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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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율리 체 |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세계문학 / p.512

어느 날 그녀는 산책 중에 거리 측정기를 착용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측정기가 '삑' 소리를 내자 그 남자는 팔을 흔들며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녀는 이전에 일어난 그 어떤 일보다 그 소리에 더 경악했다.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이성을 잃는다는 게 가능할까?

p.37

과연 마스크를 벗고 온전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 처음 코로나19가 발병되었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비말 차단 마스크, 학교의 온라인 수업, 재택근무 등 새로운 개념들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가 그나마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계속 자리 잡는다. 그리고 노마스크를 실행하며 일상 회복을 준비 중이라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과연 나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된다. 이젠 오히려 마스크 없이 외출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도라의 이야기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그녀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 가장 바라는 건 모든 게 2년 전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다. 안전한 일자리, 확신에 찬 삶, 로베르트와 둘이서 발코니에 앉아 있던 그 시절로. 하지만 그녀는 가능하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걸, 상황이 변해버렸다는 걸 어렴풋이 느낀다. p.256






도라의 연인이자 기후전문가로 활동하는 로베르트는 도라가 쓰레기 분리수거 시 작은 실수만 해도 마치 범죄를 저지른 듯 흥분하며 질책한다. 비닐봉지 너머로 토네이도를, 전구 너머로 홍수를, 오프로드 차량 너머로 내전을 주시하며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는 도라에게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거냐고 몰아붙일 땐 나조차도 숨이 턱 막혀왔다.

그런데 비닐봉지보다 면 에코백을 생산할 때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에코백 한 개당 최소 130번은 사용해야 비닐봉지보다 더 친환경이라는 사실도? 만약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그때마다 에코백이나 종이봉지를 샀다면? 주방 찬장에 있는 최소 서른 개의 에코백 한 무더기를 보며 현기증을 느끼던 도라가 왜 남처럼 보이지 않는 것인가?!

무엇보다 로베르트가 코로나19로 더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점점 더 도가 지나친 행동을 보이며 자신이 일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도라에겐 요헨의 산책조차 나가지 못하게 제재를 가했을 땐, 흑백논리의 끝판왕을 보는 기분이었다.





로베르트를 떠나 시골에 마련해둔 집에서 머물게 된 도라가 자신을 나치라 소개하는 고테와 그의 딸 프란치를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인간에 대하여」이다. 조금만 읽으려고 펼쳤다가 도라가 점점 고테와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혼란을 느끼면서도 우정과 인간애를 느껴가는 과정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그 자리에서 끝을 보게 되었다.

잔잔하면서도 단단했고, 마지막엔 목이 아파질 정도로 울컥함이 자리 잡는 여운이 함께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이웃들 사이에서 마주하게 된 동성애와 인종차별까지 함께하며 진행된 이야기들이 좋았다.

이미 멀리 와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된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을 누구나 느껴보았을 것이다. 도라 또한 매몰비용의 오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주민센터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모습이 꼭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이야기하며 결국 모든 인간은 한 명 한 명이 세상으로 통하는 창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또 누가 무엇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치를 반대하든 지지하든,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마법 같은 단어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그럼에도 살아 있(p.420) 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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