나 자신의 하루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게 만든 이야기였다. 

번아웃이 왔거나 매일 반복되는 바쁜 일상 속 색다른 소설로 힐링을 하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본다.

그치. 자기가 자기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위로야. 너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할 거다. 살자, 살자, 살아야겠다.

p.224

비치 코밍을 하고 있으니 내가 카밍되는 것 같지 않아요? 막 안정되면서 고요해지네.

그러게요, 코밍하니까 카밍해지는 것 같네요.

그치. 해변 정화하면서 마음도 씻고. 허벅지 근육도 키우고, 산책도 하고. 좋구나. 이게 사는 거지.

이게 사는 거지.

우뭇가사리가 말했다.

이게 사는 거지.

돌고래가 말했다.

p.229~230


 

ps. 마지막에 실린 서핑 용어와 작가 인터뷰 구성이 색달랐고 이를 통해 조금 더 깊게 「서핑하는 정신」을 알아갈 수 있어 좋았다.

+ 작정단9기 참여자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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