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36의 기적 - Paris 36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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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아련한 옛추억만을 담을 것 같은 영화는 이상하게도 시대상을 분명히 드러내며 시작한다. 추억 속의 세상이 마냥 행복한 그 시절은 아닌 것을 보여주려던 것 같았다. 1936년은 전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 밀어닥친 시대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힘든 시대였고, 그 후 몇 년 후 독일의 침공으로 2차 대전이 시작될 때쯤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 프랑스 역시 격렬한 정치적 변화를 겪는 시기였고 좌우의 대립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좌파 정권인 블룸 정부가 우파를 누르고 정치권력을 갖게 된 시기이다. 좌파 정권이 최초로 정권을 잡았던 시기라면 거의 다 사회적으로 좌우의 충돌이 만연됐고 정권에 대한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파와 그에 대해 정치적 타당성을 강조하면서 우파를 비판하는 좌우의 대립이 심각한 시기였다.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하지만 그런 시대가 결코 아니었다.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고만 하는 시간, 바로 그 때가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이다.
  시작부터 보인 어느 피의자 심문은 어느 중년 남자의 불행까지 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오는 과거의 회상장면에서의 1936년 벽두부터 터진 자살사건을 시작으로 영화는 어는 험난한 인생을 가야 할 가장을 보여준다. ‘피구알(제라르 쥐노)’은 자신이 일했던 샹소니아 극장이 폐쇄되면서 직장을 잃게 됐고, 불륜으로 도망친 아내가 자신의 아들을 데려가서 혼자 남게 됐다. 그는 소외됐고, 외롭게 됐으며, 미래는 더욱 암울하게 됐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난한 자들이 나온다. 그들 중 좌파 신념을 목숨처럼 소중히 하는 ‘밀루(클로비스 코리니악)’와 3류를 넘어 4류로까지 하락하고 있던 성대모사를 하는 ‘재키 (카 므라)’가 있다. 그들은 시대 정신에 민감한 자와 그런 이데올로기에 상관 없이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기만을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구성된 자들이다. 그냥 서민들이다.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시공간 속에 살면서, 그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그나마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샹소니아 극장의 폐쇄는 많은 이들이 경험한 절망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런 절망을 부둥켜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국 최악을 맞이할 뿐이란 사실을 그들 모두가 알고 있다. 새로운 극장 주인의 음험한 호의 덕분에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지만 관객이 아는 동화로 그들의 순식간의 성공을 보여주지 않는다. 연이은 파산과 동료들의 반목, 그리고 떠나가는 동료들과 남게 된 동료들간의 서글픈 인간관계들이 영화 중반을 가득 메운다. 그나마 갖고 있는 것들이 모두 날라갈 때, 그 시점에서 다시금 새로운 동료애가 나오고 관객들에게 모욕만 받았던 삼류 성대모사꾼이 새로운 모습으로 인기를 얻는 장면에서 영화는 동화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작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매력적인 성공담은 모든 이들을 훈훈하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은 그런 동화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슬픈 마지막과 함께, 1945년으로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보게 되는 새로운 시작과 활력으로 영화는 그래도 희망이란 단서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비극과 동화를 교묘한 장치를 통해 연결하는 모험은 영화의 내용을 울고 웃는 장면으로 계속 이어갔다. 그런 과정 속에서 볼 수 있었던 2차 대전 전후에 벌어진 프랑스의 역사가 보였고, 당시 사람들의 희망과 불운을 봤고, 그리고 새로운 출발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기가 묘하게 유추된다. 과거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과 겹치는 것은 아마도 그때나 이때나 사는 과정도 비슷하고, 당시의 고민이 오늘의 고민과 다르지 않고, 그때의 희망이 지금에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감독의 도전이 엿보인다.
  그렇다. 쉬운 것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오늘의 현대인이 지상낙원에 산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환상이다. 그런 환상을 꿈꾸며 현실을 사는 것은 현실부정일 뿐이다. 영화는 삶의 부침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있을 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고, 또 새로운 활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오늘에도 통하며, 힘든 현실 속에서 결코 외면해선 안 되는 그나마 갖고 있는 행복이다. 희망을 꿈꿀 때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삶이 우릴 속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의 꿈 같은 밤의 장면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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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Black Swa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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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백과 흑의 대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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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2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 늙어 가는 세계의 거시 경제를 전망하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5
조지 매그너스 지음, 홍지수 옮김 / 부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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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령화, 이것은 공포다. 언젠가 마주쳐야 할 미래의 위기, 아마도 이 위기는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고민에 대해 이 책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래에 관한 책이고 미래에 닥칠 위기에 대한 처방전을 제시한 책이다. ‘만약’이란 단서는 책 곳곳에 널려져 있고,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은 곳곳에 감춰져 있다. 미래는 막연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제시한 처방이 과연 어느 정도 효과적일지 장담할 수 없다. 그것은 저자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할 시점이 당도한 것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인류의 오랜 염원이었고, 세상의 축복이다. 하지만 그런 축복이 누군가에겐 대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역설이 올지도 모른다는 위험의식이 고령화의 위기를 낳게 됐다. 인류에겐 어떤 점에서 축복이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도래는 경제발전의 동력이 될 엄청난 인구증가가 이루어졌다. 소비는 늘었고 생산력 역시 가일층 향상됐다. 동시에 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의 자산가격의 상승이 이루어졌다. 베이비붐 세대는 근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동력을 제공했고, 어쩌면 인류에선 독특한 세대였다. 하지만 그들이 은퇴하는 이 순간이 문제가 됐다. 그들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베이비붐 세대 이후가 짊어져야 할 상황이 초래되면서, 위기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베이비붐 세대의 변화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란 점이 문제다. 서유럽은 이미 고령화가 심화됐고, 동양에선 일본이 초고령화 사회이고, 한국이나 대만, 그리고 세계의 경제심장인 중국 역시 이런 위기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즈음해서, 전세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며, 그것은 결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닌 불행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경고는 사실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미 퇴직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점차 젊은이들이나 후세에게 큰 짐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무수히 많다. 무엇보다 세대갈등이란 문제는 앞으로 이세상을 사는 이들에겐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위기에 대해 저자의 처방전은 매우 간단하다. 여성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하고, 아직 인구구성상 성장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투자를 통해 고령화를 겪게 될 지역의 재원을 마련하는 계획이 그것이다. 이런 것 외에도 다양한 방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그렇게 쉽게 마련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란 점에서 문제다. 호조건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겠지만 그런 호조건이 과연 마련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미래는 불안한 상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어쩌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그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늦는다면 그것은 재앙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인류는 또 다른 위기를 겪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경고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세대간의 타협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이라는 매우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해결책만이 유일한 방안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두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며, 해결책 역시 단일 국가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민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환경피해 역시 고령화와 관계됐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해결책은 필연적이다. 지금까지 협력보다 상대에게 자신의 문제를 떠넘기는데 익숙한 인류에겐 매우 어려운 난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감정과 본능은 억제되어야 한다. 인류의 현명한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록 매우 어렵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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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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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예정



  전쟁이란 현상은 하나인데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은 각자 다양한 이익을 위해 참여하기에 복잡한내면을 갖고 있다. 목표야 전쟁의 승리겠지만 승리에 대한 각자의 목표는 상이하고 종종 상충적이다. 영화 '평양성'은 삼국통일 전쟁을 통해 그들만의 공통의 이익을 얻어내려는 세력들이 한 팀이 되어, 이기려는 것이 바로 전쟁이고, 전쟁 속에 담긴 다양한 이익세력들의 복잡한 이익구조와 그들간의 관계, 그리고 그 진행 등을 통해 전쟁의 속성과 국가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데 이준익 감독은 공동체적이기보단 개인주의에 집중하고 또한 국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뉴앙스도 묘하게 풍긴다. 즉 국가가 과연 필요할까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들의 모습과 행동을 보면 수십 년간 벌어진 고구려 멸망 과정을 작은 시골 마을 같은 평양성 세트에서 보여주려다 보니 짧고 굵게 표현하려고 했다. 따라서 이미 잘 알려진 실존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전제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단편적이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리석은 모습들로 채워졌다. 특히 고구려의 인물들이 그렇다. 고구려를 패망으로 이끈 인물들이라서 그렇겠지만 배신자 남생(윤재문)에 어수룩한 동생 남산(강하늘)은 그들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얼마나 수준 이하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고구려를 위해 끝까지 저항한 남건(류승룡)은 끝까지 고구려를 지켰던 이유로 오늘날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것을 보면 영화는 코디미라도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리고 대중성을 목표로 한 작품임도 밝힌다. 대놓고 말이다. 아마도 3백만 정도의 관객을 목표로 하는 영화 정도.
 

  

   하지만 고구려 지배층 뿐만 아니라 김유신(정진영) 등을 포함한 나라의 우두머리들만을 찍기 위해 이 영화가 제작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들이 갖고 있는 사욕으로 인해 고생하고 위험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국민을 희생시키고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확대하려는 지배층의 탐욕은 영화 속에서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보다 더욱더 집권층에 의해 이용되고 배신당하며, 결국 희생될 수밖에 없는 백성이란 하류층에 눈길을 준다. 그리고 그들의 편에 서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것을 보면 민주주의의 전도사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전쟁은 목숨을 거는 도박판이 된다. 그 속에서 백성들은 그 도박판에서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자신들이 원해서 성사된 도박은 아니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역설과 모순의 장, 그런 장소에서 영화는 두 가지의 선택을 지닌 두 명의 신라군에 주목한다 (고구려는 공격당하는 입장에서 지배층이든 백성이든 선택의 여지는 없다). 하나는 백제민이었지만 자국의 붕괴로 억지로 전장에 끌려온 거시기(이문식)과 또 하나는 전쟁 참여로 인생의 대박을 노리는 문디(이광수)가 그들이다. 목숨을 걸어야만 살 수 있는 역설의 현장에서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게 된다. 전혀 다른 방식과 목표로 말이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하나로 귀결될 뿐이다. 살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과연 얼마나 가치있는지에 대해,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의문이 들게 된다. 특히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하는 곳까지 이르게 되는 문제의식이, 바로 감독이 원하는 지향점이다. 전쟁을 하기 전에 전쟁 승리에 따르는 배상을 요구하는 신라군의 모습과, 그런 그들과 협상을 결말짓는 김유신의 비열한 모습은 전쟁에 담겨 있는 정글의 법칙을 절감하게 된다. 어차피 전쟁에서의 승리는 희생을 전제로 할 것이고 그게 자기 아닌 백성이라면, 한 번 해볼만한 도박이라는 지배층의 생각은 어제나 오늘이나 다를 것이 없나 보다. 삼국통일이란 가치는 후대가 만든 가치관일 뿐 당시의 사람들에겐 그리 큰 가치는 아니다. 당시의 사람은 당시 사람이고 후대는 후대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라가 필요 없어졌다. 아니 그냥 수단으로 전락했단 표현이 더 적절하다. 언제부터인지 정부는 매우 중요하며, 국가를 지탱하는 힘으로써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정의됐다. 그런데, 영화 ‘평양성’에서의 정부는 없으면 좋은 기관으로 전락했다. 도리어 자국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그렇고 그런 기관, 영화는 조금 묘한 구석으로 가고 있다.
  그래서일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은 말이다. 이준익 감독의 결론은 자연스레 무정부주의로 결론을 맺는다. 신라, 고구려, 그리고 당의 권력이 못 미치는 삼수갑산으로 도망가는 거시기의 선택이 이 영화의 논지일 것 같다. 정부와 그 뒤에 숨어 있는 집권층의 폭력성을 보여주다 보니 결국 그에 대한 마지막은 국가권력이 전혀 없는 곳이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장소인 것처럼 보인다. 비록 고부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장면에서 인생에서 갈등이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정도의 견해가 나타나지만 최종적으로 정부는 악으로 결론이 난다. 
 

 

   의도야 어떻든 정부의 가치가 하락해야 한다는 것은 현대인이 갈망하는 염원일지 모르겠다. 통제하기엔 너무 막무가내인 정권의 속성은 어쩌면 국민들을 탈민주화시키는 가장 큰 원흉일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평양성’에서 볼 수 있는 기만적인 정권의 행태는 기막힐 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많은 국민들이 염원했고, 정부 통제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탄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실효적이지 못했는지 ‘평양성’같은 영화까지 나왔나 보다. 바로 21세기도 벌썬 10년이 넘은 이 시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
  국민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권의 속성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막는 것은 결국 백성이다. 도망간다고 해결될 것이라면 다들 도망가서 살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될까? 결국 그곳에서도 강도는 있게 마련이고 약하지만 독립적 권력 집단도 있게 마련이다. 영화는 묘하게도 퇴영적 방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 신라도 나쁘고, 고구려도 나쁘고, 당도 나쁘겠지만 그렇다고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 무릉도원이 있다는 식의 결론은 솔직히 퇴폐적 낭만주의 결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비판하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 권력체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작이었던 ‘황산벌’이 영화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막았던 것 같다. 다소 무리한 코믹 설정은 웃다가 좀 억지란 설정이 들어 웃다 말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편하게 느껴진 대중화장실의 장면은 과거의 해학에서 빌렸을지 모르겠지만 세련되지 않으면 어떻게 이상하게 변질되는지 확인하는 장면이 된 것 같다. 많은 구도 속에서 섬세하게 처리되지 못한 설정이나 억지스런 캐릭터 설정 역시 조금 그랬다. 그나마 연기자들의 연기력을 어떻게든 극복된 것 같지만 캐릭터 설정이 다소 억지스러웠던 것은 매우 아쉽다. 영화의 코믹한 대중성을 위해 그렇게 했단 생각도 들지만 기대치에 못미치는 것은 보는 관객이나 만든 제작진이나 아쉽게 마련일 것이다. 다음 전쟁영화가 될 매초성 전쟁이 잘 만들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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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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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는 좋았지만 조금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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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1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그러더군요.

novio 2011-02-11 22:10   좋아요 0 | URL
편차는 있겠지만 이 영화가 왜 히트치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좀 있더군요. ^^

stella.K 2011-02-12 11:1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김명민 때문은 아닐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