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49

인간은 피차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전혀 다르게 보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라 여기고, 평생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낭독하는 것이 아닐까요? p.96

최근 어떠한 일로 인해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꼭 ‘가면극’을 하고 있는 거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타이밍에 ‘인간 실격’을 읽게 되다니!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의 가면을 쓰고 생활해 나가고 있을지도...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요조처럼 내가 없는 내 삶을 매일같이 살아가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옥이지 않을까?

자신에게 결손된 것을 숨기기 위해 그가 선택한 광대짓,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과 동화되고자 했으나 끝내는 인간 실격자가 되어야 했던 그. 그리고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죽음의 길로 들어섰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세상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허세와 체면 차림에

뭐라 말할 수 없이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p.81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요조. 그는 인간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에게 결손된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광대 짓을 시작한다. 하지만 광대짓을 할수록 더 자신의 비인간성과 공허함을 느끼게 될 뿐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아무 의욕 없는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공부를 잘해서 자연스럽게 상급학교에 진학했고, 집을 떠나 도쿄 생활에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림을 배우는 어느 학생으로부터 술과 담배 그리고 매춘부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운다.

인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하룻밤의 고요한 휴식을 얻기 위해 가기 시작한,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한 매춘부들과 알고 지내면서 매춘부를 통해 여자 수업을 했던 그. 자신도 모르게 난봉꾼 같은 냄새를 풍기며 그런 그에게 환상을 품는 여자들.

사람의 호감을 사는 방법은 알아도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던 요조는 모두 살갑게 대하지만 거기에 진심이 없다는 사실에 그저 모든 교제가 고통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열심히 광대 짓을 한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무슨 짓을 해도, 뭘 해도, 더 심해질 뿐이다. 수치에 수치를 더할 뿐이다. 추악한 죄에 천박한 죄가 겹쳐 고뇌만 늘어나고 강렬해질 뿐이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게 죄의 원천이다. p.134


우리가 아는 요조 씨는 아주 순수하고,

재치가 있고, 술만 마시지 않았으면,

아니지, 술을 마셨어요……

신같이 선한 사람이었어요.

p.144

이 문장을 보고 있으면 내가 아는 주인공 ‘요조’가 맞나 싶다. 세상에 연설회만큼 재미없다고 말하면서도 연설회가 어떠냐고 묻던 어머니에게는 정말 재미있다고 태연하게 거짓말하는 그들을 보며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는 광대 짓으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를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었다면 자신은 이렇게 인간을 두려워하지도 필사적으로 서비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하인과 하녀들을 증오하게 된 범죄를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하며 자신에 대해 신뢰의 껍질을 단단히 닫게 된 그의 이야기를 보면 ‘여기에서부터 였을까?’ 싶다가도 자신의 아내가 겁탈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음에도 묵인하던 그가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한 자신의 그 고독한 냄새에 수많은 여성이 본능적으로 다가오며 훗날 갖가지로 이용당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하지 않았냐고 이야기하던 그 또한!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그가 선택한 것은 끝내 자살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꼭 여성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했고, 그렇게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작가와 비슷한 삶을 살다간 요조.

신에게 묻겠습니다. 저항하지 않는 것은 죄인가요?

지금 이곳에서 나간다고 해도 나는 역시 미치광이, 아니 폐인이라는 각인이 이마에 찍히게 되겠지요.

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닙니다. p.137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p.140

때론 그 모든 것이 지나가길 기다리기도 해야겠지만, 인간의 위선과 탐욕에 무조건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 이해하는 척, 인간 실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 살아가기보다는 때론 저항도 하고, 미움받을 용기도 가지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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