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좋은지 몰라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
장성원 지음 / 비버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성원의 '뭐가 좋은지 몰라 다 해보기로 했습니다'는 직업적 방황을 기록한 책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정체성의 탐색기에 더 가깝다. 저자가 일본 유학을 준비하며 새벽까지 인문학 책을 읽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밤에는 공부에 매달리던 장면들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다기보다 꾸역꾸역 버티는 한 인간의 리얼한 시간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꾸역꾸역의 묘사가 책 전체에서 강력한 기능을 한다.

정답을 찾지 못한 채 움직이며 살았다는 저자의 고백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표준 경험을 요약한 듯하다.



■ “내적 동기란, 그냥 하는 거예요.”


책의 한 부분에서 저자는 동기를 외적 동기–내적 동기로 나누며 말한다. 외적 동기는 결과를 향한 욕망이지만 내적 동기는 그냥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이 대목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이 말은 결국 선택 이전의 욕망을 묻는 질문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선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누구나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진실이다.


이 문장은 책 전체의 윤곽을 잡는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느끼는 감정의 결은 다양하지만 그 과정들 사이에는 일관된 움직임이 있다.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하다가 알게 된다는 것, 실패해야 비로소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 “공부하고 일하고 다시 공부하기를 반복하던 시절”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접하며 한계에 부딪히던 경험을 회고하는 장면도 중요하다. 저자는 그때 처음으로 준비 없이 들어간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잠시 멈춰 읽었다.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는 길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선택은 결국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 경험은 책에서 전환점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 실패 이후, 선택을 더 이상 감정으로만 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책을 찾아 읽고, 사람을 만나고, 다시 직업을 탐색한다. 시행착오가 그의 새로운 방식이 된다.


■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써보는 경험”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직장생활을 하며 밤에 글을 쓰고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배우는 경험을 말한다.

이 대목은 실무적 깨달음 이상이다. 저자가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 "나는 진짜 무엇을 원하는가?” 의 잠정적 대답처럼 느껴졌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서 결과물을 끝까지 만들어내는 경험은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대목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 즉 삶은 직접 해봐야 움직인다는 명제를 현실적인 묘사로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적성은 존재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떤 일이 나와 맞는지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실패는 방향을 잃게 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좁혀준다.

저자의 반복된 좌절들이 오히려 새로운 선택의 근거가 되는 구조가 흥미로웠다.


우리는 종종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좋아한다고 확신할 만한 경험조차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은 사람일수록 더 많이 실패해야 한다는 역설.


여전히 나는 선택의 순간마다 망설인다. 이 책이 그 망설임을 없애주지는 않았다.

다만, 망설임과 실험이 공존하는 삶도 얼마든지 성립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이 책은 직업 에세이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다.

성공담이 아니라 부딪혀 본 결과의 목록이기에 더 힘이 있다.

저자의 경험은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 보통이어서 설득력을 지닌다.

그리고 이 보통의 서사는, 지금 자신의 자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