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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 Rough Cu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른 세계 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마 이 영화의 시도는 매우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있는 두 세계의 기이한 접촉을 통해 양자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무섭게 느껴졌다. ‘영화는 영화다’라는 매우 독특한 영화제목이 갖고 있는 힘은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그 힘만큼이나 영화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은 신선했고 무거웠다. 무엇보다 다른 세계 간의 만남이 과연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제기는 인간이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사가 될 수 있고, 이에 대한 결과는 매우 의미심장했다. 다른 세계의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을까? 영화는 매우 어려운 문제를 갖고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별개의 두 세계의 남성이 그저 그런 이유로 함께 영화를 찍는다. 암흑의 세상과 화려한 연예계의 두 남자,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모였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영화라는 환상 속이든, 공포를 무기로 일하는 어두운 사회 속에서 둘 다 주먹을 통해 액션을 업으로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곳에 대한 은근한 환상이 있었고 동시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자격지심이 존재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영역에 있고 싶어 하는 이상한 욕망, 그래서 그들은 이상한 인연으로 서로 영화를 찍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의 세계관 속에서 충돌한다.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 찍기. 마치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갖고 있는 이 영화는 두 세계의 남자가 현실 속에서나, 환상의 영화 속에서나 역시 경쟁하고 결투한다. 현실에서도 부딪히고 영화 속에서도 싸우는 이 황당한 구성을 갖고 있지만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영화에 출연하면서도 그들은 각자의 현실 생활을 하고 있으며, 고달파하고 힘들어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영화 속이나 현실이란 영화의 밖이나 두 곳 다 불편해 보였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의 영역은 지구 위에선 다 같은가 보다.
그런데 시작이 달랐고 세계가 달랐던 그들이 닮아간다. 그리고 상대 세계에 대한 묘한 환상, 혹은 기대감을 갖고 있다. 부적절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Fantasy 세상, 그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동경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이 영화에선 가능했고 그것이 바로 영화의 매력을 이끈 힘이었다. 그로 인해, 각자 다른 세계로부터 왔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상대를 동경하면 비슷해져 간다. 영화 속에 보이는 곳은 암흑의 세계, 아니 깡패의 세계이다. 지금까지 그 곳을 배경으로 찍었지만 그들은 분명 다른 곳에서 왔지만 현실과 영화의 이분법은 어느 순간 무너지고 폭력이란 동질감을 통해 그들은 서로 닮아간다.
인생을 직접 체험하면서 배역을 담당한 배우들은 극히 드물다. 그러기에 극장 상영을 위해 만든 액션영화는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주 배경으로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암흑의 세계의 중간보스가 영화라는 공간에 대한 묘한 기대와 여운을 갖고 있기에 과감히 자신의 직분을 어기면서까지 그곳에서의 인간으로 살고 싶어 한다. 변하고 싶은 욕망은 다른 세계 출신의 인물들 역시 공유하고 있었으며, 서로를 닮고 싶은 욕망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의 행동변화를 일으키고 그것이 결국 그들을 힘들게 한다. 두 세계의 이질감 극복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고, 그런 차이만을 확인하면서 방황하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세계에서조차 방황하고 만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서도 실패하고 만다.
‘영화는 영화다’에서 보인 다른 세상에 대한 Fantasy가 여지없이 깨진다. 익숙하지 않았기에 동경했을지 모를 다른 세상은 언제나 동경만으로 이루어졌기에 언제나 그곳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부적응은 물론 실패를 동반한다. 마치 바다에 대한 공포를 모른 채 뛰어들어간 나비처럼, 여행을 동경하면서도 여행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초보 여행가가 겪는 고통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고통이 심해지면서 겪는 패배감을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이 영화엔 그런 고민과 불안, 그리고 파괴가 서정적으로 형상화된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의 비극 장면은 더욱 잔인할 만큼 비극적이었다.
그 자체가 환상적인 세상이긴 하지만 그러나 가능하면 현실이란 것에 기반을 두면서 현실을 상당부분 담으려 노력한다. 사랑하면서 깨지고, 그러면서 갈등하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성의 비극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비현실적인 영화 속에 살면서 도리어 그것이 현실인양 거만한 액션배우의 모습은 깡패의 눈엔 세상의 어느 철부지와 다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잠깐 담갔던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은 거친 세계에 대한 그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 잠시나마 이상향 속에서 그의 비극적인 인생의 뜨거움을 식히고자 했고, 어느 순간 거친 면보다 따뜻함을 지닌 인간으로 변하게 됐다. 그러나 그 점이 그에겐 자신이 살고 있는 거친 사회엔 부적절할 뿐이고, 또한 그를 위기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세계에서의 반대파에게 당하고 만다.
영화를 다 끝낸 후, 그의 상대역이었던 깡패의 마지막 행동을 보면서 그는 현실과 영화의 구분을 어쩌면 처음 하게 됐을 것이다. 그 거친 모습 속에서 어쩌면 그는 영화의 비현실성을 적나라하게 느낄 만큼 공포를 느꼈을 것이고, 그가 격하게 두들겨 맞으면서 느꼈던 깡패의 무서움을 또 한 번 느꼈을 것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세계를 그냥 베낀 영화는 과연 현실과 너무 차이가 났고 날것에 대한 공포를 처음 느꼈을 것이다. 정말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
두 세계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은 결코 화합할 수 없나 보다. 어쩌면 거짓된 매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영화, 그 자체의 모순이 가장 큰 문제인지 모르겠다. 영화는 언제나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관객으로 초청해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충족시키지만, 그 기대감 속에 감추어진 현실이란 이야기, 그리고 영화의 반대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란 냉혹성을 자주 잊게 만드는 야멸찬 속성을 지녔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곳에서 영화처럼 행동할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선 경고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환상에 젖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 없다. 여기에 각자 다른 세계에 사는 인간들의 방식은 서로 너무 달라서 영화의 허구성을 폭로함은 물론 자기 세계의 살아가는 방식을 다른 세계에 함부로 적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적용일 뿐일지 모른다. 그런 위험성에 상시로 노출되어 버린 현대사회는 그래서 너무 위험하고 무섭다. 영화의 마지막의 공포스런 이분법적 구성은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나 보다. 정말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