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평점 :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자신이 삶에 대한 여유라는 것이 생기고,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것은 조그만 글을 쓰더라도 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자신을 드러낼수록 나의 이야기에 진정성이 생기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더 생긴다는 것을 요즘 들어 깨닫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박완서 작가님은 글을 통해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독자들에게 사랑이라는 가치를 전해주시는데 뛰어나신 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을 떠나신 지 1년 정도 되었지만, 미발표 원고를 모아 만든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책을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게 하셨다.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돌아가신 작가님께서 이 원고들을 모아서 독자들을 감동시키려고 깜짝 선물을 준비하신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 예쁜 것]은 작가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전원생활이야기, 강연과 인터뷰 글, 추모글 등 글의 장르가 다양했다.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작가님이 개풍에서 태어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고, 할머니께서 이야기꾼이셨다는 것, 그리고 스무 살 때 겪었던 6.25 전쟁의 아프고 지울 수 없었던 기억이 삭히고 삭혀져 나중에 소설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작가님은 40대에 [나목]이란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했는데, 그 시기에 가정주부로 데뷔한다는 것은 주목 받을 일이었다고 한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에서는 삶에 대한 따뜻한 태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리고 작가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언뜻언뜻 보였다. 특히 책 제목이기도 한 ‘세상에 예쁜 것’이라는 수필에서는 죽어가는 환자와 새로운 생명인 아기의 발바닥을 대비하면서 생명에 대한 태도와 행복, 사랑등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또한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에서는 작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고, 데뷔작 [나목]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에 잠시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을 보니 잠든 아이의 발바닥이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것” 탄성이 나올만큼, 아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만큼 예뻤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병자도 지금 그런 위로를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기의 생명력은 임종의 자리에도 희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찬탄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예쁜 것 p.84)
반복해 생각하는 것은 주로 어린 시절이고 그립고 생각나는 사람들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세상보다 저 세상에 많구나, 그런 생각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들 역시 나를 좋아하고 사랑해 주었다고 생각하면 인생은 아름답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이룩한 업적이나 소유는 저 세상에 가져갈 수 없지만, 사랑의 기억만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아진다. (의연한 나목을 볼 때마다 p. 238)
글을 보면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통해 얼마나 그분께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시는지,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지, 넉넉한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따뜻하다, 푸근하다 라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운데, 작가님의 글은 향기로운 차를 맛있는 떡과 같이 먹는 그런 느낌이 들게 했다. 아마도 하늘에서 ‘세상에 예쁜것’ 책이 나온 것을 통해서 미소 짓고 계시지 않을까? 책은 후손에게 남길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싶다. 작가님의 책을 통해 나는 먼 발치에서나마 작가님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