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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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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찮은 책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역량이 오롯이 느껴진다. 클레지오는 음악과 시를 버무린 교묘한 장치로 우리를 끌어들여 끊임없이 허기의 날들을 기억하라고 환기, 아니 주입하고 있다. 

그에게 허기의 날들이란 어머니가 겪은 그 파란만장한 시대사와 그에 휩쓸린 애꿎은 가족사의 격랑, 혹은 잊고픈 과거의 모든 구멍, 허탈한 빈 구석이라 하겠다. 그는 이를 반복적으로 들춰내어 기억의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볼레로의 마지막 소절들을 언급한 대목이다.

내 어머니는 볼레로 초연을 관람했을 당시 당신이 느꼈던 감동과 사람들의 고함소리, 끝없이 외쳐대는 브라보 소리와 휘파람 소리, 공연장이 떠나갈 듯 떠들썩했던 소요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그 공연장 어딘가에는 당신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한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처럼 어머니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내게 고백했다. 그 음악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노라고.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한다. 리듬에 맞춰 점점 더 세게 연주하도록 훈련된, 되풀이되는 그 악절이 당신 세대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나는 안다. 볼레로는 여타의 음악들처럼 하나의 작품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예언이다. 어떤 분노, 어떤 허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음악이 격렬함 속에서 끝났을 때 돌연 뒤따르는 침묵, 그 침묵은 어리둥절한 생존자들에게 공포로 다가온다. (307쪽)

음악회를 보고 온 어머니의 감상을 떠올려 그녀의 억척스럽고 스산했으며 아슬아슬 허기에 찼던 나날들을 오버랩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소설 첫 머리에 인용한 랭보의 시 “허기의 축제”에 대한 변주곡 형식으로 책 제목을 삼은 것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하여 이 작품은 스토리 라인을 즐기는 일독형 소설이 아니라 하겠다. 다시한번 천천히 음악과 시,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아우르는 거대하고 심원한 서사를 음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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