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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백면서생이라 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을 조롱하는 말이 있다. 이그네이셔스 라일리의 모습이 딱 그 꼴이다.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서른 살 만년 백수 주제에 자본주의체제에 대항하여 근로자 봉기를 선동하는 턱도 없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안쓰럽기도 하다. 다들 약삭빠르게 체제에 순응하여 자기 개발입네, 취업이네 하고 제 앞가림에만 골몰하고 있는 지경에서 아직 야생의, 인간 본연의 정서인 동료애와 의협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보이면서 그런 상태로 어찌 세상을 번듯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갓 취업에 성공하여 별 할 일도 없이 빈둥대다 퇴근해서는 자신의 심경을 글로 적은 대목에선 웃음이 절로 났다. 

또 하루의 근무가 끝났도다. 관대한 독자여 지난번에 얘기한 바와 같이 나는 우리 사무실의 소란스럽고 광기 어린 분위기에 말하자면 고색창연한 풍치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사무실의 비본질적 업무들은 천천히 줄어들고 있다. 지금 나는 화이트칼라 꿀벌들(총 세 마리)의 역동적인 벌집을 부지런히 꾸미는 중이다. 세 마리 벌이라는 비유는 사무직원으로서의 내 임무를 가장 적절히 묘사하는 3B를 연상시킨다. (176쪽)

주어진 본연의 역할인 장부 정리와 문서 분류는 깡그리 내팽개쳐놓고 하루 종일 명패를 만들고 자리 위에다 장식물을 붙이는 일로 소일하고선 이리 피곤을 호소하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그 현학적 글 하고는, 

공장은 거대한 헛간 모양의 건물로, 내부에는 피륙과 재단용 테이블, 육중한 재봉틀, 다리미에 증기를 공급하는 화로 들이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인 인상은 다소 초현실적인데, 특히 이런 기계화된 환경에서 레자프리캥이 각자 맡은 일을 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광경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담긴 아이러니가 정말이지 내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조지프 콘래드 소설에서 뭔가가 문득 내 머리에 떠올랐는데, 그때 떠오른 것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 자신을 유럽의 무역회사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공포의 극치와 대면하고 있던 [암흑의 핵심]의 주인공 커츠에 비유했던 것 같다. (179쪽)

이렇게 주제 파악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이그네이셔스지만 그의 행동과 글에는 우리가 매너리즘에 젖어 간과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환기시키고 있어 나름대로 새길 만한 대목도 꽤 있다.

어떤 면에서 나는 늘 유색인종에 대해 일종의 동질감을 느껴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처지가 나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 사회의 내부 세계 그 바깥에 존재하는 부류들 아닌가. (182쪽)

라 하며 인류의 동질감,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랄지, 또 노동 대중의 열악한 환경을 소개하며 사회의 진보를 호소하는 부분은 색다르다 하겠다.

하여 덜떨어진 모습의 이그네이셔스에게서 어쩜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산업사회에 기민하게 적응하여 닳고 닳은 모습이 아닌 인간 본연의 정서를 오롯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들의 결탁]은 바보들의 천방지축 해프닝을 묘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어쭙잖은 모습에서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능란한 처세술로 밥벌어먹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울다 웃게 만드는 묵직한 세대 비평 장편을 읽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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