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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싫다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김민화 외 옮김 / 보더북 / 2025년 2월
평점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술이 싫다'라는 제목과 달리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은 전부 술을 좋아하는 사람 같다. 술이 있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이 부분은 좀 공감한다, 술 없이 모르는 사람과 앉아서 진지한 얘기를 나눈다는 것은 채 30분을 넘기기 쉽지 않다) 술로 인해 인생을 알아간다. 여러 명의 작가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술을 좋아하는 (즐기는) 작가는 몇몇 정해져 있는 듯 하다. 우리가 잘 알 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가 가장 많이 등장하고, 사카구치 안고, 나카하라 주야 등이 뒤를 잇는다. 모두가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술이란 집에 있으면 없애 버리고 싶은 것이다. 술을 한 되, 두 되 사다 놓으면 그걸 누군가와 함께 소비해야 한다. 그 사람이 친한 사람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떄도 있다. 하지만 술에 잔뜩 취해 다음날 깨어났을 때, 전날의 실수가 떠오르는 것을 보니 술이 과하긴 했나 싶기도 하다.
재밌게 봤던 편은 '술 벌레'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야기였는데.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외국 스님이 찾아와 뱃속에 술벌레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 벌레를 없애야 한다고 말해준다. 벌레를 없애는 방법으로 떙볕에 알몸으로 누워 있는 것이었는데, 영 속은 기분이 들기만 했다. 그 찰나, 몸속에서 벌레 같은 것이 튀어나와 술독으로 들어가 버리는데! 이 후부터 그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그의 술벌레가 그렇게 사라져 버린 후에 가세가 기울고, 잠도 자지 못하고, 제대로 사는 삶을 누리지 못해 비쩍 말라가기만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결말이 나온다. 술벌레가 병이 아닌 복이었을 거란 이야기, 어차피 술을 많이 마셔서 그대로 죽을 뻔 한 것을 살려둬서 그렇단 이야기 등등 많은 썰이 등장한다. 술고래가 아닌 술벌레라는 표현도 재밌었고, 결말이 명확하지 않고 열린 결말인 것도 꽤나 인상 깊었다.
중간중간 사케에 대한 미니 지시들이 있는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지식이 꽤나 도움이 될 듯 하다. 사케라는 것은 원래 여자가 만들던 술이라고 한다. 어떤 지역의 사케가 대표적인지, 사케의 기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야금야금 실려있는 내용들이 꽤나 흥미롭다. 두껍지 않은 두께라서 술이 싫어서 읽기 시작한 사람도 금방 읽어낼 두께이고, 술이 싫다는 사람이 뭔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사람도 아주 금방일 것이다. 내용이 술이 싫은 사람들의 모임은 아니니, 그 걱정은 안 하고 읽어도 된다. 소설이 아니지만 소설 같은 이야기에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하고, 공감을 얻기도 한다. 일본 특유의 문체들이 있어 일본 소설을 읽는 기분도 나고는 한다. 술이 싫은지 좋은지, 작가들이 가진 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어떤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