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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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권

도스토옙스키 |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세계문학 / p.568

지상낙원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느 정도 낙원을 기대하시는군요. 낙원은-얻기 힘든 것이에요, 공작,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얻기 힘들답니다.

p.39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선과 악은 자신의 선택이나 가치관 또는 자신이 처한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그 정도의 차이를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이 주관적인 개념을 한쪽으로 완벽하게 분리해 나눌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사람을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도스토옙스키 저자는 므이쉬킨 공작을 이 책 「백치」에서 절대 선으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그리스도적 인물로 그려지는 공작은 연민으로 가득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사랑하는 아글라야가 아닌 사랑하지 않지만 불행한 나스타시야를 선택하는 모순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본인뿐만 아니라 두 여자와 로고진을 파국의 길로 안내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공작의 선함이 우유부단함과 나약함으로 나타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결국은 공작이라는 인물 한 명으로 모든 사건이 발생할 정도이다. 정말 저자가 아름다운 사람을 긍정적으로 그려낸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당신은 참으로 보기 드문 분입니다. 다시 말해, 한 걸음 뗄 때마다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이 아닐뿐더러, 아마도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분이거든요.

p.91

백치라며 무시하던 사람들이 정작 공작의 순박함에 기분 좋아짐을 느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유쾌해한다. 그리고 공작을 인간적으로 판결해 주는 사람으로 고결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느끼며 공작에게 자신의 불행과 고민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공작 주위에 모여들며 찾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공작이 사랑하는 아글라야. 그녀는 공작이 다른 사람에게 그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면 누구보다 정직하고, 고결하고, 훌륭하며 선량한 당신이 왜 자신을 비하하고 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자신을 세우는 거냐며 그를 위하며 화를 낸다. 그런데 또 공작을 비하하고 모자란 사람이라며 놀리며 즐거워한다. 더 어이없는 건 공작이 청혼하지 않았음에도 절대 저런 사람과 결혼 못 한다고 소리치며 가족뿐만 아니라 공작까지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 여자 왜 이러나요?!' 싶을 정도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던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누가 들여다보는 걸 두려워해 계속 자기 마음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공작을 사랑한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정말 아리송하다. 그런데 또 정혼자로 결정이!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서 아이스러운 모습이 보인다며 마음을 빼앗긴 공작이라니! 도대체 어디가?! 응?!




공작이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가 불행하다는 이유로 선택한 나스타시야. 그녀는 자신을 타락한 여자로 여기면서도 악한 인간들의 희생양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그리고 자신을 처음으로 온전히 바라봐 준 공작에게 마음을 준다. 하지만 그녀는 로고진과의 결혼을 선택했고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그런데 그녀가 로고진으로부터 도망쳐 공작에게 가더니 또 공작으로부터 도망쳐 로고진에게 간다. 그러길 여러 번, 나중에는 아글라야와 공작을 결혼시키고 그때 자기도 로고진과 결혼하겠다며 아글라야에게 편지를 보낸다. 하... 이 여자는 또 왜 이러는 걸까?

이런 그녀를 공작은 미친 여자라 말하고, 그녀를 볼 때마다 너무 무섭다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졸도한 그녀를 두고 가면 그녀가 죽을 거라며 아글라야가 아닌 나스타시야를 선택한다. 그리고 자기 잘못인 게 틀림없는데 자기가 과연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며 아글라야에게 모든 걸 잘 설명한다면 그녀는 다 이해해 줄 거라 말한다.(범인이 여기 있었네, 공작 너였네. 너였어.)

"오, 아닙니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 여자는…… 어린애니까요. 지금 그녀는 어린애예요, 완전히 어린애! 오,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아글라야한테 사랑을 맹세했단 말이죠?"

"오, 그래요, 그렇습니다!"

"뭐라고요? 그럼 두 여자를 다 사랑하겠단 말인가요?"

"오, 맞아요, 그렇습니다!"

"제발, 공작,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정신 좀 차리세요!"

p.447




고대 그리스에서 백치(idiotes)는 ‘공적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자, 공적이지 못한 인간, 사인(私人)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정치적인 공적 세상에 참여하지 못하고, 공적인 삶과 세상의 삶에 참여하기엔 부적격하다고 선언되어 배제되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그러한 인간이 백치 므이쉬킨 공작인 것이다.

사소한 일상사에 영리하지 못하나 본질적 가치와 힘을 파악하는 직관적 시선을 지닌 순박한 인간 '그리스도 공작'을 보고 있으면 선과 악의 공존함에 있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백치」 1권에서 어느 정도 분위기에 익숙해져서인지 다행히 2권 초반까지는 잘 읽힌 편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주변 인물들이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여러 장에 걸쳐 이야기할 때는 잠시만 정신을 놓아도 이야기가 저 멀리 안드로메다행이라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100페이지 가량 남았을 때부터 엄청 잘 읽히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빠져들었고 결말에선 입틀막을!

'아, 이래서 도스토옙스키인 건가?!' 싶었을 정도로 마지막 흡입력과 파격적인 결말은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분명 「백치」 너무 어렵다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이 저자랑 나랑 안 맞나 보다며 울먹이며 읽은 거 같은데, 결국 다음 작품을 검색하고 있는 나다. 뭐지?! 뭘까?! 정말 이 감정 뭐냐 말이다. ㅋㅋㅋ

아직 깊게 종교적이나 그 시대 상황은 나의 부족한 내공으로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어렴풋이 정리가 되면서 잘 마무리가 되었던 만큼 뿌듯함이 배였던 「백치」였다. 다음 작품은 뭘로 읽어보면 되려나?!^^ '가난한 사람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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