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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1월
평점 :
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 퍼플레인
SF소설 / p.224
여기 있는 우리는 자기가 살던 지구가 망하거나, 우리의 손시아를 죽여서 지구를 구했어.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지구가 망하게 둘 수 있어? 단 한 사람 때문에? 세상 모든 생명이 진흙탕에서 숨 막혀 죽어 가는 꼴을 볼 수 있어?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우주와 평행선상에 위치한 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나'의 존재가 나를 찾아와 저 사람을 죽여야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그 사람이 자살을 하면 안되고, 꼭 내 손으로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난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예지몽을 꾸고 다른 우주에서 온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유리에게 찾아온 또다른 '나'의 다섯명. 그들이 유리에게 반 친구 손시아를 죽여야만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자신들 또한 자신들의 지구를 그렇게 구했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을 닷새까지 과거로 돌릴 수 있는 '인과율자'에 속하는 륜에게는 그 대상이 엄마였고, 중력을 거스르는 '역중력자' 토토에게는 자신의 짝이었으며, 두 갈래 선택지에서 언제나 정답을 택할 수 있는 '판단자' 렌에게는 쌍둥이 동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유리의 반친구 손시아가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죽어야 하는 대상들의 공통점이 다른 사람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그 걱정을 흡수하며 대신 걱정을 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것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자신의 걱정도 아닌 오직 다른 사람들의 걱정만 하다가 살아가던 그들이 왜 지구를 망하게 하는 존재로 설정이 된 것일까? 왜?
내가 다 억울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유리가 울음을 참으며 속으로 삼켰던 말이 그래서 더 마음아프게 다가왔다. 정말 시아에게 제발 네 걱정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제발 너를 걱정해.
네가 죽을까 걱정해.
내가 너를 죽일까 걱정해.
제발. 제발. 제발.
어떻게해서든 시아를 구하려고 한 유리와 계속 시아를 죽이라고 몰아가던 다른 '나'의 존재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잔혹한 행위도 서슴치 않아 하던 그들의 모습에,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존재를 죽이고 지구를 구해야했던 그들의 아픔보다는 마음의 불편함이 자리잡는다. 자신들이 자신의 시아를 죽였으니 너도 너의 시아를 죽여 지구를 구하라고 압박하던 그 행동들이 너무 악하지 않은가?!
정말 다른 내가 시아와 행복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 그저 다른 사람들의 걱정만을 덜어주며 살던 시아에게 제발 네 걱정을 하라고 말하던 유리의 절실하던 그 간절한 마음이 배가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너무 슬펐던 이야기였다.
ps. 텅빈 마음으로 망가져 가던 아이들의 모습, 현실에선 보고 싶지 않은 부정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저 조금은 더 희망적인 것을 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