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아들러를 만났을 때 - 금강경으로 배우는 마음 청소법
우뤄취안 지음, 하은지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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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큰 기대는 없었다. 제목이 다소 가벼운 조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쪽 넘기지 않아 금세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은 두 사상의 만남이라기보다 현대의 불안한 마음을 고전의 언어로 다독이는 묘한 조율의 시도다. 읽는 내내 과장된 깨달음 대신,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상의 심리를 세심하게 비춰준다. 마치 미지근한 보리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기분처럼 처음엔 밋밋하지만 끝맛이 은근히 남는다.


책 속의 문장들은 금강경의 해설에 머물지 않는다. 불교의 사유를 빌려 인간이 어떻게 자기 마음의 무게를 조절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기대를 버리는 것은 곧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저자는 누군가를 돕거나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미묘한 욕망의 한 형태라고 짚는다. 도와준 후에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순간, 이미 마음이 기대라는 사슬에 묶여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비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마음이 얽히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책의 리듬은 느리다. 문장마다 여백이 넓고 독자가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만든다.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결이 드러난다. 가짜를 진짜라 생각하면 진짜도 가짜가 된다.는 구절은 단순히 인식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관계나 자기 이미지, 욕망의 작동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다. 내가 붙잡는 진짜는 결국 나를 속박하는 상(相)일 수 있다는 깨달음이 조용히 파고든다.


읽다 보면 이 책이 설교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옆자리에 앉아 작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삶은 진리처럼 보이는 상황 뒤에서 변화를 거듭한다. 이 문장은 내게 어떤 체념도, 어떤 낙관도 아닌 유연한 수용을 가르쳤다. 사람 사이의 오해나 불화조차, 일시적인 파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문득 내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연필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 연필은 손끝이 닳아 반쯤 짧아져 있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심이 보였다. 이 책이 내게 준 인상은 바로 그 연필 같았다. 거창하진 않지만 일상을 조금씩 닳게 만들며 나를 단단하게 한다. 쓰고 닳아 없어지지만, 그만큼 마음속에는 선명한 흔적이 남는다.


요즘처럼 관계와 감정이 과잉인 시대에, 이 책의 미덕은 조용함에 있다. 크고 화려한 말이 아니라 가볍게 스며드는 사유. 누군가에게는 너무 담백해서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겐 오히려 그 담백함이 위로였다.


결국 이 책은 생활의 자세를 다듬는 명상서에 가깝다. 책장을 덮고 나면, 특별한 결심은 남지 않는다. 다만, 어떤 말을 덜 하게 되고, 사람을 조금 다르게 대하게 된다. 그리고 보리차처럼 밋밋한 하루 속에서도, 마음 한가운데 작은 온기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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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글쓰기 - ‘좋아하는 마음’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문장 수업
미야케 카호 지음, 신찬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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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약간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쓰는 일이라니.

그건 너무 사적인 영역 같고 동시에 너무 사소해 보였다.

하지만 표지의 말처럼 좋아요만 누르는 사람이 아닌, 왜 좋은지 설명할 줄 아는 사람 이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책이 내 마음을 건드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책의 초반부는 감상을 언어화하기 전에 거쳐야 할 과정에 대해 말한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얼마나 자주 느낌만 있고, 말은 없는 상태에 머물렀는지를 떠올렸다.

좋아하는 대상을 떠올릴수록 마음은 뜨거워지지만 문장은 늘 빈곤했다.

책은 그 공백을 자기 언어를 구축하는 훈련이라 불렀다.

그 말에, 처음으로 위로를 느꼈다.


중반부에서 저자는 상대의 감상과 내 감상이 다를 때를 다룬다.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고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설명하는 예시가 나온다.

그 평범한 비유가 이상하게 마음을 울렸다.

내가 쓴 글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 내 열정을 부담스러워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이 조금씩 사라졌다.

다름은 표현의 출발점이지 결함이 아니었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책은 글쓰기의 기술보다 태도를 이야기한다.

독자 상정을 통해 문장을 구체화하라는 대목에서,

나는 오래된 편지 한 장을 떠올렸다.

내가 좋아하는 존재에게 보냈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 쓴 편지였음을 깨달았다.

책은 조용히 말한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향해 말하는 일이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마음이 아주 잔잔했다.

이 책은 글쓰기 교본이라기보다 감정의 언어화를 돕는 수행록에 가깝다.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그것을 표현할 문장을 찾아가는 여정.

읽는 내내,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건 결국, 세상과 나 사이의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일이었다.



🌿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감정 변화


1️⃣ 시작 – 쑥스러움과 의심

→ ‘좋아하는 걸 글로 쓴다니, 너무 오글거리지 않을까?’

2️⃣ 중반 – 공감과 안도

→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감정에도 문법이 있구나.’

3️⃣ 후반 – 사유와 통찰

→ ‘표현은 타인에게 닿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과정이구나.’

4️⃣ 마지막 – 고요한 결심

→ ‘이제 나도 좋아한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 나의 한줄평


1️⃣ 좋아하는 마음을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예술가가 된다.

2️⃣ 이 책은 덕질의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해석학이다.

3️⃣ 말하지 못했던 마음에게 언어를 선물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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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이누준 지음, 이은혜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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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요타. 내 아이로 태어나 줘서, 그리고 이렇게 엄마를 만나러 와 줘서.”


이 한 문장에서 이미 눈물이 고였다.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는 그저그런 감성 소설이 아니다. 처음엔 죽은 이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라는 문장만으로 멜로드라마를 떠올리기 쉽지만 읽다 보면 그 슬픔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게 번진다. 작가 이누준은 초자연적인 설정을 빌려 사실은 아주 인간적인 문제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이야기한다.


소설 속의 무인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아니라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 더 가깝다. 현실의 시간은 멈춰 있지만 마음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공간. 그곳에서 인물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 놓아주는 방법을 배우는 듯하다. 재회는 단지 기적이 아니라 이별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의식이다.


하마나호 근처의 작은 역은 마치 시간의 틈새처럼 존재한다. 바람은 늘 같은 방향으로 불고 비는 잦아들 듯 다시 내린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지만 그들의 감정은 과장되지 않는다. 이누준의 문장은 늘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고요한 수면 아래서 흔들린다. “계속 비가 왔잖아.”  이 짧은 한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인물의 마음속 풍경을 다 느낄 수 있다.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오래전에 겪은 순간이 떠올랐다. 입원실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던 친구의 얼굴. 나는 그때 웃으려 했지만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 짧은 작별의 순간이 내 기억 속에서 늘 정지돼 있었는데 이누준의 문장을 따라가며 그 장면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녕이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나를, 작가가 대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조용함이다. 인물들은 울부짖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침묵이 독자의 마음속에서 울린다. 그리움과 후회, 사랑과 용서가 다층적으로 교차하며 독자는 어느 순간 그것이 자기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누준은 슬픔을 감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을 시간의 일부로 돌려보낸다. 그렇게 해서 독자가 얻는 건 눈물의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마음속의 잔잔한 평화다.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는 기다림의 서사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단순히 재회를 바라는 게 아니라 자신 안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다림의 끝에서 비로소 우리는 깨닫는다. 사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형태를 바꿔 남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움은 결국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고요했다.

“태양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문장은 어쩌면 남겨진 우리 모두를 향한 작가의 인사일 것이다. “괜찮아, 네 마음을 내가 보고 있어.”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고, 동시에 그 슬픔 속에서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이누준의 소설은 눈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별을 통해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 사랑의 다른 얼굴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 무인역에서 잠시 머물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위에서 문득 깨닫는다. 기다림이 끝나도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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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판 극복을 위한 마음챙김 수업 - 열심히 살아도 불안한 당신을 위한 행복 워크북
숀 코스텔로 훌리.홀리 예이츠 지음, 성세희 옮김 / 시원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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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비판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배우는 시간



“나는 왜 나에게 이렇게 가혹할까?”

이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면 이 책은 정말 필요한 쉼표가 될 것이다.


책 제목은 조금 심리학 교재처럼 들리지만 막상 읽어보면 전혀 딱딱하지 않다.

‘자기비판 극복을 위한 마음챙김 수업’은 심리 이론보다 실제 연습과 성찰의 경험에 더 초점을 둔 워크북이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나의 내면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책에서 다루는 언어 사용 방식 부분은 인상적이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지배하는 언어의 틀(RFT 이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내가 나를 어떤 말로 대하고 있는가를 직면하게 한다.


이 책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 안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누르지 않고 인식하고 다르게 대화하는 법을 알려준다.


“너는 충분하지 않아.”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됐잖아.”


이 소리를 무시하는 대신,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관찰하도록 이끈다.


책 속의 워크시트에는 개인적 기준, 위험 시스템과 감정, 중대한 사건 되돌아보기 등 다양한 실습 항목이 있다.

하나하나 기록하다 보면, 나 자신을 향한 지나친 기대와 통제의 언어가 서서히 풀려간다.



나는 가족을 위해 매일 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문장을 보고 이렇게 적어본다。


“나는 실수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나는 가족을 위해 정성을 표현하는 방식을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이 단순한 문장 전환이 주는 감정의 차이는 놀랍다.

의무와 완벽주의의 긴장이 풀리고,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확신이 자리 잡는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치밀하다.

각 장의 끝마다‘연습하기 섹션이 있고

직접 손으로 적어보는 과정 속에서 사유가 내면화된다.


위험 시스템과 감정을 돌아보는 페이지에서는

최근의 괴로웠던 사건을 기록하게 한다.

그때 들었던 내면의 목소리를 분석하면서

내가 실제로는 안전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위협 속에 밀어 넣는 습관을 깨닫게 된다.



디자인적으로도 인상적이다.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여백이 넉넉해서

필사하듯 생각을 적어내리기에도 좋다.


읽는 책이라기보다 함께 작업하는 책에 가깝다.

책을 덮고 나면, 마치 짧은 마음챙김 명상 세션을 마친 기분이 든다.


추천하는사람。

늘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

사소한 실수에도 자책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

나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명상, ACT(수용전념치료), 마음챙김 기반의 심리훈련에 관심 있는 사람



‘자기비판 극복을 위한 마음챙김 수업’은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완벽한 사람으로 되려는 노력 대신,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는 연습을 통해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도 유연해진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자기비판을 멈춘다는 건, 나의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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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귀여우니까 - 조금 서툴러도 괜찮아
메리버스스튜디오 지음 / 하움출판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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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자꾸 느려진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 웃는데

집에 돌아오면 이상하게 공기가 무겁다.

괜히 내가 부족한 사람 같고,

조금만 실수해도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하며 자책하던 요즘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나는 꽤 귀여우니까'.

솔직히 처음엔 그냥 귀여운 그림책이겠지 싶었는데

읽다 보니 그 단순한 귀여움 속에 꽤 깊은 위로가 숨어 있었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아.

내 안에서 조용히, 분명히 자라는 순간이 있으니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내 안에서는 뭔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말.

그게 얼마나 다정한 문장인지,

요즘처럼 마음이 무너질 때 읽으면 진짜 가슴이 뜨거워진다.


책 속 고양이들은 느리고 서툴다.

어떤 날은 괜히 예민해서 친구에게 미안해하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못 해서 속상해한다.

그런데 마지막엔 꼭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해봤잖아, 오늘의 나를 기록해.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잘한 날보다, 그냥 버틴 날을 인정해주는 문장.

나를 혼내지 않고 쓰다듬어주는 느낌.


나는 요즘 이 책을 자기 전에 한두 장씩 읽는다.

딱히 줄거리도 없고 짧은 문장과 귀여운 그림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 일 없는 하루라도 괜찮고 조금 흔들렸던 하루라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친구 같아서.


💜 조금 덜 흔들렸다면, 그만큼 자란 거야.

그 한 문장이 오늘의 나를 버티게 했다.

서툴러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다고

이 책은 정말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말해준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그냥 이렇게 기록해두려 한다.

나, 꽤 귀엽고, 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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