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3주

  줄타기는 오락이다. 그래서 즐거운 공연이다. 서커스 공연장에서 흔한 구경거리인 줄타기는 서커스엔 단골메뉴이고, 화려한 볼거리 중, 항상 어느 공연의 중앙 위에 위치하며 즐거움과 환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여흥을 일깨우는 최고의 선물이 된다. Performance의 꽃으로 불린다고 해도 거의 반론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줄타기, 위험하다. 그리고 언제나 위험과 모험 사이에 있다. 이 즐거운 볼거리 뒤엔 죽음이란 위험한 공포가 존재한다. 줄타기의 매력은 어쩌면 위험하기에 짜릿한 이중적인 특성에 있는 것만 같다. 줄타기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목숨이란 가장 자극적인 소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인간의 기괴한 취미라고 할까? 누군가의 위험을 보고 짜릿한 느낌을 얻는 인간의 본성 중 무척 나쁜 것을 충족시키는 줄타기는 어쩌면 서커스가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반문도 있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혼자만의 외로운 공중의 장소에서의 줄타기는 확실히 외롭고 슬프다. 어느 순간 제거된 안전판 위에서 마치 내가 위험한 곳에서 죽지 않는 법을 보여주듯 아슬아슬한 장면들을 연출하며, 죽음과 삶, 두 공간의 어디쯤에서 위험한 Performance를 한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라는 경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줄타기는 영화에서 드러난 폭력성과 불행을 그래서 지닌다. 관객의 위선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이 모험을 간직한 공연은 어쩌면 인간이 만든 가장 비극적인 공연일지 모른다. 마치 영화처럼 말이다. 영화에서의 관객은 영화에서 흔하디 흔한 비극적인 장면을 즐기면서 자신의 안전을 확인하는 묘한 이중성에 사로잡힌다. 이것이야말로 관객의 주목을 끄는 줄타기 같은 영화의 매력일 것이다.
  이런 줄타기가 영화에 등장한다. 그런데 줄타기가 담긴 영화들은 어김없이 인간의 즐거움과 비극을 동시에 보여준다. 즐거움 속에 있는 사랑과 애정, 그리고 멋진 공연이 있지만, 그 뒷면에 존재하는 비극은 누군가의 죽음이나 아님 사랑하는 둘의 공멸, 그리고 인간관계의 허약함을 과감 없이 보여준다. 이 줄타기가 담긴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 언저리엔 즐거운 여흥을 끝내고 나서 느끼는 허전함도 있을 것이고, 헤어짐의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어떻든 줄타기가 담긴 영화들은 어딘지 모를 불운을 담고 있다. 그런 것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바로 [엘비라 마디간], [왕의 남자], 그리고 [Man on Wire]가 그것들이다.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1967) 

 

  자타가 공인하는 비극의 멜로영화 고전이다. 1943년 만들어진 이후, 다시 한 번 만들어진 영화가 1967년의 [엘비라 마디간]이란 작품이다. 그런데 실화다. 그래서 그 비극성은 더욱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의 사랑은 부정적인 것에서 시작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위험한 줄타기의 모습처럼 불륜, 계급이 서로 다른 남녀의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방황하는 두 남녀와 그들의 도피와 생활고 등 인간이 알고 있는 멜로영화의 모든 소재와 테마들 속에 나올 수 있는, 거의 모든 비극성이 다 드러난다. 그 속에 보이는 낭만적인 사랑은 앞서의 비극과 대비되면서 영화의 매력을 한껏 돋았다. 스웨덴이란 이국적인 장소는 한국 팬들에겐 더 없는 환상을 자아냈다. 
 

  시작부터 파란이었다. 1889년 스웨덴의 한 서커스에서 줄타기를 하는 어린 소녀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피아데게드 마르크 분)’과 가정과 아내가 있던 육군중위 ‘식스텐 스파레’ 백작(Lieutenant Sparre 토미 베르그덴 분)과의 사랑이 그랬다. 신분과 유부남이란 문젯거리를 안고 시작한, 줄타기 소녀와 백작의 사랑은 분명 시작부터 불운이었고 그래서 마지막도 불운이었다. 그런 불운을 피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도피였다. 하지만 파란과 불륜을 갖고 시작한 그들의 도피는 결국 그들을 행복으로 초대해줄 수 없었다. 줄타는 소녀의 위험한 공연이 그들의 인생인 것처럼 그들은 언제나 파란과 불운, 거기에 생활고까지 경험하게 된다. 그들의 마지막은 환상적인 낭만과 비극적인 자살이란 역설적인 것이 함께 하는 자리였다. 가난한 상황에 몰린 식스텐의 마지막 선택인 자살을 위한 그 마지막 장면에서의 대비되는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영화에서 가장 잊기 힘든 명장면이다. 나비를 좇아 따라가는 엘비라와 그 모습에 웃음을 짓는 식스텐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갑자기 들리는 인적 드문 곳에서의 총소리는 분명 이 작품을 멜로영화의 고전으로 왜 평가 받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는 우아한 비극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는데 누구나 여배우라면 원하는 67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갖게 됐고, 67년 미국 뉴욕비평가상, 골든글러브상 수상까지 독식하게 된다. 
 

왕의 남자 

 

   예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켰고, 게이 영화라 할 수 있는 동성애 코드를 갖고 큰 흥행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연예계에 ‘이준기’라는 걸출한 신성을 배출시켜준 의미 있는 영화다. 남자와 남자 간의 애정은 현재에도 무척 반갑지 않은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기묘한 매력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1000만 관객은 물론 한국 영화 관객수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 치웠던 영화다. 동시에 이런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며, 이 작품은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걸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영화 속 광대들의 즐거운 여흥은 지금 봐도 즐겁다. 그들이 보여준 해악과 풍자는 시대성을 넘었으며, 그들이 보여준 재미 역시 지금 봐도 흥겹다. 특히 주인공들의 주무대는 바로 줄타기다. 줄 위에서 보여준 그들의 기막힌 공연과 즐거운 해학과 풍자는 오늘의 관객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줄 만큼 매력적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치가 문제다. 광대의 즐거운 줄타기와 풍악, 그리고 해학도 정치와 연결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의 소용돌이를 위해 악용되는 수단이 될 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은 정치세력에 이용당하며, 그런 위기 속에서 남자와 남자의 아름다운 사랑도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만다. 정치의 비인격성과 함께 국정을 파탄시킨 연산군 옆에 있는 이유로 인해 그들은 원하지 않은 애정행각을 벌이게 되고 마침내 그들은 비참한 몰골 속에 궁중에서 마지막 줄타기를 하며, 비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간관계도 정치라는 환경 앞에 무참히 부서지는 장면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이 작품에 대해 관객은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뛰어난 작품성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줌으로써 한국 영화의 신기원일 이룬 이 작품에게 영화역사의 한 자리를 마련해줬다. 이 작품의 수상경력은 너무 화려하다. 27회 청룡영화상(2006) 수상음악상(이병우), 후보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이준익), 남우주연상(감우성), 남우조연상(유해진), 여우조연상(강성연), 신인남우상(이준기), 조명상(한기업), 기술상(김상범), 미술상(강승용), 43회 대종상영화제(2006) 수상남자인기상(이준기), 시나리오상(최석환), 촬영상(지길웅), 여자인기상(강성연), 해외인기상(이준기),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이준익), 남우주연상(감우성), 남우조연상(유해진), 신인남우상(이준기), 후보기획상, 조명상(한기업), 편집상, 음향기술상, 음악상(이병우), 미술상(강승용), 의상상(심현섭), 여우조연상(강성연), 42회 백상예술대상(2006) 수상영화 대상(이준익), 영화 남자신인연기상(이준기), 후보영화 작품상, 영화 감독상(이준익), 영화 남자최우수연기상(정진영), 영화 시나리오상(최석환) 등 화려하기 그지없다. 


Man on Wire 

 

  거짓말일 것 같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사실이다. 엘비라 마디간처럼 실화를 근거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는 극영화가 아니다. 줄타기의 위험과 흥분의 매력을, 지금은 없어진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가장 극적인 장소에서 보여준 Documentary Movie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기록물이 없었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믿기 힘들 만큼 대단한 모험을 담은 영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World Trade Center (WTC)의 두 건물 사이에 줄을 설치하고 그 위에서 줄타기 공연을 한 프랑스 줄타기 Performance 주자인 Petit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줄타기를 담은 영화다. 그는 1974년 이 공연을 하기 전, 이미 프랑스의 Notre Dame 성당과 영국의 Harbor Bridge에서 역시 세계적인 줄타기 공연을 했다. 높이에 차이가 있을 뿐, 위험하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면 그 긴장과 위험, 그리고 자연적인 바람의 강한 강도 등은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위험한 공연을 한 사내의 다소 바보 같지만, 그래도 그 모험정신을 담은 영상 하나하나에 관객은 큰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WTC에서의 위험한 줄타기를 성공한 이후, 그에게 찾아온 외로운 상황은 영화가 단순히 누군가의 성공담과 그 미담만을 전달해주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성공 이후에 찾아온 인간관계의 소멸과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온 것에 대한 댓가가 어떤 것인지를 슬픈 눈으로 관객들은 영화를 관람하게 될 것이다.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높은 곳에서의 위험한 줄타기 공연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또한 작품의 수준에 대한 높은 평가를 해주었다. 1회 DMZ 다큐멘터리영화제(2009) 초청글로벌 비전(제임스 마쉬), 81회 아카데미시상식(2009) 수상장편다큐멘터리상, 62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2009) 수상작품상(영국) 후보칼 포먼 상(사이먼 친), 74회 뉴욕비평가협회상(2008) 수상최우수다큐멘터리상(제임스 마쉬), 34회 LA비평가협회상(2008) 수상다큐멘터리상(제임스 마쉬), 21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2008) 수상다큐멘터리상(제임스 마쉬), 21회 유럽영화상(2008) 후보유러피언필름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제임스 마쉬), 43회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2008) 수상다큐멘터리상 (30분 이상)(제임스 마쉬), 62회 에든버러국제영화제(2008) 수상관객상(제임스 마쉬), 24회 선댄스영화제(2008) 수상심사위원대상-월드시네마다큐멘터리(제임스 마쉬), 관객상-월드시네마다큐멘터리(제임스 마쉬) 등 모든 부분에서 탁월한 결과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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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2-19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비라 마디간. 너무 어릴 때 봐서 그 무드를 이해 못해 제게는 굉장히 지루한 영화로 남아 있습니다.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텐데. 극장에선 힘들겠죠?

novio 2010-02-19 17:33   좋아요 0 | URL
혹시 케이블 TV 시청하신다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멋모르고 봤는데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한동안 멍하니 생각했습니다. 웃음과 총소리의 역설적인 조화, 이런 것이 영화의 묘미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