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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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 이봄

일본추리소설 / p.600

이 세상은 살아갈,

아니, 탐욕스럽게 맛볼 가치가 있어요.

p.594

「버터」는 일본에서 실제로 발생한 연속 의문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한 여성이 결혼을 미끼로 남자들을 만나며 10억 원이 넘는 돈을 갈취하고 그중 3명의 남자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일명 '꽃뱀 살인사건'이라고 불린 실화 사건그런데 그 용의자가 주거불명에 무직에 100kg이 넘는 여자로 밝혀지자 사람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그녀가 왜 그들을 죽였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추리소설이겠더니 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추리보다는 음식 이야기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것도 읽다 보면 '이거 요리 소설인가?!'싶을 정도로 가지이가 리카에게 권해주던 음식은 하나씩 다 맛보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음식으로 치유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상하다. 이건 뭘까?!

'음식 소설'로 유명하다는 저자는 이 사건 자체보다 범인이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고, 요리 교실에 다녔다는 사실에 주목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 여성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일본 사회의 가부장제의 폐해를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변화를 요구한다.




버터란 가지이에게 기호품이 아니다.

필요불가결한 것, 없으면 죽는 것이다.

요컨대 피다.

p.260

기자 리카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꽃뱀 살인사건의 용의자 가지이 마나코를 인터뷰를 하고자 대학 친구 레이코의 조언대로 레시피에 대해 물어보는 편지를 보내고 면회의 기회를 얻는다. 그런데 가지이는 리카의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묻더니 마가린과 버터의 차이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버터 간장 밥을 맛보고 오란다.

그렇게 리카는 그녀가 권한대로 마가린을 버터로 바꾸고, 추천한 가게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가지이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 가지이의 권유로 그녀의 고향에까지 가게 되고, 그녀가 남달리 조숙하고 어른스러웠던 소녀였다는 것과 아버지와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상태로 누구와도 내면을 나누지 못한 채 썩는 게 아닐까 초조함을 느끼던 가지이를 처음 바라봐 주었던 상대는 다름 아닌 여동생을 범하려고 했던 성범죄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를 오히려 돌보기 시작한 그녀, 심지어 여동생에게 남자는 약하고 섬세하며 다정한 존재이니 무례하게 굴고 집적거려도 용서해 주라고 외로워서 그런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 사실에 빗대어 리카 자신과 엄마가 조금은 더 잘했더라면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며 여고에서 왕자님 역할에 좋아하면서 여자로서 발견되지 못할까 봐 초조해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리카는 그렇게 가지이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보기 시작하고 살이 쪄갔으며 결국 위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기에 이른다.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p.217

남자들이 안고 있던 고독과 안타까움을 자신이 만든 요리와 마음 씀씀이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가지이는 단지 자신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했을 뿐이다. 그걸 피해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행복한 기분으로 먹으며 그녀에게 거액의 돈을 받쳤으면서도 제 삼자에게는 그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집안일이나 요리를 해주지 않게 되니 거칠어지더군. 의심이 많아져서 스토커같이 구는 사람도 있었고, 원래의 독신 생활로 돌아가서 자포자기하고 살다 몸이 나빠진 사람도 있었어. 다들 엄마가 돌보지 않게 된 아기처럼 말이야. 나만 기를 쓰고 움직이는 것 같고……. 나는 정말로 혼자구나 생각했어.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p.394

자신의 친구가 살이 쪘다며 가지이를 찾아가 소리치던 레이코를 통해, 아이돌을 좋아하다 그녀가 살이 쪄서 이제 그만 좋아한다던 남자친구 마코토 등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고 수없이 세뇌한다. 가지이의 보살핌을 갈망하던 남자들이 그녀가 자신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자신들을 외면하자 자포자기의 길을 가다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리카의 말에서 어쩜 그럴 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카가 가지이로 인해 원래의 식생활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살이 찌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가치관이 바뀌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의 정량을 찾아 나서는 그 여정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웠는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가정식 음식에 대해서도... 여성의 사회 억압과 가부장제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 더 와닿았던 이야기였다.

세상의 엄마들이 매일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하느라 고생하는 것은 자신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가족을 위해서일 것이다.

p.226

사실 남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쓸 필요 없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좋아할지도 남이 정해준 기준을 따르고 있었던 거야.

p.543

ps. 이야기 속에서는 그 여자가 어떤 방법으로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옥중에서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으나 여전히 미스터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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