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세속적인 철학 -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2000년 전 지혜 아주 세속적인
시라토리 하루히코.지지엔즈 지음, 김지윤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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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문득, 나 혼자만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로 끝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그럴수록 고독의 밀도는 높아지는 역설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왜 이렇게 불안할까? 싶다가도, 사실은 불안이야말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정직한 연료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적 깨달음을 얻는다. 『아주 세속적인 철학』을 읽으며 나는 그 낯설고 모호했던 감정들에 드디어 작은 이름표를 붙일 수 있었다. 이 책은 복잡한 현대인의 내면을 정교하게 해부하는 메스인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투박한 손길과 같다.


책의 초입에서 만난 철학자들은 우리가 삶의 본질이라 여겼던 것들을 조금씩 비틀어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순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마치 우리가 매일 밥을 먹듯, 행복도 매일의 상호작용 속에서 빚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쇼펜하우어는 고독을 미화하지 말라며 그것이 결코 자유가 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이 두 거장의 낯설지만 묘하게 익숙한 말들은 마치 누군가 내 고민을 훔쳐보다가 툭 던지는 농담처럼 들렸다. 관계에서 도피하고 싶지만 홀로 있을 때 더욱 외로운, 우리 삶의 실존적인 딜레마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딜레마를 관통하며 읽는 동안 가장 마음을 크게 흔든 건 사르트르의 구절이었다. “인간에게 자유는 형벌이다.” 그 말이 내 일상에 곧장 꽂혔다. 매일 글을 쓰며 오늘도 제대로 하고 있나, 이 방향이 맞나, 하는 의심을 달고 사는 나에게, 자유란 결국 아무도 대신 져주지 않는 책임을 끊임없이 떠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선택할 권리를 원하지만, 그 선택의 무게 앞에서는 가끔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가끔은 그냥 누가 대신 방향을 정해줬으면 싶지만, 그럼 결국 내 인생은 주체성을 상실한 대리 기사 운전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그 형벌과 같은 자유를 기꺼이 감수하고 내 삶의 핸들을 직접 잡는 용기를 조용히 권유했다.


놀라운 점은 이처럼 깊은 성찰을 다루면서도 책의 무게가 전혀 무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철학서라기보다, 내 옆에서 라면을 끓여주는 동네 형처럼 친근하고 실용적이다. 특히 소쉬르의 언어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가장 강렬한 실천적 울림을 주었다. 몇 달 전 친구와 의견 충돌로 말다툼을 하다가 문득 이 구절이 떠올라 네가 틀렸어 대신 네가 다르게 보는구나라고 바꿔 말했더니 기적처럼 분위기가 풀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말 하나가 관계를 지옥에서 낙원으로 바꾸는 순간이었다. 결국 철학은 고리타분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 시선, 그리고 아주 사소한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삶의 기술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 한쪽에 오래된 선풍기 같은 바람이 불었다. 시원하면서도 약간은 삐걱거리는 소리. 그런데 그 소음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이 책은 나에게 완벽하고 매끄러운 삶은 환상이며 삶이란 원래 이렇게 덜컹거리고 불완전한 궤도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해준 셈이다. 그리고 진지하게 쓰다가 문득 든 결론. 이 책은 보기엔 초라하지만 목마른 순간 가장 손이 먼저 가는, 소스 묻은 종이컵 같은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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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의사의 병원 일기
최은경 지음 / 에스에스엘티(SSLT)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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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J 의사의 병원 일기: 잃어버린 시절을 되찾아준 한 권의 위로


의사 최은경 교수가 쓴 'INFJ 의사의 병원 일기'는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적인 면모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한 인간의 진솔한 고민과 감정을 담아낸 에세이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저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다고 말하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떤 시간은 밀도가 높아 무겁고 어떤 시간은 가벼워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는 그의 말은 내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역시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놓쳤다. 일에 매몰되어 가족과의 시간을 소홀히 했고 좋아하는 취미도 잊은 채 오직 성과만을 쫓아갔다. 이 책은 나에게 그 시절의 잃어버린 감성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책 속에는 의사로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였다. 건강 검진 결과는 이상이 없었지만 환자는 계속해서 아픈 부위를 바꿔가며 고통을 호소했다. 저자는 처음에는 꾀병이라 생각했지만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마음의 문제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환자는 불편함이 계속되면 언제든 다시 오라는 저자의 말에 안심하고 돌아갔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는 내 과거의 한 경험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발표 공포증 때문에 한동안 앓았던 적이 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과 발이 떨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는 진단만 들었다.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공감과 위로였다. 괜찮아, 조금 떨려도 돼. 너의 생각을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해라는 한마디가 절실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로 그런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항문외과 의사로서 겪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 검진 결과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질문들을 속으로만 품고 살아간다. 변이 가늘어지면 정말 암인가요?, 치질은 수술 없이도 좋아질 수 있나요? 같은 질문들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환자들을 보며 저자는 그들의 솔직함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의사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자들의 마음속 깊은 고민까지도 어루만져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수술실은 작은 우주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는 구절은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주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도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 협력하고 공감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책을 덮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서 시작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때론 무언가를 덜어내고 비워내야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잃어버린 시절을 되찾고 다시금 삶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생활적 교훈은 인생도 조금은 허술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론 아프고 힘들어도 괜찮다. 그런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갈 테니까. 이 책은 나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해줬다. 지친 일상 속에서 나 홀로 방황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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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투자자
다니엘 라스무센 지음, 최용석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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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한 투자자 _다니엘 라스무센


투자를 공부한다고 하면 늘 방법이나 비법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라스무센은 한 발 물러서서 묻는다.

👉 “당신은 시장을 예측하려 애쓰느라, 정작 중요한 태도를 잊고 있진 않은가?”


책 속 마코위츠와 샤프 이야기를 읽는데,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돈은 결국 마음을 지배하는 거야.”

그땐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알겠다. 숫자에 불과해 보이는 투자도 사실은 심리와 철학, 그리고 태도의 문제라는 걸.


라스무센은 화려한 한 방을 경계한다. 대신 위기 속에서도 가장 작고, 가장 싸고, 가장 불안해 보이는 곳에서 기회를 찾으라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는데 회사 첫 해에 아무도 관심 없던 작은 프로젝트를 맡았던 순간이 겹쳐졌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했지만 결국 그 경험이 내 커리어를 지탱하는 토대가 되었다.

투자와 삶, 다르지 않다는 걸 절감한다.


책장을 덮으며 오래전 아버지와 걸었던 좁은 골목길이 떠올랐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던 그 말처럼, 이 책은 내게 속삭인다.

겸손은 결국 가장 강한 무기다.


이 서평은 서평가 지스(@jisikinn.book)의 '지식인 독서단'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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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빛으로 - 상실을 통과하는 당신에게
윤현희(Lumi)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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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빛으로


어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 같다. '다시, 빛으로'가 그랬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 안의 낡은 서랍들을 하나씩 여는 느낌. 잊고 지냈던 상실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섰던 용기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책 속에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고통과 상실 너머 빛을 향해 나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문득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 생각이 났다. 녀석을 처음 떠나보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 빈자리가 다시 사랑으로 채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울었는지. 시간이 흘러 무뎌진 줄 알았던 그 아픔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선명하게 느껴졌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삶을 더 잘 사는 기술이다라는 몽테뉴의 구절도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했다. 매일 마시는 커피, 창밖의 햇살, 그리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책은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이 책은 거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상실의 자리를 통과하는 당신에게 전하는 조용하고 깊은 위로를 건넬 뿐이다. 살면서 마주했던 수많은 아픔들이 단순히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유산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은 따뜻하게 알려준다.


고독한 밤, 한 줄기 빛이 되어줄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꼭 만나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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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8km의 사랑 - 나폴리와 나의 이야기, 그리고 축구에 관하여
김필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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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28km의 사랑


김필진 작가의 책을 읽는 동안, 낯선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우연이 어떻게 깊은 우정과 사랑으로 변해가는지 지켜보는 듯했다.

특히 나폴리 축구팬들과의 이야기는 단순히 스포츠 기록이 아니라 삶의 뜨거운 온기와 사람 사이의 믿음을 보여준다.


책 속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다.

시장 골목에서 건네는 인사, 갑자기 내린 비 속에서 우산 대신 건네준 파란 우비, 혹은 한국 라면처럼 끓여 먹은 파스타.

하나하나가 거창하지 않은데도 묘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사랑이란 건 늘 이런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남는다.


나는 읽는 내내, 예전에 회사 근처 분식집에서 자주 보던 작은 풍경이 생각났다.

항상 바쁘게 움직이던 주인아저씨가 문득 내 단골 메뉴를 미리 준비해두곤, 오늘은 서비스야 하며 떡볶이를 더 얹어주던 순간.

별것 아닌 친절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날 하루를 버텨낼 힘이 되었던 기억.

이 책이 전하는 감정도 정확히 그랬다.


결국 '8928km의 사랑'은 내게 📦 약간 낡았지만 손때 묻은 머그컵 같았다.

겉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매일 손에 쥘 때마다 따뜻함을 건네는.

사랑도, 우정도, 인생에서 오래 남는 건 결국 이런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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