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의 즐거움 - 고대의 현자 세네카가 들려주는 불행한 시대를 이기는 방법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혁 외 옮김 / 눌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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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통해 위로 받은 게 많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친구를 둔 덕분에 많은 도움과 은혜를 받았다. 언제나 그런 고마움이 마음 속 어딘가에서 갈등의 씨앗처럼 존재했다. 친구들에게 받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빚으로 느껴지는 시간이 올 때 마음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친구의 고마운 마음이 나에겐 불편한 반응으로 다가오는 것이 싫었지만 시간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느낀 부채였다. 그런 마음이 옹졸한 줄 알면서도 친구의 안면을 외면하고 싶은 시간들이 많았다. 그런 것이 문제였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사실 해결할 방법을 몰랐었고 자존심으로만 해석하려 한 거였다. 이런 갈등을 이 책이 시원하게 날려준 것 같다.
  은혜를 준 이 역시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동시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관계로의 발전은 베풂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지금의 시간이 아니라 나중에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무척 위로가 됐다. 지금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쩌면 마음의 부채는 그 시간을 좁게 잡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만 알고 살았던 것 같다. 거의 2000여 년 전의 스토아 학자의 식견은 지금에도 통할 수 있는 놀라운 식견이었다. 위대하니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De Beneficiis’를 번역한 ‘베풂의 즐거움’은 제한된 시간만을 생각한 어리석은 나에게 마음의 위로는 물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준 지침서기이고 하다. 무척 감사한 책이다.
  지금 시기엔 적절해 보이지 않은 묘사가 있긴 하지만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분석과 함께 뛰어난 유추로 세네카는 자신의 탁월한 사상적 논리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그의 유추는 문학적이고 산뜻했고 인상적이었다. 당시 시대상을 담은 표현들 속에서도 지금의 우리들이 쉽게 독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그의 필력은 무척 놀라울 뿐이다. 그의 정치적 능력이나 활동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책은 정말 탁월하다.
  책은 개인적 수준에서부터 은혜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다. 은혜의 진정한 의미와 그것을 받은 이의 기본적인 바른 자세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를 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이 책이 개인 수준에 머물렀다면 좋은 생활지침서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세네카는 은혜를 범위를 더욱 확대해서 사회적 수준으로 끌어가면서 모두가 함께 하는 건전한 공동체를 구현하려 했고 아마도 그의 진정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결국 자그만 인간관계의 구현에서부터 실현되는 것이다. 은혜가 부채 의무처럼 준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타인에게까지 확대하라는 그의 의중은 사실 도시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도시는 시장바닥이 됐고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에서의 은혜는 고사하고 경쟁에 매몰돼서 서로에게 상처 입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결국 공동체의 말로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은혜가 확산될 수 있는 많은 시도가 지금 있지만 사실 힘든 지금, 세네카의 혜안이 무척 절실한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이 오늘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처방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현인에 귀를 많이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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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라틴아메리카를 날다
송유나 글.사진 / 어문학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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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책을 펼친 후가 아닌, 이전이었다.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준비해도 모자란 시기에’라는 문구는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어쩌면 후회를 느낀 어투인 것도 같고, 아니면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건 작가의 탄식 어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작가와 상황이 비슷한 이들의 마음에 기인한 것이리라. 용기를 내는 이의 마음이 다 그런 것이리라.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는 용기, 어쩌면 그런 고충이 이 책의 시작인 것 같았다.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차피 여행의 이유가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것이라면 철든 이들이 하기엔 좀 어려운 선택이다. 특히 어려운 경제사정과 물질만능주의의 세상인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힘들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도 만용에 가까운 것이 말이다. 그렇기에 작가 송유나의 용기는 만용이면서도 대단한 용기다. 그것도 지금의 한국 분위기에서도 10일 정도가 돼도 길다고 하는 상황에서 거의 1년 정도 여행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마음이지 않고선 사실 불가능하다.
  작가의 경력이 무엇이든 그녀는 내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남미, 아니 중남미 여행을 콜롬비아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 사람들에겐 미지이기에, 그리고 부정적이어서 자극적인 것들인 넘치는 지역인 라틴 아메리카는 어쩌면 가장 기피하는 곳이리라. 식민지 시기를 공유했고 아직도 아픈 곳이기에 뭔지 모를 유대감이 있다는 생각보단 마약과 살인으로만 기억되는 그런 장소로 그녀는 상당히 대단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내용 참 풍성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거의 빠진 나라가 없을 만큼 거의 모든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을 여행했다. 실재로는 남미 지역 국가들만 여행하려 하려 했지만 우연한 기회가 중미 국가들까지 다다르게 했다. 독자로선 너무 다행이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진미를 담은 영상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작가 개인의 소소하지만 값진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인생 이야기는 더없이 좋았다. 아마도 이 책의 진미는 한 인간이 여행하는 과정 속에 담긴 자신과의 이야기일 것 같았다.
  어쩌면 여행은 또 다른 생활이다. 여행이 쉬울 리도 없고, 그것 역시 또 다른 사회가 존재한다. 그 사회 생활이 마냥 멋질 리 없으며, 힘든 정신적, 육체적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것을 담고 있었다. 여행 잡지의 협찬에 얽매여 쓰인 책이 아닌, 자신의 새로운 경험을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성찰적으로 다룬다. 저자가 쓴 글엔 그런 내용들이 푸짐했고, 여행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고생스럽다던가, 힘들다 하는 푸념은 아니었다. 새로운 것들은 물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그것을 통해 겪게 되는 색다른 인간사를 경험한 이의 놀라운 경탄이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또 다른 계기인 것이다.
  작가는 이 한 번의 여행으로 모든 것을 끝내지 않았다. 언제나 다시 올 것이란 다짐을 하고 있다. 분명 그런 기회가 올 것이고 다시 그 장소로 간다면 좀 더 멋진 여행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이다. 그 때 다시 여행 에세이를 썼으면 한다. 그 땐 좀더 다른 시각과 감성으로 쓸 것이며, 또한 여유롭게 쓸 것 같다. 그게 너무 기대된다. 그 땐 이 책을 볼 본인 역시 좀 더 여유롭게 기대할 것 같다.

라틴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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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 장석주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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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다는 것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왜 좋은지를 생각하고 읽었는지는 의문이다. 억지로 공부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억지로 읽어야 할 시간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해야 할 숙명이라면 독서도 그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독파해야 점수를 올릴 수 있고, 험하디 험한 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토익책을 가까이 해야 하기도 하다. 지금은 중국에 대한 영향권으로 진입하는 한국이다 보니 HSK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뭔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또한 책을 읽어야 한다. 사업을 위해, 그리고 뭔가를 알아야 생존할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많은 책들은 이렇게 생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되며 소비된다. 하지만 아마도 이건 한 개인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내세우고 자유를 위해 자립을 해야 할 인간들의 숙명이라면 무엇인가를 이용해야 하며, 책은 인생을 위한 수단으로서 인류가 만든 수단들 중 최고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라는 에세이는 책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인도한다.
  책의 가치를 어쩌면 나는 물론 현대인들은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고 있거나 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치 생활고란 인생의 깊은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닫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좁아졌고 타인과의 관계 역시 투박하기만 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의 뭔지 모를 공포들이 엄습해 온다. 한국사회는 현재 긴장하고 있다. 시대적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도시 속 삶은 야박하고 낯설기만 하다. 타인에 대핸 배려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있고, 그 미래 역시 더욱 그렇다. 어쩌면 책이 필요한 시기다. 깊은 내면의 시간을 만들어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독서의 시간 말이다.
  뛰어난 작품들을 읽는 이의 마음을 담은 이 책을 읽었을 때 묘한 느낌을 받는다. 원작의 매력을 제대로 선별한 이의 분별력에 마냥 감사하면서도 막상 원작과 멀리 서있었던 독자의 마음은 묘한 슬픔에 젖기도 하다. 원작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이 책의 가치는 무척 높지만 언제부터인가 책에 손을 놓은 한 개인의 비애가 느껴지는 것도 같다. 이전엔 안 그랬는데 하는 야박한 비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란 시간들 중 과연 어떤 시간이 독서에 가장 부적절하겠는가. 모두 가치 있는 시간이고, 결국 시간을 내려는 개인의 의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에세이지만 시대의 아픔과 고민을 담고 있다. 책 속에 담긴 해결책이 과연 최선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은, 그리고 저자는 이 시대를 살면서 시대적 고민을 담담하게, 그리고 격정적으로 기술한다. 또한 저자가 시인이란 문학가이기에 그 표현력은 참 매력적이다. 풍요로운 내용과 범위는 물론 깔끔함 정리이면서도 짧은 표현력 속에서도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동시에 색다른 표현력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긴장하게도 하면서 흥분도 시킨다. 거기에 뛰어난 분석력 등은 이 책을 읽는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
  ‘청춘을 다 바쳐 읽었다’라는 표현은 스스로에 대한 굉장한 자긍심일 것 같다. 난 이렇게 이야기한 분야가 사실 하나도 없다. 책이란 분야에서 일을 했기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아니다. 책이 갖고 있는 가치를 결코 놓지 않으려 했던 저자의 인생 투쟁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이었을 것이고, 에세이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깊은 내면의 성숙이 매 페이지마다 느껴지며, 또한 한 인간의 인생관도 엿볼 수 있다. 책의 가치가 저자의 내면을 통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리고 저자가 쓴 책들은 그런 기준을 만족시킨다.
  도시 생활이 힘들긴 한가 보다. 특히 최근 들어 부쩍 잦아진 경제위기는 그런 고통스런 생활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 고민들과 아픔을 이 책은 결코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이런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생활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그것에 대한 해결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인지 모르겠다. 이런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이상향을 꿈꾸고, 그리고 어쩌면 현재의 자신이 서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저자의 마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에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대의 아픔에 대한 나름의 처방을 갖고 있는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면 그 철학들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런 것들을 통해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욱 많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노력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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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철학 지도 -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밑그림
김선희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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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교복을 입은 학생들만을 독자로 했다면 조금 사실 그리 쉬운 책은 아닐 것이다. 아니 매우 어려운 책이다. 책 내용의 난이도도 그렇지만 사실 이 내용이 담고 있는 것들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의 맹점일 수 있겠지만, 어린 나이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기에 철학이란 연구 분야는 어떻든 성인들에게 적합한 분야일 것이다. 다만 성인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이 책은 분명 많은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준비 단계를 위해 아주 독특한 방식을 선택했다. 과도한 추상화 단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쉽고 자주 듣는 것들로부터 시작했고, 그 내용 구성 역시 무척 쉬운 소재들로 가득했다. 성인들의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구성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구성에만 있지 않다. 철학의 진지한 고민이 숨어 있다. 또한 철학이 고민해온 문제제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결국 철학의 고민은 하나의 독립적 개인과 사회의 한 구성원이란 이중적 위치에 놓인 인간이 감당해야 할 고충을 해결하는 일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문제이기도 하다. 한 쪽으로만 치중했을 경우 이기주의나 혹은 전체주의란 문젯거리를 남기게 된다. 어쩌면 그 수많은 철학자들은 이 둘 사이 중 어느 한 곳에 위치했을 것이다. 이 책의 첫 시작이었던 유토피아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분석은 그런 고민을 보여주는 것으로 의미심장하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유토피아적 속성과 그 특징을 분석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동서양에 있었던 이상향들을 비교하고 그런 이상향이 담고 있는 현 체제에 대한 비판과 유토피아 뒤에 숨어 있는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왜 유토피아를 생각했었나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조금 아쉬웠다. 인간의 문제해결 방식은 결국 공동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를 통한 해결을 모색해왔던 것은 사회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고, 아니면 그냥 떠나버리는 이탈자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관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현대 사회, 아니 이제 글로벌 사회라고 포장된 국제사회의 본질은 결국 국가가 이제 시장처럼 됐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없다면 언제든지 떠나버리면 그만이란 의식이 팽배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현재의 국가는 이상향을 이루기는커녕 지금의 규모도 유지하기 힘든 무력한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마치 이탈자들이 만든 공동체가 됐다는 점을 명확히 부각시켰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차라리 소속감이란 부분을 다시 첨가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비극이나 코메디 부분을 통해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고 귀향이나 우정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느낄 수 있는 동료의식의 가치를 잘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히 평이하면서도 제대로 짚어주는 문장력은 읽는 내내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또한 고백의 부분에서 개인주의, 도시 발달, 그리고 근대 등과의 연결고리를 분명히 밝혀내는 부분에선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Study 부분은 이 책의 최고의 압권이란 느낌을 갖게 한다. 개인에서 출발하면서도 공동체의 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으로 많은 철학자들이 생각하고 제안한 것이 공부라는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갖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처럼 결국 공동체 내에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사회의 한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는 한 개인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공동체 생활을 최고로 만들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철학자들의 해결방안은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를 제대로 보여준 내용이기도 하다.
  사회를 하나로 묶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공자를 비판했던 노자도 결국 자기 집단의 체제 유지를 위해 멋대로 만든 사회적 가치의 편협성이 그 핵심이었다. 평등을 원했던 공자의 유가가 자신의 의도와는 관련 없이 위계적 신분질서를 만든 이념의 토대가 되고 만 것은 그런 슬픈 철학자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유토피아 역시 그런 위험성을 언제나 갖고 있을 것이다. 마냥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만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의 본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혼자만 살 수 있는 사회가 건설될 수는 없다. 어차피 이탈자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리도 없으며 이미 개인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시장주의가 만든 폐해인 경제위기와 전쟁과 같은 참혹한 결과는 이탈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가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입증됐다. 이러기에 시장의 힘을 제어할 국가의 필요성을 제기한 케인지언이 오늘에도 그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부를 사회 내에서 권력자가 되기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전락한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볼만 한 시점이기도 하다. 마지막 부분인 공부가 마음에 와 닿은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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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논어
야스토미 아유무 지음, 고운기 옮김 / 현암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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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책, 논어는 무척 오래 전의 책이지만 지금 봐도 혁명적이다. 역대 중국이나 한반도의 왕조들이 그 혁명성을 보수적으로 바꿔 사용했지만 사실 그 내용의 진위를 왜곡한 그들의 작태야말로 공자가 공격하고자 하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충이란 것을 임금에 대한 절대적인 맹종으로 바꿨다. 사실 한 집안의 무조건적인 효의 개념도 어쩌면 공자의 생각을 왜곡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공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혁명적인 생각이 어느 순간 보수적인 생각으로 덧씌워져서 참신한 생각을 가로 막은 수구적인 생각과 방식을 고집하는 노인으로 바뀐 공자는 사실 슬픈 철학자일 것이다. 그렇게 악용될 수 있었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은 공자 본인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몇 천년 전에 소개된 논어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현대적 해석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공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짚어야 하는 것이 현대의 해석하는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이리라. 무척 어려운 일이며, 고단한 작업이지만 공자의 생각에 많은 것들에 영향 받는 이들은 공자 사후 오랜 동안 있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말이다. 일본인 경제학자가 풀어낸 이 ‘위험한 논어’는 그런 지난한 시도로 나온 책이다. 그런데 무척 재미있다. 새로운 해석에 다시 경제학자라는 시선이 더해진 것 같아서 말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자는 시장이란 공간 속을 중심으로 이론을 펴는 이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가를 숭상하는 이가 공자를 바라보는 이율배반적인 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넘어도 인류에겐 무척 어려운 삶의 고통이 존재한다. 즉 공동체란 시공간에 살면서 짊어져야 하는 생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자유롭고 싶지만 그런 행복은 사실 공동체를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제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자는 행복을 찾으려 했고, 그런 행복을 위해선 당연히 공동체의 소속된 이들은 그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책임은 곧 한 개인에겐 부담이고 결국 고통이자 불행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친공동체적으로 세상에 나온 이들이 얼마나 될까?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시공간 속에서 그런 책임을 웃으면서 받아들일 이는 적을 것이다. 그런 고민 한가운데 군자나 인자, 혹은 성인이 위치할 것이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이가 많다면 그 사회는 어떻든 건강할 것이고 건전할 것이고, 공자는 그런 것이 좋은 것이며 옳은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것이 공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준일 것이며, 그것이 편협하다는 도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지적이 있었겠지만 결국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어떻든 왕조든 공화국이든 공동체인 만큼 공자의 의식이 현대적인 의미에서 시민정신으로 바뀌었을 뿐, 공동체를 위해 책임지는 소속원들이 많아지는 것을 마다할 리가 없다. 문제는 최근 이런 시민의식이든 유학자들이든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많이.
  일본 경제학자의 색다른 해석은 무척 재미있고, 무척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특히 책임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모인 공간으로 기능하는 시장이란 것으로 사회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더욱 그럴 것이다. 예리한 분석을 뒤로 하고라도 시장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심지어는 시장을 수단으로 해서 경제적 부를 확대하려는 시장 연구가인 경제학자가 시민의 책임의식을 핵심으로 건설되고 유지되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상가의 책을 해석한다는 것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세상에선 매우 독특한 시도이면서도 가치가 많은 작업이다. 시장에서 과연 책임의식을 갖고 공동체 의식을 지닌 시민이 활동할 수 있는지, 혹은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시장에서 가능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간극을 메우려는 의지를 갖고 논어의 현대적 해석에 도전한 것 같다. 솔직히 과연 이기적인 인간들을 숭상하는 시장경제학자인지, 아니면 그래도 사회적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케인지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노력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또한 현대적 해석을 통해 시장 우위의 자본주의자들에겐 위험할 수밖에 없는 친공동체 사상가인 공자의 혁명성을 다시금 조명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무척 가치 있는 작업이리라. 사실 진보적이란 의미는 결국 공동체 우의의 사상 아닌가? 그런 점에서 시장의 약점이 이기심을 줄이는 방법으로 공자의 생각을 참혹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시장 우위의 이 세상의 폭력성을 줄이는 작업으로 다시금 공자의 생각을 재조명하는 것은 현대의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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