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36의 기적 - Paris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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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 시절을, 힘을 모아 극복하는 용기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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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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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이라고 다를 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말이다. 인간이 살지 않은 곳에서 관측이나 과학실험을 위해 만든 남극기지에서 매년 파견되는 남극관측대란 곳은 남들 보기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모험이 가득할 것 같지만 거기 역시 사람들이 살고, 그들끼리 서로 복잡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쌓이고 인간들의 개성이 부딪히는 곳이리라. 그런 곳에서 즐거운 생활을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남극이라면 많은 이들에겐 환상의 장소일 것이다. 비현실적인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오로라나 펭귄 등의 즐거운 것들로 가득 찬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남극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다. 희한하고 이상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 정도로만 알고 있는 그곳 남극은 세상사와는 거리가 먼 지역으로 생각만 된다. 남극을 미래 자원의 보고로서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남극기지를 건설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들이지, 자연과학이나 자원개발, 뭐 이런 것으로 점철된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솔직히 순진한 생각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해야 재미도 있고, 즐겁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탐사하는 사람들은 좀 다를 것이다.
  남극탐사대원들 9명이 한 곳에 모였다. 돔 기지라는 곳에서이다. 많고 적든 간에 그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남극이란 극단적인 혹한의 땅에서 좁은 곳에 9명이 각자의 삶과 동시에 동료들과의 삶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고 고충이다. 남극을 가지 않은 사람이라면 환상의 낙원이 되겠지만 남극에 파견된 대원들에겐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직장인 것이다. 즉, 그들에게 남극의 돔 기지의 생활은 곧 직장생활일 뿐이다. 당연히 직장에서 얻는 스트레스와 직원간의 긴장관계는 당연히 다반사일 것이다. 바로 이것들을 어떻게 제거하고 해소하느냐가 직장생활이 천당이 될지, 아니면 지옥이 될지 결정될 것이다.
  극복, 정말 힘든 목표다. 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존재하는 갈등을 제거하는 작업은 말이 쉬울 뿐, 얻기 힘든 목표다. 그래도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리고 승화, 극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날 때, 그것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방편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화도 날 것이고, 그냥 속으로 묻어야 할 것들 것 있다. 아니면 불편한 인간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즐거운 오락이나 만남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남극의 셰프인 저가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요리다.
  사람이 많다 보니 준비도 다양했던 것 같다. 처음 그가 해양경비대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요리를 담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옮긴이의 말‘로 알게 됐지만 그래도 글을 읽는 내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비록 그가 과거의 전력으로 배운 경험이 있다 치더라도 국적도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대원들의 요구에 어떻게든 맞추려는 그의 노력을 보면 요리 속에 담긴 서비스 정신, 혹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배려가 숨어 있다. 요리를 통해 조용히 자기 연구에만 집중하고, 격리된 생활 속에서 나타날 불만과 짜증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노력이 대단해 보였다. 확실히 인간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배려인데, 그것이 잘 반영된 음식들이 계속 나와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요리들의 매일의 리스트를 보면, 괜히 내 미각까지 자극되는 환상을 느끼게도 된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남극에서 무한히 쏟아지는 음식 리스트를 보면서 마치 마술사의 장난인 것처럼 끊임없이 요리가 나오고 있었고, 힘겨운 남극의 돔 기지 생활이 도리어 멋져 보이기조차 했다.
  또한 저자가 기록한 내용마다 번뜩이는 즐거운 표현력은 무척 인상적이다. 정직하다 못해 인간의 내면 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호소력 있는 표현은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한다. 내용 사이에 듬뿍 담아있는 돔 기지 생활의 상징들은 결코 적나라하지 않으면서도 과격하게 솔직하면서도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로부터 연상된 다양한 표현들로 언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표현력으로 묘하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표현하면서도 멋지게 감추는 능력은 삶을 재미있게 요리하는 저자의 재치가 느껴졌다.
  이 책을 보면서 남극 가는 것보다 남극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미리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남극이 아니라도 우리가 사는 현실이 남극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요리를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것은 삶의 지혜일 것이고, 동시에 삶을 살찌우고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도 요리를 잘했으면 좋겠다. 저자처럼 말이다. 그래야 남극 같은 험한 곳에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재미있는 여행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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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뛴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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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한 결말이었다. 이전에 어디에선가 본 듯한 스토리였기 때문이며, 가족드라마와 같은 감동 역시 과거 어느 순간에 본 것이고 그때도 감동했을 것이다. 확실히 새로운 결말은 없었고, 또한 역겨운 결말로 최근 각광받는 영화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까? 그러나 이런 결말만이라면 영화에 대한 인상은 그리 깊지 않았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결말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엔 다른 것이 있었다. 바로 의외의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화면 가득히 존재했다.
  수많은 차들이 부딪치는 강력한 장면들은 아니었지만 영화 내내, 긴박한 긴장감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미가 숨어있었다. 이 영화는 심장 이식에 통해 확인하게 되는 가족의 사랑이야기를 배경으로 빠른 전개와 긴장감이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그런 전개와 긴장감, 스릴, 그리고 서스펜스 등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왜 그렇게 조화를 이룰까? 그것은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경쟁구도를 갖고 있는 것이며, 제로섬 게임과도 같은 이기기 위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영화 속의 두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보호하고 살리고자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장면들은 사랑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논리적 모순이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 상대의 것을 뺏어야지만 자신의 가족을 살릴 수 있는 제로섬 게임을 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익숙해진 생존경쟁이 어느 노인의 심장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 되고 만 것이다. 관객 누구나 그들의 행동을 다 이해할 것이고, 그들을 동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동정의 시선과는 관계없이 어느 아들과 어느 엄마의 치열한 싸움은 영화 곳곳을 수놓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격렬한 투쟁은 뛰어난 두 남녀 배우의 힘입어 점입가경이 되어 가고 있다.  

  


  동네 양아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휘도(박해일)’의 인간적인 변화는 이 영화가 왜 거칠어져 가는지의 이유를 들려준다. 모성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이 어머니의 사랑과 고통을 목도하면서 변하게 되고, 한 때 가장 학대했던 아들이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면서 소통부재에 의해 고민했던 어느 모자의 슬픈 이야기를 보게 된다. 언제나 상대에 대해 무지한 채, 자신만이 생각한 틀 속에서 상대를 가혹하게만 다루는 오늘의 우리들이 보인다고 할까?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가해자들의 참회와 눈물을, 휘도를 통해 본다면 과한 억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럴 듯한 영어학원 선생 ‘연희(김윤진)’은 자식의 생명을 위해 자신이 믿고 있던 종교의 가르침조차 지켜내지 못한다. 믿고는 있지만 결코 따르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누구나 공감하듯 모성으로서의 거친 본능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나 보다. 종교보다 앞선 본능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해하지만 서글픈 한 인간의 몸부림이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에 울었고, 또한 스스로를 자학하고 파멸하면서 울었다. 그러나 울었지만 또한 검투사처럼 싸웠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일이 진척될 때, 그녀는 어쩌면 포장된 이면의 본능을 꺼내면서 그 어떤 방해물과도 싸울 용기를 내면서 자신의 본능을 거침없이 발휘했다. 슬픔 앞에서 눈물을 흘렸지만 동시에 그녀는 싸움닭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둘은 충돌하게 되며, 영화는 그 충돌을 결코 우아하지 않게 형상화한다. 아니 매우 거칠게 묘사한다. 누군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하든, 누군 우아한 귀족처럼 종교인으로 생활하든, 핏줄에 대한 쟁점에선 둘 다 맹렬하게 사투한다. 그들 앞에 의학적 합리성이든, 인간적 도덕이든, 혹은 법적 논리든 그 무엇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말이다. 마지막 순간, 한 인간의 고통이 끝난 이후, 베푸는 것과 감사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몽둥이를 들었던 손을 풀었을 때, 영화는 우리가 아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종결된다.
  공감했다. 이전의 영화처럼 어느 희생을 아름답게 포장하면서 사랑과 화해를 이끄는 것보다 영화 속에서 보인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줄달음치는 모습이 정말 솔직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인간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거친 싸움의 과정에서 도리어 난 가슴이 뛰었고, 가족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된 것 같았다. 그건 솔직함이야말로 인간의 정서를 울리는 가장 큰 힘이 여서일 것이다. 여간 해선 흠 있는 연기력을 선보이지 못하는(?) 배우인 김윤진과 박해일의 연기력이 앞서의 느낌을 얻도록 했는지 모르겠다. 계속 해서 그들이 출연하는 영화에서 흠을 찾도록 하겠다. 억지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뛰어난 각본, 신인이기에 함부로 도전하는 윤재근 감독의 색다른 도전 역시 즐거웠다. 새해부터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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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 - G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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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작을 어느 중학교 투수의 실패로부터 했던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어려움을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캔디형 영화임을 쉽게 알려준다.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뻔한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살자라는 교훈을 가르쳐주듯 진행됐다. 이런 영화의 흥행코드는 기존의 것을 답습했다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며, 또한 과거의 어느 영화와 너무 흡사해서 참신한 것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즉 뻔한 설정이다.
  그저 그런 감동적인 영화, 아마 이 영하에 매겨질 촌평이 이럴 것만 같다. 하긴 이 영화는 새로운 시도를 위한 독립영화가 아닌 관객 천만을 목적으로 한 상업영화다. 감독 역시 은근히 그런 의도를 비췄고, 사실 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흥행이 중요한 것이지 역사적으로 남을 위대하지만 저주받은 관객동원을 한 영화는 다른 제작사가 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관객 역시 그냥 그런 영화지만 Killing time 용 영화가 좋지, 복잡하고 어려운 성찰의 영화는 현실 생활도 복잡하고 어려운 판에 괜한 고생만 주는 영화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글러브란 영화는 제작사와 관객 모두에게 환영 받음직한 영화다. 제작사야 돈 벌어서 좋고, 관객이야 현실의 각박함을 잊고 너도 열심히 살면 뭐가 될 수 있다는 낭만적인 세상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으니까. 최소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고픈 관객이라면 손에 핏줄이 터져도 열심히 던져서 뭔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성심학교 투수가 자신의 롤 모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인 청주 성심 학교 학생들 역시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이 영화를 통해 표현할 수 있어 좋다. 관계자들 모두가 좋은게 좋은 영화, 곧 글러브다.   

 

 

  하지만 뻔한 구성에 뻔한 감동,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다. 그렇다고 어떤 창조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충 보면 다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있는 영화다. 심형래 감독 작품처럼 말이다. 이렇게 평한다면 좋은 영화는 못 된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다음 이야기가 대충 그려지는 영화는 그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창조적이지도 못한 영화라는 평가. 그러나 이 영화는 확실히 좋은 영화이고 볼 만한 것들로 채워진 대중적인 영화다. 특히 힘들어서 죽을까 하는 자살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게 된 지금 말이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더욱 좋은 특성을 갖고 제작됐기에 더욱 그렇다.
  힘들다. 그래서 다 그만 두려고만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하는 사람들과 관련된 뉴스가 최소한 한 편씩은 방송되고, 그 사연 역시 기구하다. 고독사, 아마도 올해 가장 유행될 이 어휘는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니, 88만원 세대니 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들의 삶이 힘들고 어렵고 외롭고, 그래서 지금은 살만한 세상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특히 이런 불행한 공동체 일원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위험 사회이고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우린 그런 시공간에서 살고 있다. 누군가가 보듬어주지 못해서 언젠가는 불편한 진실의 주인공이 되고 말 사람들을 표현하는 이런 말들 속엔 기가 막힌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즉 지금은 힘든 세상이다.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결코 살아가기엔 힘든 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 자들이 나온다. 프로야구에서 엉망으로 산 어느 퇴물 투수가 어쩌면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의 학교인 충주성심학교 야구부 학생들의 코치가 되기 위해 온다. 야구 배트를 함부로 휘둘러 상해를 입힌 그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건성으로라도 자원봉사 비슷하게 하기 위해 그가 온 것뿐이다. 언젠가 떠날 것이고, 대충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나쁜 선수다. 그의 학생이 될 성심학교 야구부원들은 어쩌면 의욕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청각장애인들이다. 불쌍하게 봐주거나, 아니면 무시당하는 두 가지 밖엔 안 봐주는 그런 학생들은 노력을 해도 이미 가련하게 보여주는 그 순간, 이미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하는 의지는 무너진다. 이미 무너진 몸에 무너져버리고 마는 정신력, 그들이 처한 위기의 실체다.
  망가진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무너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인간은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고독사의 본질은 일한 육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버려져서 더 이상 기사회생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자들로 대변되는 인간들의 모임과 그들의 재생, 그리고 그들의 모험을 이야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뻔한 용기란 비판에서 벗어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가슴으로 다가선다.  
 

 

 

  영화는 보는 관객들 중 상당수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일 것이다. 마음 편히 볼 수도 있겠지만 어디선가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직장이나 학교에서 좌절을 맛 봤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자신들보다 더욱 힘든 육체적 어려움을 견디면서 전국대회 1승이라도 한 번 거두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성심학교 야구부원들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육체적으로 건강하지만 정신적으로 불구가 된 자들이 사실 이 사회에 많기 때문이며, 고독사도 그런 유형 중 하나일 것이다.
  용기, 정말 중요하지만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요원한 세상 속에서 우린 산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상대의 용기까지 빼앗아야 마음이 편한 세상, 그래서 잔인하게만 변하는 인성이 가득한 세상. 그런 곳에서 삶의 방향은커녕 지금의 안락도 결코 안락으로 느낄 수 업는, 불안함이 가득한 세상에서 용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용기가 없으니 희망이 설 자리도 없어져간다. 그리고 방황하는 정신 속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고 마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글러브는 정신적 혼란을 치료하는 좋은 약인 셈이다. Glove 속에 담긴 Love는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Love를 통해 힘을 얻고 또한 미래의 자양분인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영화다. 좀 뻔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가 꼭 1승을 얻길 빈다. 그 승리는 그들만의 승리가 아닌, 사회의 소외된 자들의 승리가 될 수 있는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심 야구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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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대한민국을 위해 최전방에 설 젊은이들에게
김현종 지음 / 홍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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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정말 험난한 과정을 갖고 있는 무역방식이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험난한 영향이긴 마찬가지다.
  책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저자의 생각에서 시종일관 읽힌 것은 외교부에 대한 그의 분노였다. 개인적으로 무척 공감하는 부분이다. 사실 외교부의 공무원 체질이 외교부만의 문제도 아닐 성 싶다. 그것은 역시나 공무원 조직을 넘어 대기업까지 이어지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특히 IMF로 크게 치욕을 당한 후, 많은 변화가 있어서 기업이 좀더 개선된 조직을 보였지만 공무원들, 특히 외교부 직원들은 아직도 개선이 요원하다. 얼마 전 장관의 딸의 채용이 문제가 되어 쫓겨난 장관 생각을 한다면, 한국 외교부의 역량은 물론, 그 조직의 외교 역량이 솔직의 의심된다. 이미 사라졌다고 하는 조선시대의 중세적 속성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요즘, 외교부의 파탄성은 사실 위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의 소견처럼 꼭 저장해 둬야 할 보고서다. 한국의 고위급 관료들은 자기가 물러나면서 자서전이나 기타 등등의 자료를 내놓지 않거나, 설사 내놓았더라도 자기의 선거와 관련된, 공치사로 일관한 책을 출판한다. 이 책 역시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하는 점에선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다만 저자가 사심을 갖고 출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증명만 된다면 이 점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전반부에서의 FTA 추진과정보다는 후반부에 있는 저자의 철학과 인식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책은 주장을 담고 있고, 세계관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FTA를 통해 다양한 경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수치를 내놓으려 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실용주의자이며, 파격을 마다하지 않은 행동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창의적인 학자다. 기존의 관례는 깨지라고 있다라는 것이 아마도 신념일 듯 한데, 한국이 강력한 국가와 FTA를 할 땐, 분명 필요한 마음가짐이란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저자의 생각처럼 FTA는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경제적인 효율 문제를 넘어 정치적 계산까지 더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FTA는 이미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로 화한 사안이다. 중남미의 수많은 FTA나 지역협정이 있지만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은 그 지역의 정치적 문제가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미와 반미라는 사안에서 브라질의 성장과 함께 점차 Merco Sur가 중요해지고 있는 점이나, 중국과의 아세안의 FTA 체결에서 위기를 느끼는 한국과 일본을 보면, 먹고 사는 문제를 굳이 경제와 정치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내 것을 지키기 위한 대상을 굳이 구별하려는 관례에 기인한 것뿐이다. 저자처럼 FTA로 한반도 통일까지 염두에 둘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FTA는 정치경제학의 사안이다.
  개인적으로 FTA는 찬성이고, 많은 이들도 공감한다. 특히 시장 헤게모니를 갖고 전세계에 Hegemony를 휘두르고 있는 미국과의 FTA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미국의 시장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경제 발전을 결정할 만큼 되어 있고, 한국은 미국에 대한 편승전략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나라의 대표적 근거이다. GATT와 같은 다자간 협상체제도 사실 냉전 기간 동안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항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이 뭉친, 그리고 미국의 시장지분을 더욱 얻으려는 국제 질서, 아니 자본주의 국가들의 체제이다. 더 많이 갖고 싶은 미국의 시장, 당연히 좋다. 한국이 가장 큰 실리를 취하지 않았는가? 비록 군사독재란 Risk는 얻었지만 ‘이대도강,’ 살을 주고 뼈를 얻는 전략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을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저자가 체결한 한미 FTA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바뀔 전망이다. 그나마 이익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다시 계약을 바꾸자고 이야기하는 미국을 보면 경제력 뒤에 있는 정치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언제나 느낄 수 있는 저자와 관련 공무원들의 헌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한국에게 그나마 유리한 FTA 조항은 사실 개선 혹은 개악될 것을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있는 사안이다. 노무현 정권 때 이라크 파병을 하면서 얻었던 좋은 조건은 이미 정권이 바뀌면서 사라졌고, 또한 한국 정부도 바뀌었고 미국의 정권도 바뀌었다. 조건이 바뀌면 결국 기존의 안은 미래의 안을 위해, 마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내듯, 바뀔 운명이었다. 어차피 국제사회는 말이 좋아 사회이지 정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쩌면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악수라는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순진한 발상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멕시코가 이 조약을 통해 통상이나 전체 투자에서 이익을 얼마나 얻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멕시코가 얻은 이익이 마낄라도라일 뿐 도리어 국내 사정이 더욱 어두워졌다는, 미국 내에서 멕시코 경제를 가르치는 학자들의 입을 빌린다면, 효율을 지향하는 통계수치와 국내 안정이 과연 얼마나 정의 관계를 갖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재편과 그에 따른 혜택을 말할 수 있겠지만 FTA는 국내안정에 도리어 역행하는 성질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말했지만 FTA를 통해 손해 입을 부분에 대해선 복지적 관점에서 해결하란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 국내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계를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FTA를 통해 이익을 얻는 세력이 복지예산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통 큰 치킨’과 같은 ‘통 큰’ 시리즈 한방에 소상인들의 경제기반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 과연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과일이 누구에게 갈 것이고, 그것이 한국 장래에 좋은 것만을 줄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차라리 FTA를 통해 국내 산업을 효율적으로 재편하니까 저출산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고령화 사회는 필연적이니 감내 좀 하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저출산에 대해 고민한다는 식의 발표는 차라리 안 했으면 했다. 재벌이 한국국민들을 불법적으로 구타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결코 Angel이 아니란 사실은 한국인 모두가 공감한다.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인 정부를 더욱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 FTA일 수도 있다는 여론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매우 믿을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과연 자동차 판매하는 재벌이 국내 안정을 위해 얼마나 이익 분을 내놓을지 의심스럽다. 그것을 갖고 차라리 중소기업이나 소상인을 옥죄는 자금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한국 재벌이 수출로 얻은 이익을 어떻게 배분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올 것도 같다.
  저자의 우국충정은 책의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힘든 여정에서 국가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나마 복지부동의 관료사회에서 이 정도의 관료가 있었다는 사실에 정말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는 Ivy league로서 모든 이들의 선망 대학이며,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다만 미국식의 계산 방식으로, 그리고 철저한 효율성 측면에서 모든 것을 다루는 미국적 지식인이 과연 전세계의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의아스럽다. 경제적 성과가 제대로 분배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내성이 약해지고, 위기에 처했을 때,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많다.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교과서로 채택한 국가들이 경제 위기에 처해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결과를 너무 수치에 치우친 결과란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와의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업을 위한 이민을 받아들이도록 추진하는 내용에선 좀 당황스러웠다. 뉴질랜드로 한국농업이민자들이 가도록 함으로써 장래의 식량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인데 과연 그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에 식량을 제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들이 한국문화를 유지하려고는 하겠지만 과연 얼마나 손해를 감수하고 식량을 제공할지 말이다. 국가를 벗어난 동포라고 해도 경제적 손실을 따지지 않을 만큼 민족적 정서가 경제적 효율을 넘을 수 있을지 말이다. 또한 중국과의 Safe Guard 역시 사문화될 정도니 사려져도 그만이라고 하지만 이건 장래에 대한 관점으로 인해 논란이 많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백두산이 화산폭발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않을 것이란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의 생각 중 상당 부분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이 보였다.
  또한 많은 경력과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이분법적인 주장이 책의 상당 부분에 있는데 개인적으로 옳은 판단이라고 느껴지는 곳은 많지만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 역시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쪽을 거의 적으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느낄 만큼 다소 과격한 어휘를 구사한다. FTA 담당자로서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기도 하다. 정보 제공에 있어 한국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국민들을 실망시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래서 불신을 갖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FTA에 대한 내용은 한국 국민들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이 큰 만큼 당연히 반대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반대야 말로 한미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이것이 협상력일 것이다. 다만 진보진영에서의 비판이 과연 비합리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스크린쿼터가 결국 개방 쪽으로 갔다는 것으로 안다. 대신 한국 영화계도 대형화됐고, 그에 따른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계 스텝들은 사회 전반적인 비정규직처럼 변했고, 한 때나마 인기를 누렸던 감독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스크린 개방은 결국 있는 쪽에선 대형화로 인해 능력을 배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안 되는 쪽은 붕괴하는 것이다. 붕괴된 인력을 다시 소생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것과 같은 것이다. 스크린 문제로 유추하면 이것은 모든 산업과 경제영역으로 확대가 될 것이다. 쌀만 보호한다고 농촌을 다 위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내문제로 큰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개방이나, 대충 보조금으로 입막음 하기만 한다면 FTA를 통해 얻는 이익은 얼마가 됐든 결국 저출산과 같은 문제로 그 사회는 중병을 앓게 될 것이다. 차라리 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대중화를 추구했다던가, 중소기업 활성화를 모색하든가 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사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지, 재벌들의 활력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결국 가계의 희생으로 살 찐 재벌들이 ‘Trickle-down’을 한다면서 사회의 계급화를 양산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사회가 Pie가 적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 할 수 없다. 집 적어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르겠다. 과연 어떤 것이 최고의 방법인지. 저자의 노력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저자가 그렇게 싫어하는 진보진영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든 FTA를 통해 한국 사회는 재편될 것이다. 그것이 과연 한국사회의 안정과 미래를 위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싫든 좋든 10년 이후의 판단일 것이다. 이 책 역시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나왔으면 더욱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 하면 그 땐 지금보다 더욱 명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NAFTA 이후 Salinas 대통령이 멕시코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돌아왔는지는 현재 모르겠지만 체결 당시 멕시코 국민들이 많이 화가 났었던 것 같다. 지금도 멕시코 국민들이나 아니면 캐나다, 심지어 미국국민들까지 좋아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구체적 자료를 얻을 수 없는 개인적 입장 때문이겠는데 조금 아쉽기도 하다. 다만 좀 더 이후에 한미 FTA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그 때, 다시 저자가 ‘한미 FTA 10년 후’와 같은 책을 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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