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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문지 푸른 문학
김도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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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절, 창작의 원천

표절은 이 시대의 화두 가운데 하나다. 키치문학처럼 드러내놓고 표절, 심지어 복제까지 시도하며 원본 비틀기에서 작품성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표절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고 애써 발뺌하려는 분위기가 대세다. 특히 대중음악 창작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실은 모든 창작품이 표절과 복제에서 완전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직접 대놓고 베낀 건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원작의 이미지를 차용한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순수 최초로 이루어진 창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물론 표절을 장려할 수는 없겠지만 완전 금기시하는 것은 예술 창작의 원천을 봉쇄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하여 표절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좀 삼갔으면 한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가릴 건 가리고 받아들일만한 것은 용인해야 예술의 풍성함과 질적인 깊이를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물론 표절자의 윤리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라 할까, 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누구를 사숙했다든지, 어떤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든지 하는 것을 솔직하게 밝힌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니라고 본다. 이 책에는 어린 시절 행했던 표절의 경험을 평생의 업보,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어른 아이가 나오는데 누구나 습작기엔 통과의례처럼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인데 너무 심각하게 여긴 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 기억을 의식에서 애써 지우려했던 게 아닐까?

2. 말 없음의 무게

때론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다. 재잘거리는 숱한 언어들 속에 정작 의미는 사상되고 공허한 발음만 허공에 내뱉는 경우가 대부분인 시대에 차라리 입을 닫음으로 더 깊은 사인을 상대에게, 세상에 발신할 수 있는 것이다. [진부의 송어 낚시]의 고3, 정미는 세상과 절연한 대신 송어에게 심경을 고백한다. 특별한 말로 자신의 절박함을 포장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실은 없는 대상에게 독백하듯, 아니 진정성 있는 상대와 마음을 담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잡지 못한 송어와 함께 떠날 수는 없는 걸까.

얼음구멍 속의 물은 여전히 흐리고 송어는 보이지 않는다.

“담탱이가 마침내 시집을 냈어.”

“......”

“너, 좀 너무하지 않아? 얼굴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냐?”

“......!”

“고마워.”

“......?”

“그냥 고마워!” (208쪽)

아무 대답도 없는 연어의 심경은 느낌표와 물음표로 처리하며 결곡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마치 선사와 제자의 선문답 같다. 하지만 정미가 하고 싶은 말, 정리하고픈 일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살아있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여운이 길게 남는 이 대목만으로도 이 책의 고갱이를 알 수 있을 듯하다. 나도 이런 대화를 나눌 대상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도 메시지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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