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도둑맞은 편지

에드거 앨런 포 지음 |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17

「도둑맞은 편지」에는 총 4편(‘어셔가의 붕괴’, ‘붉은 죽음의 가면극’, ‘검은 고양이’, ‘도둑맞은 편지’)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첫 편 ‘어셔가의 붕괴’부터 가히 압도적이다. 아직도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문체 자제에서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발산되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저자 에드거 앨런 포는 한국에서는 추리소설의 시초라 불리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을 집필한 추리소설가로, 미국에서는 ‘어셔 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같은 공포소설을 쓴 장르 문학가로,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 작가 또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이후 추리소설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서술 방식이나 트릭, 규칙 등의 상당수가 저자로부터 나왔다고 할 정도로 현대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꼽힌다는 그의 작품을 이번 열린책들 MIDNIGHT 세트에 속하는 「도둑맞은 편지」로 만나보게 되었다.


‘나’가 소싯적 친하게 지낸 친구 가운데 한 명인 어셔의 절박한 편지를 받고서 어셔가에 방문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어셔가의 붕괴’.

방계혈족 없이 가문 전체가 직계로만 이어져오면서 상속되어 온 어셔 가문이 저택과 동일시되면서 ‘어셔가’라는 기묘하고 다의적인 명칭을 갖게 된 이곳은 건물을 본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인가?! 집에 대한 어떤 미신적인 기분에 쌓여 몸과 마음이 아픈 친구 어셔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여동생 매들린조차 아픈 몸이었고 결국 죽게 된다. 매들린의 시신을 둘이서 관에 넣고 지하에 안치하는데 그 뒤로 어셔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폭풍이 몰아치는 밤, 까닭 모를 공포를 느끼게 된 나는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고 방안을 서성이다 발소리를 듣고 나가게 되고, 그곳에서 불안한 증상을 보이는 어셔를 보게 된다. 자신의 공포도 떨칠 겸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 나는 어셔에게 광란의 해후를 읽어 주기 시작하는데 책에서 일어난 기괴한 현상이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면서 점점 더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어셔로부터 매들린의 죽음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듣게 되는데... ‘미친!'이 절로 나오면서 '아냐, 정신 나가서 하는 소리일 거야.’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그 진실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을 땐 ‘와~’(입틀막).

결국 그 방을, 그 저택을 공포에 질린 채 도망쳐 나가던 '나'의 기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라에 병에 걸리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붉은 죽음’이 유행하자 프로스페로 공이 소수의 인원을 소집해 성처럼 지어진 수도원으로 피신하며 일어나는 이야기 ‘붉은 죽음의 가면극’.

드나들 길을 봉쇄하고 밖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상관도 쓰지 않은 채 악사에, 광대에, 포도주 등을 즐기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입안이 쓰다. 선택받은 소수만이 안전한 곳에 피신해 즐기며 사는 설정은 오늘날에도 영화나 소설에서 반복되는 설정 중 하나 아니던가?! 그럼에도 유별한 것을 좋아하는 프로스페로 공의 취향이 반영된 일곱 방의 묘사는 나까지 혹하게 만든다.

특히 모든 방의 장식을 지배하는 주조색으로 만들어졌다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황홀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 환상은 점점 묘사되는 방의 형태에 그리고 60분마다 울리는 시계의 종소리에 점점 예민해지고 불안으로 변해간다. 가면무도회에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던 가면 쓴 인물의 존재. 점점 뭔지도 모를 불안감이 스며들며 미쳐가는 듯한 느낌이 조여오게 만든 이야기였다.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그 짐승을 계속 학대하고 결국 극단적인 짓을 저지르도록 마를 몰아 댄 것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싶어 하는 영혼의 이 불가해한 갈망, 자신의 본성에 폭력을 행사하고, 단지 악 자체만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고자 하는 영혼의 갈망이었다.

p.64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하던 화자가 알코올에 중독되면서 학대하며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검은 고양이’. 아무리 술에 병들었다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파멸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에, 검은 고양이의 마지막 등장하는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던 이야기였다.

마지막 탐정 뒤팽이 어떤 귀부인이 비밀리에 찾는 편지를 경찰청장의 의뢰를 받고 찾아내는 이야기 ‘도둑맞은 편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인지 밝혀진 상태에서 진행되는데 ‘아니 이렇게까지 조사한다고?!’ 싶을 정도로 경찰청장이 편지를 찾기 위해 노력한 방법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이야기였다.

한 권에 담긴 단편 모두가 다 맘에 들기 힘든데, 이번 「도둑맞은 편지」는 한 편 한 편 다 재미있었다. 정말 독특한 상상력으로 환상 소설 같으면서도 공포 소설 같았던 추리 소설이지 않았나 싶다. 저자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