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와 나 - 짧은 만남에 관한 이야기
제이 파리니 지음, 김유경 옮김 / 책봇에디스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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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와 나

제이 파리니 | 김유경 옮김 | 책봇에디스코

여행 에세이 / p.368

👨 저는 제이 파리니입니다.

👨‍🦳 아, 주세페 파리니! p.103

책 제목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실룩 실룩거릴 정도로 재미있었던 「보르헤스와 나」는 순전히 이언 매큐언이 하도 웃어서 아내가 옆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는 책 소개에 꽂혀 읽게 된 책으로, 둘의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제이 파리니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로 평가받는 보르헤스를 만나 스코틀랜드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 형식의 회고록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가?!

정말 제2의 돈키호테와 산초 그리고 로시난테와 스코틀랜드를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다. 어쩜 가는 곳마다 사건(?)이 터지는데 그 과정 속에서 웃음이 계속 나온다. ㅋㅋㅋ




베트남전의 징집을 피해 스코틀랜드로 온 제이 파리니는 우연히 예전의 자신의 튜터였던 앤라이트 씨를 만나게 되고 시를 쓰고 싶다는 그에게 번역가 알레스테어를 소개해 준다. 그렇게 인연이 된 알레스테어로부터 왕고모뻘인 분이 편찮아 급히 떠나게 되었다며 자신의 집에 온 보르헤스를 대신 돌봐달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런데 짐을 챙겨가자마자 바로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나게 생겼다.ㅋㅋㅋ

👨 알래스테어한테 이 여행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 아니, 지금 막 생각났어. 통찰력이랄까. 자, 이제 출발하세, 주세페.

👨 지금요?

👨‍🦳 시간은 늘 지금밖에 없어. 행동하게, 젊은이! 미루지 말게! 그건 최악의 중죄야!

보르헤스의 막을 수 없는 이 추진력 어떡하지?! ㅋㅋㅋㅋ 그렇게 제이의 오래된 차는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던 게으르고 늙은 말 '로시난테'로 그리고 주세페라 불리던 제이는 어느새 '산초'로 불리면서 둘의 여행이 시작되었고, 시력을 잃은 보르헤스의 요구에 따라 제이는 자신이 본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카네기 도서관에서 책등을 혀로 훑어 도서관 안내자 던 씨를 기겁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로 속으로 앞장서 가다가 사라지기도 했으며 급 소나기를 만나게 되자 차에서 내려 소낙비 속으로 리어왕의 대사 '바람아! 너의 뺨을 갈라버려라! 분노하라! 불어라!'를 외치며 길을 올라가다 굴러떨어져 병원을 가기도 한다.

계속되는 보르헤스의 요구 사항에 지쳐가던 제이, 간호사가 제이를 불러 보르헤스가 아버지냐고 또! 물어오자 '네, 제 아버지 맞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고 싶네요. p.209'라고 말하고 싶은 걸 겨우 참는데 정말 아이고 아부지가 절로 나온다. ㅋㅋㅋㅋㅋ 상태가 안 좋다는 간호사의 말에 최고로 좋다는 보르헤스, 다시 제이에게 정말 괜찮으신 거냐고 묻는 간호사.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어봤냐고 묻는 보르헤스를 보며 질문 공세가 길어질 거 같아 빨리 병원에서 병원 의사가 내보내기까지 ㅋㅋㅋ

어디 이거뿐이랴?! 배를 타다 급 일어나 그렌델 베오울프에 나오는 창조의 노래를 웅변하다 배가 뒤집히고, 방이 하나밖에 없어 한 침대에서 자던 부분에서는 정말 미치겠다가 절로 나오며 한참을 웃었다. 이언 매큐언이 웃었다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스포이니깐 여기까지 읍!🤭)




노라라는 한 여성을 오랫동안 사랑해왔던 보르헤스와 현재 벨라를 사랑하고 있는 제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남자의 여행기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보르헤스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아버지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기까지의 과정을 함께해서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다.

특히 보르헤스와 여행을 하며 하나하나 나 또한 배워나가며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었고 '베오울프', '로빈슨 크루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신곡' 등 많은 책들이 소개되며 책의 인용 부분으로 그려지는 상황들도 좋았다. 코믹하면서도 아름다웠고 감동까지 있었던 이야기, "뭘 생각하고 있나 주세페? 아래 뭐가 있는지 말해주게! 말을 하라고!"라고 말하던 보르헤스가 벌써 그립다.

저자가 "한 사람에 대한 순수하고도 잔잔한 기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이 책을 만나보길 권한다. 함께 읽고 이 즐거움으로 수다한판 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보르헤스와 나, 인상 깊은 구절

여행 에세이 추천

▶ 그는 내게, 내가 본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모든 경험을 다시 바꿔 표현해서, 그것들을 영원하게 만든 ㄴ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묘사는 계시야. 그 어떤 것도 언어로 표현되지 않고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p.128

▶ 생존의 전략이었지, 아들. 우리는 어떤 이야기에서건 미로로 들어선다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우리가 시작한 곳에 도착하게 되지. 그런데 그곳은 늘 우리 자신이야. p.171

▶ 산초,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하이랜드에서 보내는 요 며칠은 일상적으로 흘러가던 내 삶에 찾아온 사랑스러운 휴식으로 내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있을 걸세. p.204 (저두요)

▶ 나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는 죽어있는 우주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소생시킵니다. 그 자체가 위대한 시력입니다. p.232

▶ 나도 괴물일세. 자네도 괴물이야. 마음속에 네시나 그렌델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어. 우리는 한밤중이면 어두운 물속에서 수영을 하지. 나는 떨면서 잠에서 깨어난다네. 자네는 그렇지 않나? p.241

▶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날아오르기도 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 이것도 그의 시적 일상의 일부인 건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자신만의 노래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걸까? p.254

▶ 보르헤스는 그런 작고도 완벽한 텍스트들을 창작해 낸다네. 이야기이면서 에세이이고, 그러면서도 모두 시야. 일종의 주술이랄까. 보르헤스를 읽고 나서 자네가 만약 기차를 놓친다면 그 사건도 의미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질 거야.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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