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의 위대한 강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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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자이자 소설가로서 움베르토 에코의 명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에코의 소설은 첫 장편 소설『장미의 이름』에서부터 『프라하의 묘지』, 나아가 에코의 유작인 『제0호』까지 국내에 전부 번역되었다. 2009년에는 에코의 글을 한데 모은 총 25권짜리 전집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이 출판되기도 했다. 2016년 에코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간간히 에코의 책이 출간된다. 2년 전에도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2021)이 출간된 바 있다.


2022년 10월 국내에 소개된 『에코의 위대한 강연』은 201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Sulle Spalle Dei Giganti의 번역서이다. 편집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밀라노에서 열리는 문화축제 라 밀라네지아나(La Milanesiana)를 위해 에코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렉티오 마지스트랄리스(대가의 강연) 형식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총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에코가 준비한 12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마지막 글 '성스러움'은 2016년 준비 원고다) 


원제 Sulle Spalle Dei Giganti를 번역하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이다. 이 책을 여는 0번째 글도 책의 원제에 걸맞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이다. 이어서 미, 추, 절대와 상대, 불, 보이지 않는 것, 역설과 아포리즘, 거짓, 불완전성, 비밀, 음모, 성스러움까지, 11가지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00장 「거인의 어깨 위에서」를 포함해 총 12가지 테마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로 가득하다. 


이 책에 수록된 논의 대부분은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시의 적절한 테마들이 많다. 그 사례들을 들어보자.


에코가 세상을 떠난 후 대략 2010년대 후반부터 '가짜 뉴스'라는 말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진실 대신 '탈진실', '대안진실'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브라질에서는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식으로 음모론을 제기한다. '딥스테이트'라는 비밀 집단이 배후에서 이 세상을 조종한다고 진지하게 믿는 음모론자들은 세상을 구원할 절대적이며 성스러운 존재를 갈구한다. 에코가 콕 집어 말하듯이 4원소 중에서 오로지 불만이 이 시대를 갈수록 불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국제 뉴스에 나타나는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에코의 논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가고 있었는지, 에코의 통찰력이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번역 명에 걸맞게 '에코의 위대한 강연'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에코의 작품들 『장미의 이름』부터 에코의 유작인 『제0호』까지, 뭐든 하나 이상을 접해보았다면 이 책이 건네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특히 거짓, 비밀, 음모 같은 장은 에코가 소설(예컨대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로 구체화한 관심사들이 무엇이었는가 알려준다. 에코의 소설을 얼마나 접하였는가에 따라, 이 책을 에코의 소설들과 연결하기 쉬울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국내의 '에코 마니아들'을 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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