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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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흔히 시사하는 바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행복/불행을 느끼는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행동은? 마음가짐은? 등등의 행복심리, 행복처세술에 관한 책은 아니다. 'happiness'와 '행복'의 뉘앙스가 달라서인지... 번역본 제목만 보면 책을 오해할 수도 있다.

선택의 심리학, 그 선택에 대한 인지,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인지의 심리학이랄까. 물론 이렇게 제목을 붙이면 무슨 말인지 와 닿지 않아서 일반독자의 관심도가 뚝 떨어졌겠지. 우리의 선택행동의 동기인 장래의 효용, 만족, 행복감을 현재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판단하는지,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당초의 그 느낌과 판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거기에 어떤 불일치, 판단 당시의 오류가 있는지, 우리의 두뇌는 왜 그런 불일치를 보이고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지, 그 불일치와 오류는 어떤 순기능(편익)과 역기능(비용)을 수반하는지 등을 다룬 책이다.

책의 내용에 관해서는 100% 만족이다. 내용은 알다시피 현란할 정도로 다채롭고 깊다. 하버드대학의 저명 심리학교수가 쓴 책인만치 수많은 심리실험 연구성과들을 섭렵해서 소개한다. 필력도 대단해서 쉽고 재치와 유머감각이 곳곳에서 번뜩인다.

곰곰 생각해 봐야 할 거리가 많다.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통찰, 기억은 여러 파편들을 모아 만들어낸, 신뢰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 우리가 기억을 형성할 때에는 특이한 일, 결말부분에 큰 가중치를 두어 게다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편집한다는 것, '불행해 보이는' 사람이 실은 그렇지 않으며, 인간이 심리적 면역체계라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잘못된 신념이 강력한 복제력을 갖고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질 수도 있다는 것 등...

여하튼 늦게나마 이런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저자에게, 그리고 역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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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놀라운 발견 - 시간의 미스터리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사용설명서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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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이 많아야 인생이 길게 느껴지고, 그것이 인생을 길게 사는 방법이다.

흔히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으로 느낀다고 한다. 느낌도 그렇다.

저자에 의하면, 과거의 시간에 관한 기억은 시간에 있었던 경험의 기억인데, 나이 들수록 경험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이 적어서 돌이켜보면 시간이 빨리 지난 것으로 인지한다는 것이다. 이사하느라 하루 종일 정신없이 보낸 그날을 돌이켜 보면 하루가 느낌이고 빨리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지 않지만, 별로 일없이 빈둥거린 날을 돌이켜보면 날은 우리 기억 속에 남지 않은 공백일 뿐이어서 결국 그런 날들이 많을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 것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두뇌는 노화하고 세상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그런 것으로 느껴지기에 기억에 남는 별로 없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시간이 화살같이 지나간 것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럴듯 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기억을 채우는 것이다. 인생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중년 이후 우리의 기억에 채울만한 것이 빈약해서이니, 결국 계속 삶을 다채롭고 변화무쌍하게 살아서 기억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다람쥐 챗바퀴 돌듯 사는 우리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물론 이것은 책이 다룬 주제의 가지에 불과하다. 생체시계 이야기(생체시계에 맞추어 생활해야 건강하고 생산성도 높을 것이며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 사는 법은 다른데, 생체리듬상 야행성이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은 부적합하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너무나 많은 자극이 우리를 유혹하는 이벤트사회에서 우리의 두뇌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느라 어느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그래서 시간 부족에 쩔쩔 매게 된다…), 시간관리법의 무용성(다이어트 결심과 같아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스트레스와 시간의 관계(스트레스를 받으면 효과적인 시간분배력을 상실하니 운동을 해서라도 그를 피하라…) 수많은 유용한 이야기가 있다.

전문연구자들의 성과를 섭렵해서 대중에게 유익한 정보로 가공해서 전달하는 학술저널리스트로서의 저자의 내공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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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데이비드 베레비 지음, 정준형 옮김 / 에코리브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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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무리를 짓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진지한 노작이다.

저자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자유기고가다. 대학의 특정 학과나 연구소에 소속된 전문연구자가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 단행본을 통해 전문적인 연구성과들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을 쓰는 학술저널리스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수준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전문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섭렵하여 소개하는 내용이지만, 그 이해의 폭과 깊이는 심상치 않다.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의 사회과학뿐 아니라 철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 또 생물학, 생리학, 신경의학, 뇌과학, 유전학 등의 자연과학까지 어지러울 정도로 폭넓게 연구성과들을 섭렵해서 책을 썼다. 그렇다고 피상적이지도 않다.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책 내용은 쉽진 않다. 한 질문에 대한 답을 논하면서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을 거론하고 각 문제에 관한 여러 분야의 논의들을 소개하는 식이라서, 중간중간마다 지금 어디쯤 있는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헷갈리고 심지어는 저자가 자기 공부 자랑 하려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이야기의 줄기가 명확하지 않고(혹은 나처럼 무식한 독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가 행한 '편가름'과 관련된 많은 실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미국과는 다른 종류이긴 하나 우리사회에서도 무리짓기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다. 지역간에, 계층간에, 남녀간에, 세대간에, 우리 국민과 다른 나라 국민간에... 적대적이라 할 만큼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여러 문제가 파생되고 있는바,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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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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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력 사고력을 기르는 13가지 방법(단계)이 잘 설명되어 있다. 목표는 종합지(통합적 지식), 관찰에서 출발해 이미지 형성, 추상화, 패턴인식과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을 거쳐 마침내 통합에 이르는 사고발달의 과정이 앞서간 위대한 창조적 인물들의 사고법을 예로 하여 소상히 쓰여 있다.

저자(부부)는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과 음악, 미술, 건축, 조각 등의 예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수많은 근거사례가 소개되는데, 그중에는 각 분야에 관한 기초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하지만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편중된 한 분야의 지식만 학습하지 말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학습하며, 이 경우에도 기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위의 사고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창조 실험을 하라는 것이다.

13가지 생각도구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패턴형성,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에 관한 설명이다. 우선, 과학과 예술의 각분야에는 특징적인 패턴이 있는데, 여러 분야의 패턴을 비교하고 차용하다 보면 아주 유용한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한 분야도 제대로 알기 힘든데, 다른 분야까지 공부하라니 참 부담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걸. 여러 분야를 공부하고 익히다 보면, 처음에는 돌아가는 느낌이 들겠지만, 결국 그것이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또 문제를 몸으로 느껴야 하는데, 예컨대 굴삭기 기사는 굴삭기가 신체의 일부, 팔의 일부처럼 느껴져야 정상이라 한다. 그래야 굴삭기를 정확히 자유자재로 움직여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자신이 모는 자동차는 쉽게 주차하고 좁은 틈도 잘 빠져 나가는데, 이것은 이미 그 자동차가 운전자 몸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 한다. 문제를 몸으로 느끼면 문제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몸이 그 해결책을, 아니 해결의 방향을 알려 준다고 한다.

생각도구 중 압권은 감정이입이다. 내가 연구대상, 작업대상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소설 등장인물이 되어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곤충학자가 스스로 곤충이 되어 곤충의 마음으로 느끼며 역사연구자는 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직접 경험하며(자유를 찾아 이동한 미국 노예를 알기 위해 직접 그 코스를 당시의 노예와 같은 조건에서 여행한 예가 소개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이나 파인만처럼 광자의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거나 '내가 전자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앎은 느낌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 한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다 이해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각 생각도구를 하나씩 집중적으로 연습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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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1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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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국문학자 김윤식 전 서울대 교수는 이광수에 대해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라 했던가. 서중석 교수의 <이승만과 제1공화국>을 읽고난 느낌이 꼭 그러했다. 이 책이 반추한, 이승만이 주도한 한국 초기 정치사, 아니 정치가 이승만은 잔인함과 비열함, 뻔뻔함 그 자체다. 이 책을 읽으면 당혹스럽고 아픈 마음을 피할 길이 없다. 이승만의 잔인하고 비열한 행태를 새삼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이 책에서 우리가 지금도 그런 이승만밖에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48년 5.10선거에서 1960년 4.26 이승만의 하야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기획한 20세기 한국사 전20권의 하나다. 이승만 집권기 중의 한국전쟁은 별도의 책에서 다룬다고 한다. 저자 서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최초로 현대사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알고 있다. 현대사 분야 연구자의 좌장격이랄까. 그런 인물이 쓴, 야심찬 기획물의 하나기에 기대를 품고 책을 펼쳤다.

책을 덮고난 느낌은 착잡하다. 잔인하고 비열한 우리의 정치사를 다시 확인했기 때문이고, 또 이 책에서는 그것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분단정부 수립을 반대한 김구의 읍소로 시작한다. "자기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남북의 분열을 연장시키는 것은 전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넣는 극악극흉의 위험일 것이다." 그 뒤는 당연히 분단의 원흉 이승만(물론 김일성이라는 파트너도 있다)이 전민족을 이 '극악극흉의 위험'에 어떻게 빠트렸던가가 꼼꼼이 쓰여 있다. 

오늘날의 이 문명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수시로 자행되었다. 정적은 암살하거나 각본이 정해진 재판에 걸어 사형시키고, 그 수하 인물들도 고문과 폭행으로 없애버렸다. 선거를 하긴 하는데, 반대파는 입후보등록하기도 어려웠다. 등록서류를 뺏기기도 하고 갑자기 ~법 위반죄로 무자격자가 되고, 심지어는 암살되었다.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니 시위대에는 총을 쏴도 괜찮았다. 그러나 그러다가 결국 총으로 망했다.

그뿐이다. 이 책은 야만의 정치사만을 다루고 있다. 왜 그런 인물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는지(그 시대의 한국인들은 바보인가,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게), 그는 전민족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넣은 일외에는 한 일이 없었는지, 또 정치사외에 다른 일들이 없었는지, 경제, 사회, 문화 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신생 대한민국은 그런 야만상태에서 그래도 어떻게 성장하고 있었는지 등을 알 수가 없다. 20세기 한국사의 한 책으로서 이승만시대를 다룬다면서 그 야만의 정치사만을 논한다면 너무나 일면적이다. 상처에 소금뿌려서 다시 뼛속까지 아리게 만들 뿐이다. 저자는 '야만의 정치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성장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데, 너무나 단순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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