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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 행복서사의 붕괴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도정일 지음 | 다산북스ㅣ사무사책방
사무사책방 시리즈 7권 중 3권이 도정일 저자의 책이다. 처음엔 「보이지 않는 가위손」을 읽었고 두 번째로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를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책도 그러했지만 이번 책 또한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공주'라 함은 어릴 적 동화에서 보아왔던 그 '공주'가 맞는지, 만약 맞다면 이 소재가 어떻게 풀어져 있을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때로는 쉽게 이해가 되기도 때로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해 두 눈 부릅뜨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며 읽기도 했던 책, 어떠한 관점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함에 따라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도 한 책이다. 평소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일깨워주며 나의 생각을 확장하게 해준 거 같아 중간중간 힘듦이 완독을 했을 때 더 큰 보람과 뿌듯함이라는 보상으로 다가왔다.
도정일 저자의 두 권의 책을 이어 읽음으로써 더 명확하게 다가왔던 주제들, 그래서인지 남아있는 한 권 「만인의 인문학」이 더 기대가 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2권에 실린 고대 이집트 왕 미케리누스의 설화 이야기, 자기네의 행복한 상태를 거듭 확인하고 행복감에 도취된 서구일원의 난쟁이들의 행복 서사, 요정 설화적 모티프를 가져다 티토주의의 집단적 환각을 풍자한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 <땅밑>, 민담 형식의 공주 설화 등 책 제목답게 처음부터 다양한 행복 서사 형식을 만나며 흥미롭게 시작된 이야기들, 그중 공주 설화가 유독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릴 적 쉽게 만날 수 있는 공주와 관련된 동화책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악당으로부터 위험에 처한 공주를 한 젊은이가 구해주고, 공주의 부왕은 이 놀라운 젊은이에게 공주와의 혼인을 승낙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항상 끝이 났다. 그저 행복함이 주는 매혹적인 소재에 빠져 '나도 공주였으면...'하는 소망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보지 않았을까?
그런데 공주가 말이 주인공이지 공주를 얻음으로써 행복의 전량 사랑, 부, 권력, 신분 상승을 획득한 주체는 남성 주인공이라는 사실! 그가 살아온 긴 마이너스(부족, 결핍, 불행) 상태의 세월들이 한순간 청산되고 플러스(실현, 충만, 행복) 상태를 성취하는 이 설화를 보고 자신의 마이너스 상태를 상상적으로 뛰어넘고 충족시켜왔던 것이다.
공주 설화는 욕망의 사회적 보편화를 기도하는 이데올로기 장치들의 일부이고, 그 자체가 강력한 이데올로기이다. 행복 서사의 이데올로기성을 인지하고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행복 서사를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 기억 남는 주제, 책 읽는 사람들의 사회에 속해있던 '어린이들에게 책은 왜 중요한가', 책을 읽고 있는 나로서 그리고 아이를 둔 부모로서 공감이 많이 갔던 부분이었다.
영상 환경과 인터넷 같은 신매체 환경이 아이들로 하여금 책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아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주지 않고 책을 읽을 이유를 주지 않는 현재의 교육, 더 나아가 종이 교과서와 연필을 없애고 스마트교실을 만들겠다고 앞장서고 있다. 무엇이 맞는 것일까?
톨스토이는 남을 배려하는 사랑과 연민의 능력을 인간성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알고 남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타인의 불행과 비참을 줄이는 일, 이런 능력을 석가모니는 '자비'라 말했고 맹자는 '측은지심'이라 불렀다. 이러한 정서적 능력과 윤리적 능력은 후천적 성장환경과 문화에 따라 달라지고 상상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행동을 경험함으로써 역지사지의 능력을 키우게 되고, 이 능력은 윤리적 능력과 결합하여 어떤 행동을 보는 순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 행동이 나쁘다 그렇지 않다를 직관적으로 알게 된다.
책을 읽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힘을 키우게 하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미국을 포함한 서유럽 주요 국가들은 독서력으로 한 차원 높은 잘 읽고 잘 쓰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리터리시에 상당한 투자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정보를 가진 시민, 잘 판단하는 시민, 참여하는 시민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시대에서 국민 각자가 스스로 평생 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하지 않을까?
이외에도 사나운 동물과 덩치 큰 동물을 끌어 모아두는 것으로 제국의 힘과 관능을 과시했던 이야기, 유전자 지도 완성 이야기 등 현재 읽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문명>과 이어지는 듯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제대로 읽어 보고 싶다.
동물은 핵 전쟁을 준비하지 않고, 폭탄을 터뜨리지 않으며, 총기를 난사하지 않는다. 동물은 위협이 없는 한 타자들을 상대로 대량학살도, 멸종작전도 벌이지 않는다. 윤리적 능력의 면에서 따지면 인간은 동물들보다 훨씬 아랫길에 있다. 동물들은 겸손하다. 그러나 인간은 겸손하지 않다. 그는 건방지고 무례하며 오만하다.
어떤 창조적 감독자가 우주를 만들었다면, 그 우주는 그런 감독자 없이 만들어진 세계와는 아주 다를 것이 아닌가? 그것이 어째서 과학적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현재의 생산-소비양식은 인간이 살기 위해 삶의 모태인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는 근원적 딜레마 위에서 불안한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심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시험 성적 때문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 살인적 경쟁 환경에 내몰리지 않을 권리, 공부 못한다고 '왕따'당하다가 '"엄마 아빠 미안해요"라며 유서 써놓고 자살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놀고 숨 쉴 권리, 성장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 그들이 자라는 데 필요한 환경과 시설을 누릴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나무들처럼,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햇살과 바람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산과 들과 개펄로 뛰어다니고 또래들과 놀고 별과 나무와 이야기할 권리, 아무 부담 없이 즐겁게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노래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