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 살인자의 성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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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 송병선 옮김 | 민음사

세계문학·중남미소설 / p.212

아이들과 떠들며 걷다 보면 어느새 보이던 푸른 바다, 여기저기 숨을 곳도 많고 다방구를 할 수 있던 벽도 전봇대도 도망갈 곳도 많았던 그곳. 때론 시끄럽다고 다른 곳 가서 놀라는 어른들의 외침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항상 추억이 가득했던 내 고향 부산.

오랫동안 떠나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한 번, 결혼하고 한 번 총 두 번뿐이었지만 갈 때마다 예전의 그 모습들이 사라져가고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어린 추억까지 사라져버린 듯한 상실감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빛바랜 추억 한 조각 한 조각 꺼내며 그날들을 추억할 수 있는 건 예전의 모습에 현재의 모습이 덧입혀졌지만 변화지 않은 모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옛 추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돌아간 그곳이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져 무너져가고 있다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조차도 상상하는 것만으로 숨이 턱 막히는데, 그곳이 고국이라면 그 참담한 심정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각자 자신의 별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넌 몇 개의 별빛을 껐을까?

네가 가는 속도로 너는 하늘을 죽일 거야."

p.102

오랫동안 떠나 있었지만 한 번도 잊은 적 없던 고국 콜롬비아. 풍등을 따라 망가져버린 도로를 달리던 '나'는 엉망이 되어버린 차 안이 마치 콜롬비아가 자신들을 엉망으로 만든 것처럼 느끼며 평화롭던 어린 시절과 너무나도 달라진 도시 풍경에 놀란다. 그리고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청부 살인자인 동시에 매춘을 하며 살아가던 청년 알렉시스와 여러 곳을 다니며 달라진 모습들을 분노와 함께 토해낸다.

세력을 확장하는 콜롬비아 최대 마약 조직 카르텔과 정부의 마찰 그리고 그에 따른 청부 살인자의 수요 증가. 그 일을 하는 이들은 어른 남자가 아닌 십 대 아이이거나 아주 젊은 청년이었고 대부분이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 출신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몸에 세 개의 '스카폴라'를 지니고 다녔다. 일을 맡게 해 달라고, 총알이 목표물을 빗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돈을 받게 해달라고 성모에게 비는 의미로 하나는 목에, 다른 하나는 팔뚝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발목.

하지만 청부 살인자를 양성했던 사회는 동시에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가기도 했다.




'나'의 한 마디에 무참히 살인을 저지르던 알렉시스. 그리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청부 살인자로 인해 고정된 일자리가 없어진 십 대 소년들의 무차별적인 살인, 납치, 강탈 등.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오던 사회.

삶의 가치를 깨달으며 희망을 가지고 커 나가야 할 그들이 길을 잃은 채 살아가며 살인을 하고 매주 성당으로 찾아가 위안과 보호를 간절히 기도하는 그 모순이 정제되지 않은 저자의 분노와 비판이 만나 마음 아프게 그려지던 이야기.

그리고 자신마저 죽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던 그의 마지막 말이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던 이야기였다.

그럼 잘 가,

차에 치이길,

혹은 기차에 두 동강 나길. p.180

피를 토하는 심정이 이런 것일까? 강렬한 그의 마음이 그가 말하고자 하던 이야기 속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고, 그 어지러움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어려움이 있어 소화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고통과 좌절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범죄가 많은 나라'가 돼버린 메데인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 모습 사이사이 현재의 모습도 겹쳐 보여 마음 아픈 시간이기도 했던 「청부 살인자의 성모」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청부 살인자의 성모 인상 깊은 글귀

■ 검사 선생, 나는 콜롬비아의 기억이며 양심이네.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 내가 이곳에서 죽으면, 그건 콜롬비아의 죽음이 될 것이고, 나라는 통제력을 상실하고 엉망진창이 될 거야. 당신이 검찰 총장인지 그냥 검사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거리를 다닌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해. 그리고 새 헌법이 당신에게 부여한 권력으로 나를 지켜주게. p.30

■ 콜롬비아가 난파하고 파멸하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면, 이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 p.51

■ "하느님이 네게 왜 그 눈을 주셨겠어? 눈은 보라고, 심장은 멋짐과 아름다움을 느낄 때 고동치라고 주신 거야." 그래서 겉모습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p. 95

■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고, 가난은 더 심한 가난을 만들어. 그리고 더 심한 가난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살인자가 있고, 더 많은 살인자가 있는 곳에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 이것이 메데인의 법인데, 앞으로 전 지구를 지배하게 될 거야. 그러니 잘 적어놓도록 해." p.125

■ 여기에는 죄 없는 사람이 없어. 모두가 죄 많은 사람이야. 무지와 가난, 이런 걸 이해하려고 해야 하지만…… 그런데 이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게 나름대로 설명할 수 있고, 합리화할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는 범죄에 영합하게 되는 거야. 그럼 인권은? 인권은 무슨 인권, 그런 건 생각해 볼 가치도 없어! 그건 영합이며 방탕이고 방종이야. 자, 그럼 잘 생각해 보자고. 만일 여기 아래에 죄지은 사람들이 없다면, 그게 뭐지? 그건 범죄가 스스로 이루어진다는 게 아닐까? 범죄가 스스로 저질러지지 않고, 여기 아래에는 죄지은 사람이 없다면, 죄 있는 장본인은 저 위에 계신 분이야. 이런 범죄자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무책임한 분이셔. p.150



+ 지인 선물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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