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3주

이나영, 영화계에선 나름대로의 입지를 확보한 여자배우다. 그녀에게 100만의 관객이 넘는 영화는 분명 없다. 그러나 인기에 연연할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이미지,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분위기보단 어딘지 모를 내 누나 혹은 여동생 같은 그녀의 외모는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여배우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매력적인 외모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그녀는 멋진 옷을 입고 화려하게 영화에 등장하지 않을 듯한 그런 여배우로 보인다. 그녀는 여자이기보다 어딘지 모를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배우다. 
영화에서의 이나영의 사랑법은 좀 유별나고 무척 코믹하다. 잘 안풀리는 것이 정상일 정도로 영화에서의 그녀의 사랑은 좀 괴이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싫다는데 그래도 사랑한다는 일방적인 관계는 좀 식상하다 싶을 정도로 그녀의 출연작들에 많이 보인다. 물론, [비몽]이란 2008년도 작품에선 한 쪽이 잠을 자야 깨어나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연인관계를 맺기도 한다. 다른 여배우라면 어울리지 않을 듯한 괴이한 사랑의 주인공을 담당하기도 한 이나영은 역시나 코믹물에서도 짝사랑을 주로 했다.  
여기에서 소개되는 이나영의 작품들 중 개인적인 판단으로 그녀의 아주 특별한 영화들만 선별했다. 즉 코믹하면서도 중성적인 모습을 담은 영화들이다. 어느덧 10년이 넘게 활동한 그녀는 다른 여배우들보다 매우 특이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녀가 출연했을 때, 그녀는 확실히 다른 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개성들 중 유별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코믹과 중성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이나영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이다. 이런 식의 표현은 그녀의 연기력을 평가절하할 수도 있고, 또한 자칫 그녀의 캐릭터의 다양성을 도외시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내가 본 영화들 중 그녀의 코믹과 중성미는 다른 여배우들이 지금까지 잘 보여주지 못한 모습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나영이란 배우는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특색은 유사한 이미지로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색을 계속 견지한다는 것으로 역시나 봐야 한다. 그런 점을 입증하기 위해 선별한, 다음의 세 편의 영화는 그녀의 확고부동하면서도 강렬한 가치를 보여줄 것이다. 바로 [영어완전정복], [아는 여자(2004)], 그리고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2009)]가 그것이다.
 

영어완전정복(2003) 

 

영어를 배워야 하는 오늘날 한국의 불행한 자화상 속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여기에서 이나영은, ‘후아유’에서 보여줬던 세련되면서도, Cool하고 어딘지 모를 불운의 캐릭터라는 매력적인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며, 소위 망가진 모습의 캐릭터를 선보였다. 배우기 힘든 영어를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든 배워야 하는 줄거리 설정은 한국의 우울한 현실을 보는 듯 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지금까지 그 현대성이 느껴지는데, 영어에 미친 한국사회를 조롱한 것만 같다.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 동사무소 9급 공무원이 영어 배우러 학원가는 모습은 아무래도 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리라. 다만 영어가 소통의 단절의 기제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영어와 사랑이야기가 좀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 마련된 장치 정도로만 쓰인 것 같다. 영어 배우는 학원이란 곳에서 볼품없는 인물들이 사랑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이나영은 어수룩하면서, 여성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9급 공무원 ‘나영주’로 출연, 그녀의 막무가내이면서 괴상한 사랑방정식을 이 영화에서 선보인다. 그녀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장혁’은 백화점에서 구두를 파는 판매원, ‘박문수’로 나오면서, 생활고로 해외입양해야만 했던 자신의 친동생과의 소통을 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역을 맡는다. 이 두 주인공들은 사회의 마이너러티를 대변하며, 그런 평범 이하의 사람들 간의 자존심과 오해, 그리고 소통의 단절 등의 힘겨운 관계를 극복하며 사랑으로의 행복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아는 여자 (2004) 

  

장진 식의 전형적인 코믹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주는 사랑영화다. 진지한 것과는 좀 거리가 멀지만 이 영화는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사랑영화하면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선 없다. 소위 꽃미남도, 그리고 남자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 그런 여자가 아닌, 어딘지 어수룩한 남녀 둘의 어이없는 사랑이야기이며, 주목 받기 힘든 자들의 색다른 희망을 갖게 만든 영화다. 주인공인 둘은 사랑의 실패자들이거나 실패하기 쉬운 유형의 인물들이다. 거의 매번 사랑에 차이고 마는 사랑에 거의 실패자인 2군 프로야구선수 동치성(정재영)과, 그와의 어릴 때의 기억으로 그를 짝사랑하고 마는 좀 비상식적인 옆집 여자 한이연(이나영)과의 마이너러티들간의 이 사랑이야기를 장진 감독은 무겁지 않고 즐겁게 풀어나간다. 타성에 젖은 한국영화계에 이 영화는 전형적으로 수려한 자들간의 동화 같은 사랑이야기가 아닌 평범 이하의, 좀 망가진 인물들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결합시킴으로써 사랑은 결국 상대에 대한 오래된 믿음과 상대를 알아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재미있고 기막히게 풀어간다. 이 영화에서 이나영은 여성성을 강조하기 보다 어딘지 모를 맹한 구석은 물론 중성적인 이미지로 출연함으로써 한국의 사랑이야기에서 색다른 여성이미지를 창조해낸다. 이 사랑영화에서 한국영화에선 무척 의미 있는, 새롭고 기묘한 캐릭터를 선보인 덕분에, 결국 ‘25회 청룡영화상(2004)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이나영은 얻게 된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2010) 

 

한국에서 과연 그녀만큼 트렌스젠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이나영이란 여배우의 특이한 색깔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이 영화 역시 그녀의 코믹한 이미지와 함께 한 중성적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사실 트렌스젠더 자체가 이중적이고 중성적이기에 그녀의 이 작품은 그녀의 코믹한 중성적인 매력을 가장 잘 극대화시킨 작품일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 영화는 기존의 사랑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과 해법으로 무거운 사회적 담론을 담고 있다. 이 점에서 이나영에게 이 영화는 그녀의 영화 중 가장 크게 사회적인 이슈를 담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남자이면서도 그 남성성을 포기했던 현재의 어느 여자가 과거의 남자였던 때의 사랑으로 세상에 나온 자신의 아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정은 정말 기막히게 재치가 있었다. 한 이름에 두 가지 성을 오고 간 트렌스젠더 ‘손지현’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도 살기 힘든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줄 의미 있는 캐릭터이다. 그 혹은 그녀는 사회나 가정에선 숨기고 싶은 마이너러티이며, 알고 싶지 않은 그런 사회인일 뿐이다. 문제는 성을 바꿨기에 그 혹은 그녀는 사랑을 시작하기에 언제나 주저하게 되며, 자신의 아들에게조차, 남성에서 여자로 바꿨기에 아빠라는 지위를 포기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자신의 성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바꿀 자유는 분명 얻었지만 그에 따른 역할 변화를 겪어야 했으며, 동시에 자신이 가장 사랑해야 하는 자식에게조차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기 힘든 상황으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자유를 얻은 대가가 그리 작지 않음을 확인하고 사회의 상식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런 어렵고 피곤한 캐릭터를 이나영은 가장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아마도 그녀의 지금까지 최고를 선택하라면 이 영화가 그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판단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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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1-2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영 씨. 독특한 배우인 것은 확실한데, 너무 소비되는 것 같아 아쉬운 배우예요. 가장 크게 소비된 영화는 <비몽>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괴기스런 모습만 쏙쏙 뽑아서 영화를 찍었는지.. ㅠㅠ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에서도 전혀 다른 쪽으로 담론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번에도 소비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novio 2010-02-19 17:35   좋아요 0 | URL
전에 이나영 배우에게 영화 캐스팅에 대한 질문을 기자가 했는데 이나영 님 하는 말, 지금은 남자가 대세라서 여배우들에겐 그리 많은 기회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 글 쓰고 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경제난이기도 하겠지만 배우에게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재능을 활활 태우기가 점점 어렵다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래도 이나영 홧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