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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평점 :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도미히코 |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일본소설 / p.400
👩 이백 씨는 행복한가요?
👨 물론.
👩 그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 이백 씨는 빙그레 웃고 작게 한마디 속삭였습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책 제목과 같은 말을 하던 이백 씨. 무슨 의미를 담은 말이었을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3층 전차가 날아다니고, 하늘에서는 비단잉어가 떨어지고, 헌책 시장의 신과 감기 신의 등장 등 판타지스러운 요소가 펼쳐지는 가운데 흑발의 귀여운 후배를 사랑하는 한 대학생의 고군분투기가 그려진다. 현실성이 없으면서도 현실성 있게 그려지는 이야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담은 4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이다.
그는 처음 말을 주고받은 날부터 자신의 영혼을 사정없이 움켜쥔 클럽 후배인 그녀와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만들며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눈에 띄려고 한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그저 "선배, 또 만났네요."를 시전하며 지날 갈 뿐이다.
그래도 그에겐 포기란 없었으니!! 그녀가 자신만의 밤을 즐기려고 혼자 걸어갈 땐 그녀의 뒤를 쫓아가다 길가에서 팬티와 바지가 벗겨지는 봉변을 당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단잉어에 맞아 기절해도, 그녀가 애독하는 그림책을 손에 넣기 위해 강적들과 불냄비를 둘러싸고 나란히 앉아 사투를 벌인다.
이처럼 봄의 밤거리, 여름의 헌책 시장, 가을의 대학 축제, 감기로 모두 드러누워버린 겨울을 통해 짝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묘사되는데, 전혀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들 주위의 괴짜 인물들도 그 웃음에 한몫한다.
특히 신사에 가서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빤스를 갈아입지 않겠다고 맹세해 빤스총반장이 되었다는 그를 소개받았을 때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던 대사에서 정말 빵 터졌다.
아아, 신시여, 그토록 오래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무모한 그를 보호하소서. 온갖 하반신의 병으로부터! p. 203
분명 봄의 밤거리에서 첫 에피소드만 아니었다면 유쾌하게 읽었을지도 모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였다.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층 남자 도도 씨. 그리고 그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된 그녀.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를 불쌍하게 여기던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옷 속으로 손을 넣고 가슴을 만졌음에도 그의 처지를 고려했을 때, 인생론을 들려주었으니 나쁜 분이 아니라며 겨우 자신의 가슴쯤이야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겨울 편에서 그가 감기에 걸렸다는 말에 병문안까지 가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첫 이야기에 등장했던 이 에피소드로 인해 뒤 세 편의 이야기조차 불편함의 요소가 없었음에도 불편했다. 그래서 많이 아쉬움이 남는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이 되었을 만큼 베스트셀러였고 야마모토슈로고상 수상작이었을 이 이야기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거 같아서.
그래도 끝의 둘만 보았을 땐 간질함이 있던 이야기였고, 헌책 시장의 신은 나도 만나보고 싶게 만든 이야기였다.
■ 일기일회라는 말 알아? 그것이 우연의 스쳐 지나감이 될지, 아니면 운명의 만남이 될지, 모든 것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어.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