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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남극이라고 다를 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말이다. 인간이 살지 않은 곳에서 관측이나 과학실험을 위해 만든 남극기지에서 매년 파견되는 남극관측대란 곳은 남들 보기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모험이 가득할 것 같지만 거기 역시 사람들이 살고, 그들끼리 서로 복잡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곳이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쌓이고 인간들의 개성이 부딪히는 곳이리라. 그런 곳에서 즐거운 생활을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남극이라면 많은 이들에겐 환상의 장소일 것이다. 비현실적인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오로라나 펭귄 등의 즐거운 것들로 가득 찬 곳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남극을 생각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다. 희한하고 이상한 것들로 가득한 세상 정도로만 알고 있는 그곳 남극은 세상사와는 거리가 먼 지역으로 생각만 된다. 남극을 미래 자원의 보고로서 많은 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남극기지를 건설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들이지, 자연과학이나 자원개발, 뭐 이런 것으로 점철된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솔직히 순진한 생각임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해야 재미도 있고, 즐겁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탐사하는 사람들은 좀 다를 것이다.
남극탐사대원들 9명이 한 곳에 모였다. 돔 기지라는 곳에서이다. 많고 적든 간에 그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남극이란 극단적인 혹한의 땅에서 좁은 곳에 9명이 각자의 삶과 동시에 동료들과의 삶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고 고충이다. 남극을 가지 않은 사람이라면 환상의 낙원이 되겠지만 남극에 파견된 대원들에겐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직장인 것이다. 즉, 그들에게 남극의 돔 기지의 생활은 곧 직장생활일 뿐이다. 당연히 직장에서 얻는 스트레스와 직원간의 긴장관계는 당연히 다반사일 것이다. 바로 이것들을 어떻게 제거하고 해소하느냐가 직장생활이 천당이 될지, 아니면 지옥이 될지 결정될 것이다.
극복, 정말 힘든 목표다. 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존재하는 갈등을 제거하는 작업은 말이 쉬울 뿐, 얻기 힘든 목표다. 그래도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리고 승화, 극복을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날 때, 그것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다른 방편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화도 날 것이고, 그냥 속으로 묻어야 할 것들 것 있다. 아니면 불편한 인간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즐거운 오락이나 만남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남극의 셰프인 저가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요리다.
사람이 많다 보니 준비도 다양했던 것 같다. 처음 그가 해양경비대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요리를 담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옮긴이의 말‘로 알게 됐지만 그래도 글을 읽는 내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비록 그가 과거의 전력으로 배운 경험이 있다 치더라도 국적도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대원들의 요구에 어떻게든 맞추려는 그의 노력을 보면 요리 속에 담긴 서비스 정신, 혹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배려가 숨어 있다. 요리를 통해 조용히 자기 연구에만 집중하고, 격리된 생활 속에서 나타날 불만과 짜증을 어떻게든 줄이려는 노력이 대단해 보였다. 확실히 인간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배려인데, 그것이 잘 반영된 음식들이 계속 나와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요리들의 매일의 리스트를 보면, 괜히 내 미각까지 자극되는 환상을 느끼게도 된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남극에서 무한히 쏟아지는 음식 리스트를 보면서 마치 마술사의 장난인 것처럼 끊임없이 요리가 나오고 있었고, 힘겨운 남극의 돔 기지 생활이 도리어 멋져 보이기조차 했다.
또한 저자가 기록한 내용마다 번뜩이는 즐거운 표현력은 무척 인상적이다. 정직하다 못해 인간의 내면 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호소력 있는 표현은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한다. 내용 사이에 듬뿍 담아있는 돔 기지 생활의 상징들은 결코 적나라하지 않으면서도 과격하게 솔직하면서도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로부터 연상된 다양한 표현들로 언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표현력으로 묘하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표현하면서도 멋지게 감추는 능력은 삶을 재미있게 요리하는 저자의 재치가 느껴졌다.
이 책을 보면서 남극 가는 것보다 남극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미리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남극이 아니라도 우리가 사는 현실이 남극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요리를 즐겁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것은 삶의 지혜일 것이고, 동시에 삶을 살찌우고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도 요리를 잘했으면 좋겠다. 저자처럼 말이다. 그래야 남극 같은 험한 곳에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재미있는 여행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