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J 의사의 병원 일기
최은경 지음 / 에스에스엘티(SSLT)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NFJ 의사의 병원 일기: 잃어버린 시절을 되찾아준 한 권의 위로


의사 최은경 교수가 쓴 'INFJ 의사의 병원 일기'는 의사라는 직업의 전문적인 면모보다는 그 안에 숨겨진 한 인간의 진솔한 고민과 감정을 담아낸 에세이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저자는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다고 말하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떤 시간은 밀도가 높아 무겁고 어떤 시간은 가벼워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는 그의 말은 내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역시 앞만 보고 달리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시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것을 놓쳤다. 일에 매몰되어 가족과의 시간을 소홀히 했고 좋아하는 취미도 잊은 채 오직 성과만을 쫓아갔다. 이 책은 나에게 그 시절의 잃어버린 감성들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책 속에는 의사로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였다. 건강 검진 결과는 이상이 없었지만 환자는 계속해서 아픈 부위를 바꿔가며 고통을 호소했다. 저자는 처음에는 꾀병이라 생각했지만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마음의 문제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던 환자는 불편함이 계속되면 언제든 다시 오라는 저자의 말에 안심하고 돌아갔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는 내 과거의 한 경험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발표 공포증 때문에 한동안 앓았던 적이 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과 발이 떨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신체적인 이상은 없다는 진단만 들었다.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공감과 위로였다. 괜찮아, 조금 떨려도 돼. 너의 생각을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해라는 한마디가 절실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로 그런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항문외과 의사로서 겪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 검진 결과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질문들을 속으로만 품고 살아간다. 변이 가늘어지면 정말 암인가요?, 치질은 수술 없이도 좋아질 수 있나요? 같은 질문들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환자들을 보며 저자는 그들의 솔직함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의사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자들의 마음속 깊은 고민까지도 어루만져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관계와 감정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수술실은 작은 우주 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는 구절은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주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도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서로 협력하고 공감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책을 덮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에서 시작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때론 무언가를 덜어내고 비워내야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잃어버린 시절을 되찾고 다시금 삶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생활적 교훈은 인생도 조금은 허술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때론 아프고 힘들어도 괜찮다. 그런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갈 테니까. 이 책은 나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해줬다. 지친 일상 속에서 나 홀로 방황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