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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라는 돌
김유원 지음 / 한끼 / 2025년 11월
평점 :
김유원의 '심판이라는 돌'은 겉으로 보면 야구 심판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이것이 사실 기계가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시대에 인간이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된다.
주인공 홍식은 베테랑 심판이다. 그러나 절대 오심을 하지 않는 ABS라는 기계 판정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그의 숙련된 감각과 경험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는다. 이 소설은 그 변화 앞에서 한 인간이 겪는 두려움, 자존심, 체념, 그리고 마지막 존엄을 조용하게 따라간다.
전개 방식은 크게 드라마틱하진 않다. 경기장 장면, 심판 교육 과정, 가족과의 관계,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지는데 그 조각들이 쌓일수록 홍식이라는 인물이 선명하게 보인다.
인물을 과하게 미화하지도, 비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판정이라는 단순한 행위를 둘러싼 미묘한 감정... 누군가를 책임지고, 욕을 먹고, 때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그 복잡한 감정을 현실적인 톤으로 잡아낸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의 장점은 현대인의 불안을 야구라는 구체적 직업 안에 단단히 묶어냈다는 점이다.
홍식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옆에서 조용히 일해온 수많은 노동자의 얼굴을 닮아 있다.
기계가 더 정확해질수록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필요한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책은 이 질문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에 오래 머물게 만든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플롯의 큰 굴곡이 있는 서사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술적 설정(ABS의 작동 방식이나 제도적 배경)이 더 깊게 설명되길 바라는 독자라면 약간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묵직한 울림이 있다. 스포츠 소설을 넘어, 인간의 감각과 판단이 가진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일과 존재, 기술 시대의 불안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공감하며 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