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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 아스트랄 개그 크로스오버 단편집
정재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정재환 외 10명 | 황금가지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책 뒤편에 적힌 ‘현생에 지친 자들아 이리 오라 그대들에게 웃음을 돌려 주리’라는 문구조차도 의미심장하다. 정말 개그에 진심인 작가들이 제대로 뭉쳐 저세상 텐션으로 상상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와~ 이 책 뭐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책, 웃음 사냥 제대로 한 단편집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였다.
낄낄 웃기 바쁜 이야기부터 상상력 지평선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이야기에 더해진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던 이야기까지 총 11편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첫 이야기 ‘창고’부터 재미있더니, 두 번째 이야기 ‘오징어를 위하여’는 병맛이다. 그렇다면 그다음 이야기는? 그리고 또 그다음 이야기는? 정말 상상 그 이상을 만나보리 ㅋㅋㅋ
"발라 볼래? 발라 봐!"
"안 발라! 안 바른다고! 너나 발라! 내가 대머리야? 니가 대머리지! 너도 바르지 마! 머리털 하나 안 나는데 왜 발라! 안 발라!"
이토록 딱한 인간이란 말인가?
일주일간 생각해 낸 보복이 겨우 이것이라니.
이렇게 유치한 것이라니.
어휴. 대머리 깎아라.
회사에는 또라이가 하나씩 꼭 있다던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박부장. 그는 대머리이고 직함이 부장이지만 사장조차 그를 보면 굽실거리길 바쁠 정도로 실질적인 대장이다. 그런데 그의 괴행이 정말 꼬장꼬장하다.
머리가 어느 순간 빠지기 시작하는 그 앞에 와서 발모제를 꼭 바르며 발라보라는 그에게 결국은 폭발한 나는 너나 바르라며 큰 소리를 치게 되고 그 결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거기에 있는지도 모를 유령같이 있던 창고를 청소하라는 보복을 받게 된다. 그 창고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정말 “발라 볼래? 발라봐!”와 “어휴. 대머리 깎아라.”가 계속 생각나 웃음이 났던 첫 번째 이야기 '창고'였다.
“그런데 진오 씨는 어디 사세요? 왠지 울릉도 주민은 아니신 것 같아요.”
“나는 유로파에 살고 있소. 아니, 살고 있었소.”
“……유로파요?”
“목성의 위성이오. 갈릴레이구 마리우스동 1250번지라오.”
“이제 이런 장난은 그만하고 싶네요.”
“장난이 아니오. 미영 씨는 내 다리를 먹어야 하오.”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 다리를 어떻게 먹어요?”
“나는 오징어요.”
“알아!”
“원한다면 초장 정도는 발라 드리리다.”
“오! 젠장!”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공짜 식사나 하자며 나가게 된 선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이야기 ‘오징어를 위하여’, 정말 11편의 이야기 중 제일 취향 저격 제대로였던 이야기였다.
첫인사부터 자신을 오징어라고 소개하던 그 남자 오진오. 삼국지로 한국말을 배웠으며 니체를 인용하고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 듣는 그는 태양계의 평화가 꿈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계를 붕괴시킬 힘이 있는 열쇠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며 그 열쇠를 파괴하기 위해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정말 둘 다 너무 진지해서 더 웃겼던 이야기, 이 헛소리에 맞춰주자며 진지하게 맞장구치는 그녀로 인해 웃음이 더 배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정체는 정말 뭐였을까?
저승사자가 망자를 데리러 갔더니 세상에! 그 망자가 12만 저승사자 중 10만이 열광하며 읽고 있는 ‘저승사자와의 로맨스’ 소설 작가였다는 사실! 결국 이 소설의 완결은 봐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진 저승사자들은 급기야 명부차사님께 청원을 올리게 되는데... 정말 나도 ‘저승사자와의 로맨스’가 궁금했던 세 번째 이야기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
발기부전 병을 가진 사람 앞에만 나타난다는 발기부전의 요정과의 만남 ‘죽음에 이르는 병, 발기부전! 그대로 놔두시겠습니까?’
진짜 평창이 되어 평창을 홍보하는 아르바이트생의 기묘한 이야기 ‘당신이 평창입니다.’
자신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에 대한 주제가 녹여져 있던 '생매장 여관의 기이'
자신이 먹은 것으로 계속 변해가는 이야기 ‘You are what you eat'
동생 패딩을 입고 지하상가에 나타난 마계와 맞서 싸워야 했던 용자, 그리고 너무 잘생겨도 너무 잘생긴 마왕 ‘무한마계지하던전’
맥모닝 세트를 아침 공양으로 받치며 맥아더 장군 신령님을 모시는 보살에게 신내림이 그레이트 올드 원이 온 것 같다며 찾아온 아가씨의 이야기 '맥아더 보살님의 특별한 하루'
제사 없애기 운동 본부에서 일하던 그녀들 그리고 다시 살아난 조상님들로 인해 아비규환 된 도시, 그들의 간섭과 잔소리를 듣고 있는 나조차도 정말 귀 딱지에 피를 흘리는 기분이었던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
드러머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목탁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치유음악계 아이돌 ‘목탁 솔로’
각자의 매력을 가진 11편의 이야기, 정말 이 책을 읽을 때 같이 읽는 사람이 바로 옆에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서로 맞장구치며 너무 재미있지 않냐며 이야기가 막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그 기상천외한 전개로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날카로운 주제가 들어가 있었던 이야기여서 더 좋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