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6호 병동

안톤 체호프 |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59

여기에 있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감옥과 정신 병원이 있는 한,

누군가 거기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p.57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 의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되는 과정들로 인해 '누구나 거기에 갇힐 수 있겠다.'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그들을 정신 병원에 보낸 의사들이 정상일까? 아니면 그 안에 갇히게 된 사람들이 정상일까?

아프기 때문에 당신이 거기에 갇혀있는 거라고 말하던 의사의 대답에 정신 병원에 갇혀있던 이반 드미뜨리치가 당신들이 무식하게도 미치광이와 건강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해서 수십, 수백 명의 미치광이들이 자기 맘대로 나돌아 다니지 않냐고, 대체 왜 자신과 여기 이 불쌍한 사람들만이 속죄양처럼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여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되묻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붙잡힌 사람은 갇혀 있는 것이고, 붙잡히지 않은 사람은 돌아다니는 것이라는 우연만 있지 도덕성이나 논리는 없다는 의사의 허무한 대답 또한 어떠한가?! 이 사회가 정상적이긴 한 걸까?



「6호 병동」은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현재 알고 있는 병원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소설 속 병원은 악취가 가득하고 바퀴벌레와 빈대 그리고 쥐들과 함께하며 체온계도 없고, 목욕탕에는 감자가 쌓여있을 정도로 비위생적이다. 그리고 이걸 바로잡아야 할 사무장과 시트를 담당하는 여직원과 보조 의사는 오히려 환자들을 갈취하고 도시 사람들은 이러한 병원의 실태를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둔다.

그래서 이곳에 새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등장했을 땐 '이 병원도 나아지겠구나'라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희망을 비웃듯 의사는 명백한 가짜 계산서인 걸 알면서도 서명을 해주고 환자로부터 간호보조원들이 난폭하다는 말을 들어도 당황하며 잘못을 빌듯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나중에 알아보겠다고 웅얼거렸으며 나중엔 환자마저 보조 의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미친! 이 절로 나오던! 아고고...)

모든 지방 관리들도 해로운 일을 하면서, 하는 일 없이 봉급을 받는다……. 그러니까, 내가 부정직한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이 시대의 잘못이다……. 내가 2백 년 후에 태어난다면 딴사람일 것이다. (p.50)라고 말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사라니!!!!

정말 당신, 보조 의사, 사무장, 그리고 당신 병원의 모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도덕적인 태도 면에서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나쁜데, 대체 왜 우리는 여기에 갇혀 있고, 당신들은 그렇지 않은 거요? (p.55)라고 묻는 이반이 더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





지혜롭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프다고 말해왔던 의사 안드레이 이피미치에겐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하게 된 이반 드미뜨리치의 목소리와 그의 젊고 지적인 찡그린 얼굴이 단비와 같았으리라.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이러한 방문이 병원 전체에 알려져도 그의 방문은 계속되었고, 위원회 소집이 자신의 정신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열렸다는 사실에 비웃던 그.

나 또한 그저 그가 이제서야 제대로 환자를 마주하고 대화하며 치료해 나가는구나 생각을 했지, 그가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될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정말 어쩌다 정신 병원에 갇히게 되었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때의 충격과 공포란!

의사 또한 정신 병원에 갇혀서야 자유를 잃게 된 모습에 공포를 느끼며 그제서야 환자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왜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또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후회하면 뭐 하나. 이미 그는 갇혔고 내보내달라고 난동을 부리다 맞기까지 했으니.

폭력과 난잡한 방탕과 위선이 가득하고 인간들의 이중적인 면이 잘 드러났던 「6호 병동」, 당대 러시아 지식인의 절망적 상황을 풍자했다는 소설. 좋거나 나쁘거나 한 원인을 자기 밖에서 구하는 인간일지 아니면 자기 내부에서 구하는 사람일지 생각해 보게 했던 소설이었다.

편견과 세상 속의 모든 속악하고 혐오스러운 것들도 필요하다. 마치 분뇨가 흑토가 되듯이 그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쓸모 있는 무언가로 변질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그 원천이 속악하지 않은 훌륭한 것이란 하나도 없다. p.33

ps. 쓰다 보니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리뷰는 어디로?!ㅎㅎㅎ 그만큼 6호 병동의 이야기가 강렬. 누가 나를 정신 병원에 보내기로 마음먹음 정말로 갈 수도 있겠구나 싶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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