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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ㅣ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 위즈덤하우스
청소년 문학 소설 / p.220
요즘 어디 재미있는 판타지 없냐고 찾는 둥이들에게 딱인 책을 만났다. 책 제목과 표지부터 눈을 사로잡던 위즈덤하우스의 청소년 문학 시리즈 「오백 년째 열다섯」이다. 무엇보다 환웅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할 때 사람이 되고자 했던 곰과 호랑이의 단군 신화에 여우가 더해지는 세계관이 흥미롭다. 그리고 중간중간 ‘여우 누이’, ‘은혜 같은 까치’, ‘호랑이 형님’ 등 우리 옛이야기까지 만나는 재미도 있다.
또한 오백 년째 열다섯으로 살아가며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여러 삶을 살아가는 가을을 통해 앞으로 계속 마주하게 될 ‘성장’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한다. 과연 직업도 가질 수도 결혼을 할 수도 부모가 될 수도 없는 열다섯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 될 수 있을까? 그것도 이 세상에서?!
정말 열다섯으로 오백 년째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저자가 쓴다고 했을 때 “열다섯을 일 년 보내는 것도 끔찍한데 오백 년이라니요?!”라며 인상을 쓰던 십 대 아이들의 반응에 한 표 더하고 싶어진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학생 신분으로 오백 년을?! 으~ 생각만으로도 너무 힘들다.
이런 힘듦을 오백 년 동안 하고 있는 가을은 원래 인간이었다고 한다. 가을이 서희였던 시절에 덫에 걸린 새하얀 여우를 구했는데, 그 하얀 여우가 야호족의 ‘령’이었다. 한 번 입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철칙에 따라 죽어가는 세 모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구슬을 나눠준 령. 그로 인해 가을과 엄마 그리고 할머니는 종야호가 된 것이다.
할머니와 엄마는 살아왔던 세월에 따라 가진 경험으로 새로운 일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며 살아가지만 열다섯에 종야호가 되었던 가을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친구들이 어른이 되고 죽어가도 그저 스쳐 보내며 여전히 열다섯에 멈추어 있다.
그렇게 또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가을. 그런데 이번엔 엄마와 할머니도 열다섯으로 변해 함께 전학을 한다. 그것도 봄, 여름, 가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쌍둥이로 ㅋㅋ 막내라는 이유로 봄과 여름의 숙제며 청소까지 다해주는 가을은 친구들로부터 ‘렐라’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고, 령의 동생 휴도 전학을 오더니 의문의 전학생 유정까지 합류한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가을!
알고 보니 최초 구슬을 둘러싼 야호족과 호랑족의 전쟁이 있는 해였던 것이다. 서로를 지키자는 세력과 적을 없애자는 세력이 나뉘면서 위협을 받게 되는 가을.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며 친구가 된 신우가 납치가 되며 가을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가을은 구슬을 지켜내고 신우를 구해낼 수 있을까?
단군을 도와달라는 웅녀의 부탁으로 구슬을 받게 된 여우 야호족의 설정이 참신해 좋았다. 그리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도 아니고 온전한 야호족도 아니었던 가을이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열다섯에 멈추어 선 채, 자신의 정체를 속이며 살아가는 삶, 계속 떠나보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가을의 성장에 중점을 둔 이야기였던 만큼 구슬 전쟁으로 가는 과정이 조금 긴장감이 덜해 아쉬웠지만, 다음 편이 나올듯한 새로운 전학생이 오면서 이야기가 끝난 만큼 혹 다음 편이 출간된다면 조금은 더 구슬에 의한 능력이 빛을 발하는 모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정말 다음 편이 더 기대되는 「오백 년째 열다섯」이야기였다.
▶ 살릴까 말까가 아니라 살리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p.22
▶ 가을을 스쳐 간 아이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다.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르니까. 하지만 가을은 여전히 열다섯에 멈춰 있다. p.27
▶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지 않아. 그런데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더라. 나쁜 사람 때문에 좋은 사람을 놓치면 안 되잖아. p.35
▶ “내가 야호가 아니었으면 너를 만나지 못했을 거야. 새로운 이들을 만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단다.”
가을은 이제껏 만났던 이들을 떠올려 보았다. 돌이켜 보면 같은 삶은 없었다. p.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