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티핑 더 벨벳

세라 워터스 장편소설 | 열린책들

「티핑 더 벨벳」은 세라 워터스 저자가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레즈비언 역사소설들을 조사한 것이 동기가 되어 쓰게 된 작품으로 그녀의 데뷔작이자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앞서 읽은 「끌림」과 「핑거스미스」 보다 가장 동성애적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며 날것 그대로의 대담하고 관능적인 묘사가 가히 압도적이다.

한 소녀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랑 이야기를 중점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빅토리아 시대의 클럽과 화려한 극장 그리고 매춘의 세계와 상류 사회 귀부인들의 퇴폐적인 파티 및 패션 속 레즈비언 문화를 전부 담은 런던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막 태동하는 노동 운동과 여성 운동의 현장 또한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톰, 매셔 그리고 이 책 제목 같은 과거의 빅토리아시대적 은어 또한 접할 수 있다. (책 제목의 의미는 따로 찾아보시길!)

항상 이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뒤에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를 놀라게 만든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티핑 더 벨벳」 또한 1부에서 낸시의 첫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끝이 나며 2부에서 바로 두 번째 사랑이 시작된다. 어느 것 하나 걸릴 게 없다는 듯 써 내려가는 글들이 무서울 정도다.

캐시는 내게 사랑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키티는 세상은 내가 키티의 친구 이상이 되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p.171

부모님이 운영하는 윗스터블에 있는 굴 식당 <애슬리>에서 굴 소녀로 자라난 낸시는 캔터베리 연예 궁전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여름 그곳에서 공연을 하게 된 남장 가수 키티 버틀러를 보게 되면서 그녀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다.

키티에 대한 동경이 사랑으로 변하게 된 낸시는 급기야 런던 연예장으로 떠나가게 된 키티를 따라 런던으로 향한다. 다행히 키티 또한 낸시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함께 남장 가수로 공연을 하며 핑크빛 나날을 보내는 둘이었지만 키티는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사람에게 들키길 조심스러워한다. 결국은 윌터와의 결혼을 선택한 키티의 배신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게 된 낸시는 모든 친구와 즐거움을 버리고 자신의 슬픔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슬픔을 탐닉하다 런던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남창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녀의 이중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노파는 내가 바지로 갈아입으러 오는 여자인지 아니면 프록으로 갈아입으러 오는 남자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때는 나조차도 내가 어느 쪽인지 확신이 안 썼다.

p.254

남창으로 사는 그녀에게 다가와 쾌락을 선택하게 유혹해 자신의 노리개로 살게 했던 과부이면서 아이는 없고 부자인 다이애나와의 생활은 그야말로 '어우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상류 사회 귀부인들의 퇴폐적인 문화가 적나라하게 그려져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사람이 이렇게도 퇴폐적인 생활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험난하기만 했던 그녀의 모험은 마지막 사랑의 대상자를 만나며 끝이 난다. 플로렌스와 랠프 그리고 도를 지나칠 정도로 상냥하고 성실하고 양심적이던 그 주위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조금씩 치유받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낸시를 보고 나도 모르게 응원했다.

옛날에 비해 조금은 자유롭다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만은 않은 그들이다. 거절과 나쁜 선택과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낸시를 보며 불편했던 마음은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면을 들여다봐서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이 자신들이 커밍아웃하는 것을, 용기를 내는 것을, 배우자를 찾는 것을, 상심을 치유하는 과정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앞날은 조금 더 자유롭길 바란다.

그리고 「티핑 더 벨벳」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때 그들의 삶을 만나보길 권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