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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 다닐때 비사대 교직이수를 해서 4학년때 4월에는 교생실습을 나갔다. 교생 실습을 나갔던 곳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라서 정말 편하게 했던 것 같다. 1~2주에는 수업 참관을 했고, 3주째에는 수업을 진행했고 했고, 4주때에는 연구수업을 했다. 원래 교사가 될 생각도 없었고 뜻한 바도 없었기에 그냥저냥 부담없이 했었던 것 같다
4주가 끝난 시점에서 맨 마지막에 설문을 하는데 그것은 교사를 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내 자신에게 계속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나를 학교 선배라고 좋다고 쫓아다니는데 그만큼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수업은 재미있었는지 몰라도 학교의 행정업무나 청소지도, 학부모상담,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주기 등에 대해서는 꽝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안정이라는 가치 때문에 임용고시를 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엔 내 양심의 가책이 컸다. 결국 졸업하고 지금은 회사에서 5년동안 일하고 그냥저냥 만족해 하며 다니고 있다.
그런 나에게 [달려라 탁샘]은 특별한 책이었다. 예전에 교생실습을 하면서 고등학교 아이들과 생활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등학교 입학한 1학년들도 대학생인 내 입장에서 보면 중학교 정도밖에 안되어 보였다. 나한테 그럴정도니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탁동철 선생님께는 얼마나 애들이 귀엽고 예뻐보일까 싶다. 남들이 가지 않는다는 분교나 아이들이 별로 없는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로서 살아가는 탁동철 선생님은 그러기에 귀감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아이들과 같이 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탁선생님의 1998년부터 2010년 까지 세 곳의 초등학교(오색초등학교, 공수전분교, 상평초등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일기이다.
교직 생활을 하신 곳이 분교나 작은 초등학교라 그런지 배우는 것, 활동하는 것도 많이 달라보였다. 메뚜기도 잡아보고, 모도 심어보고, 닭이나 토끼도 기르고, 가정방문도 하고, 같이 떡볶이도 만들어 먹는다. 나같이 도시에서 초등학교를 나오면 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다. 주어진 교과에만 충실하게 가르치는 것보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아이들과 자연을 더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의 감성이 조금이라도 촉촉해지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를 할 것 같다. 그것이 탁동철 선생님의 교육관이 아닐까 싶다.
이런 아이들이 있어서 학교는 학교다워지는 거야. 서로서로 배워주는 학교. 이미 정해진 틀에 맞추어 숙이고 깎아내는 학교가 아니라 지금이 처음 시작인 듯 만들어 가는 학교. 아주 작은 일조차 공부거리로 삼아 고민하고 토론하고 새로운 틀을 만들고 또 바꾸어 가는 학교.(p.223)
탁동철 선생님은 일기에서도 보면 토론이나 글짓기, 연극등을 많이 시킨 것 같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토론이나 글짓기 연극 등을 열심히 하면 나중에 굳이 학원에서 몇백만원짜리 논술을 배우러 다닐일도 없을것 같았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남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탁동철 선생님의 모습도, 그 이상으로 귀감이 되었다.
선생님의 일기속에 중간중간 들어있는 아이들의 글짓기를 통해서 아이들의 해맑은 생각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같이 사회생활에 찌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아이들의 일기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의 일기속에서는 내가 보지못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고, 영악함이라던가 남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자연과 더 가까이 지내기에 더 주도적으로 지내고,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쓰는데 불편함이 없었는데, 그것이 도시 아이들보다 나아 보였다.
도시에서 배우는 공부란 박제화된 지식이다. 쌀이 어떻게 재배되는지, 채소가 어떻게 자라는지, 토끼가 어떻게 자라나는지 보기 힘들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학원 다니기에 바빠서, 하는 학습지가 많기에 꾸역꾸역 학교를 다니고, 그렇게 졸업을 하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점점 촘촘한 체에 걸러져서 일류대를 가는 것이 하나의 코스여서, 그렇게 사교육과 부모의 자식에 대한 열정이 중요시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토론을 하고, 아이들과 연극도 하고, 동물 식물도 길러보고, 체험학습도 하는 탁동철 선생님이 부럽기만 하다. 학교 행정 업무도 바쁠텐데 이렇게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고 아이들을 하나하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타고난 선생님 체질이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달려가서 우는 까닭을 묻고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아이 버릇을 망치는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해두자. 아이가 울고 있을때 모른 척 무시해야 여린마음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험한세상 적응할 수 있다고 치자. 울때마다 사연을 들어주면 아이가 남한테 의지하는 버릇이 들어 결국 자기혼자 살아갈 길을 못찾고 헤매게 될 게 분명하다고 해두자. 그렇더라도 나는 우는 아이 달랠 것이다. 우는 버릇 못고쳐서 20년 뒤에도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어도 좋다. 눈물 닦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수는 있겠지. 적어도 아프고 힘든사람 더욱 쪼아대는 일은 안하고 살겠지.
아이들은 선생님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러니 선생님은 유리창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기에 선생님은 자신의 창을 깨끗이 닦아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사고의 틀을 보여주어야 한다. 항상 깨끗이 닦아서 아이들에게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겐 탁동철 선생님이 부럽다. 아마 나에게도 이런 선생님이 한번이라도 있었더라면, 내 인생에 기억이 남는 선생님이셨을 것 같다.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며 좋은 추억을 쌓고 계신 탁동철 선생님, 오늘도 힘차게 달리시길 바란다. 달려라, 탁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