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깡이 (특별판) 특별한 서재 특별판 시리즈
한정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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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살림 밑천 기특한 맏딸

p.16

신판소리로 만들어질 정도로 사랑받은 청소년 문학 <깡깡이>가 성인 독자를 위한 특별판으로 출간되었다. 책 표지에서 느껴지는 흘러간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과 공간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어른이 된 맏딸 정은이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엄마를 돌보며 자신의 어릴 적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항상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부모님의 말에 기특한 딸이 되려고 노력했던 정은이었지만 오히려 그 말이 정은이에게 옥쇄가 되어버린 듯하다.

배를 타다 보니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나가 있던 시간이 많았던 아버지가 배사고로 실업자가 되고 추후엔 딴 살림을 차린다. 결국 다섯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엄마는 깡깡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맏딸 정은이가 살림을 하며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게 되면서 중학교 진학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아버지를 대신한 엄마의 노동을 지켜보며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응어리졌고 나는 남자라는 인간 전체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금 엄마는 아버지한테서 자유로워졌을까?

p.64

엄마는 딸이라서 부모한테 관심 받지 못한 걸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딸한테 그런 관심을 기울일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동식이 육성회비는 밀리는 법 없이 꼬박꼬박 제 날짜에 쥐여 보냈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거라면 어떻게라도 갖춰줬다.

p.150

본인도 맏딸이라는 말에 묶여 희생해왔기에 너만은 그러지 말라고 말했던 엄마, 정작 맏딸인 정은이는 중학교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아들 동식이는 어떻게 해서든 다 해주던 엄마, 치매에 걸려 정신을 놓았을 때조차 아들 동식이만 끊임없이 찾는다. '그래 그 시절엔 아들을 더 위했지' 싶다가도 맏딸 정은이가 무슨 죄인가 싶다. 깡깡이 망치 하나로 큰 아들을 공부시켜 가까스로 회계사를 만들어 놓음 뭐하나 엄마에게 목숨 같았던 그 아들 결혼하자마자 처가 식구들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버리는데.. 엄마의 지나친 사랑과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정은이는 말하지만, 정은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난 엄마를 뒤로하고 떠난 동우가 밉다.

"깡깡깡깡깡깡깡……." 조선소에서 깡깡이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늘 듣는 귀에 익은 그 소리. 울고 싶을 때는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기쁠 때는 노랫소리처럼 들리던 깡깡이 소리. 지금은 희망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지르는 함성처럼 들렸다.

p.176

납작한 끌처럼 생긴 망치로 쇠를 두드려 배에 붙어 있는 녹을 떨어낸 다음 쇠 솔로 다시 한번 더 문질러 남은 녹까지 깨끗하게 털어내는 일, 깡깡이 아지매들의 삶의 고달픔을 망치에 실어, 떨어져 나가는 녹에 담아 털어내고자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에서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였기에 이겨 낼 수 있었던 그 시절, 난 그저 골목 여기저기 누비며 뛰어놀기 바빴던 철없는 어린아이였다. 어른이 된 후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집과 동네를 찾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대로인 골목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아이였을 때 그렇게 넓어 보이던 골목이 커서 보니 그렇게 좁아 보일 수가 없었다. 예전에 자주 갔던 책방은 없어졌고 살던 집도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는 모습에서는 왠지 모르게 세월로 인해 변한 그 모습들에서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사라진듯한 기분이 들어 쓸쓸했다. <깡깡이>를 통해 다시 그때 그 시절의 공간과 사람들을 추억해본다.

맏딸이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자 엄마도 동생들도 비로소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니까 무조건 이해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생각은 사람의 운신 폭을 얼마나 좁게 만드는지, 내가 자유로우니 동생과 엄마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p.167

맏딸 정은이는 첫째, 나의 바로 위 친언니를 떠올리게 했다. 지금에야 같은 눈 높이로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게 되었지만 뒤돌아보면 언니도 첫째라서 알게 모르게 무거운 짐을 가지고 힘들지 않았을까? 가끔은 그 무게가 지금도 보이는듯해 미안할 때가 있다. 맏딸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 정은이처럼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모든 첫째들~ 응원합니다!


+ 특별한서재 출판사 지원도서로 직접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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