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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특별 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김남주 옮김 | 민음사
프랑스 소설 / p.256
과연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기적이라는 말이 있듯 서로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이 이루어지면 행복함과 즐거움은 배가 되어 돌아오지만 서로 사랑하는 크기가 항상 같을 수 없고,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랑은 아픔과 불행 그리고 고독으로 돌아온다.
이 모든 복잡 미묘한 감정이 폴과 로제 그리고 시강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였다.
서른아홉 살 실내 장식가이자 이혼녀 폴은 현재 로제와 6년간 교제 중이지만 자유를 갈망하며 다른 여자에게서 즐거움을 찾는 로제로 인해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미팅을 하기 위해 간 고객의 집에서 고객의 아들, 잘생기고 변호사이기도 한 스물다섯 살 시몽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폴에게 한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치며 그녀에게 다가오는 시몽과 다른 여성에게 빠져 폴에게 소홀해져 가는 로제. 과연 폴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 궁금해 그 자리에서 다 읽었던 이야기.
처음엔 폴과 시강의 나이 차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며 로제 위주로 돌아가는 삶 속에서 자신을 잃어 가던 폴의 모습과 로제의 파렴치한 배신 어린 행동이 나의 마음을 두드렸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그녀 자신보다 미리 알아채면서 온몸으로 부딪혀오던 시강이 나의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들었다.
어느덧 난 폴이 로제와 헤어지기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 주는 시강과 이어지기를 바라며 소설이니깐 가능한 결말이 되지 않을까란 사심 가득 담은 응원을 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저자가 일반적인 연애소설을 쓰지 않음으로써 끝이 났다. ‘그래, 이게 현실인 거겠지’란 씁쓸한 마음과 함께 이해되지 않았던 폴의 선택.
오늘 6시에 블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꼭 내가 데이트 신청을 받은 듯한 설레임과 동시에 이 질문의 물음표가 말줄임표로 변하며 상념에 젖어들던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 울컥함이 함께 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자신의 스승의 아내를 평생 동안 짝사랑했던 독일 음악가 브람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시강이 폴에게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냐고 물어오던 말과 같았던 질문, 그리고 그녀가 어느 순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녀의 집중력은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었음을, 그동안 자신이 자아를 잃어버렸음을 깨닫던 그 순간이 마음 아프다.
그런데도 그를 선택한 그녀. 로제가 폴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새사람이 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사랑에 대한 회의만을 학습해왔던 그녀였고 고통이 늘 함께 그녀의 일부로 자리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무엇보다 시몽의 현재 모습이 과거의 로제의 모습으로, 훗날 시몽 또한 로제처럼 변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안주하기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해도.
헤어짐이 아닌 스스로 다시 고독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살기로 결정했던 그녀가 온전히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용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며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마약중독, 도박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프랑수아즈 사강.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사랑이 영원하지 않음을 그리고 사랑의 덧없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ᄄᆞᆼ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p.65
▶ 시몽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랑이 자신 안에서 폴을 부르고, 폴과 만나고, 폴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겁에 질린 채 고통스럽고 공허한 마음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p.121
▶ 여기 내 몸이 있어요. 내 열정과 애정이 있어요. 이것은 내게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당신에게 준다면, 나로 하여금 다시 사는 맛을 느끼게 해 줄지도 모르죠. p.160
▶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