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 문학의 즐거움 56
조경희 지음, 김태현 그림 / 개암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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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간략 소개

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집 "장경판전"을 짓는 과정을 소화라는 아이의 성장과정과 함께 풀어 놓은 어린이 문학책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소화는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 오손도손 살아간다. 방방곡곡 떠돌아다니며 집을 짓는 일을 했던 아버지였지만 소화를 위해 젖동냥을 다녀야 했기에 먼 곳까지 일을 하러 다니는 목수의 일을 접고 합천에 눌러 앉아 남의 매를 대신 맞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뱀골 영감 대신 독하게 매를 치기로 소문난 점백이 나장에게 매품을 팔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고, 뱀골 영감에게 집까지 빼앗겨 버리게 된다. 한순간에 아버지와 집을 잃어버리게 된 소화는 아버지의 절친인 대목장 아저씨를 따라나서게 되고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집 "장경판전" 짓는 일을 거들게 되는데...




인상 깊은 구절

꽃도 귀한 꽃, 천한 꽃이 따로 있나? 먹기 좋고, 살기 좋고, 입기 좋고, 듣기 좋고, 보기 좋고……. 좋은 것들은 죄다 양반들이 차지하지!

p.12

▶ 장원급제 한 사람에게 임금님이 몸소 머리에 꽂아 주는 꽃, 능소화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아버지, 능소화처럼 혼자 꺾이지 않고 고귀하게 소화를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는 결국 점백이 나장의 매에 세상을 떠난다. 아프면 참지 말고 손가락을 펴라고 수없이 이야기했던 소화를 혼자 남겨두고 말이다. 다섯 냥이면 점백이 나장의 매를 새의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 수 있는 돈이었는데... 남들이 나누어 맞는 매를 한 번에 몰아 맞고서 아픈 몸을 이끌고 다섯 냥을 쥐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ㅜㅜ



"아버지는 좋겠다. 이제 더 이상 매 맞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뱀골 영감한테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에서 있었던 일들은 다 잊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 거친 파도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바람처럼 마음껏 세상을 떠돌면서 살아. 꽃을 만나면 꽃바람으로 태어나고, 산과 들을 만나면 산들바람으로 태어나고, 갈대를 만나면 갈대 바람으로 태어나고, 강을 만나면 강바람으로 태어나 날마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 그러다가 내 생각이 나거든 언제든지 찾아와.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내 귀밑머리를 스치면 아버지인 줄 알고 반갑게 맞을게."

p.34~35

▶ 이제 더 이상 매 맞지 않아도 좋겠다는 말이 어린 소화를 통해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본인에게 빚이 남아 있다며 거짓말하며 집과 어린 딸 소화를 탐내던 뱀골 영감의 모습이란!! 어쩜 이렇게 자기 배속을 채우려고 하는 자들은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나무를 보고 기둥감인지 대들보 감인지 어떻게 아세요?"

"그것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결정하는 거란다. 그 성질과 쓰임은 나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그러니 일부러 애쓸 필요가 없다."

p.115

마무리하며...

자신의 운명을 바꿀 만한 중요한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자신을 버려야 해.

그래야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단다.

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

운명을 바꿀 만한 중요한 순간에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곱게 기른 머리를 싹둑 자르고 망설임 없이 대목장 아저씨를 따라나서는 소화의 모습을 통해 당차고 용기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난과 역경에 허우적거리며 빠져 있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해 나가는 소화의 모습은 장경판전이 지어지는 과정에 빗대어 함께 성장하며 나아간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바람이 장경판전 안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모습으로 지어지는 두 계절 동안 어렸던 소화도 조금씩 단단해지면서 자신의 꿈을 키우며 성장해 간 것이다.

소화 아버지의 절친이자 목수로 우직하게 살아온 대목장 아저씨, 소화를 엄마처럼 살펴주던 곡소리 전문가 함양댁 아주머니, 해인사에서 만난 또래 친구 개구쟁이 동이 등 다양한 인물 또한 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특별하진 않지만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마다의 관계가 이어져 각자의 소망과 바램을 담아 장경판전이 완성된다.




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은 소화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그림을 보는 재미 또한 있다. 때로는 두 페이지 모두 글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으로 전체를 가득 채우기도 하며 때로는 그림과 글이 함께해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는 쉬어 가는 페이지가 되어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도와준다.

처음 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을 받아보고 어린이 문학책이라는 점에서 놀랬다. 무언가 표지에서 전문서적 같은 고서 느낌이랄까?! 선뜻 손이 가기에는 멀게 느껴져 아쉬웠던 책 제목과 표지... ㅠㅠ 그에 반해 안의 그림은 책 내용과 잘 어울리고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한참을 감상할 정도의 좋은 그림들이 가득했다. 아직 책 제목과 책표지에 책 읽는 우선순위가 바뀌는 둥이들이라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우리 선조들의 바람이 깃든 바람을 품은 집, 『장경판전』을 알게 해준 책이라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이 더 크다. 정말 둥이들과 장경판전 보러 가고 싶다.ㅜㅜ

긴 글도 잘 읽는 초등 중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쉽게 접하며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아이와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 나누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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