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예술이란 새것을 낡은 것으로, 미지의 것을 기지의 것으로, 대척지"를 유럽으로, 경멸스러운 것을 존경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희극적인 요령이다. - P85

그림 한 장에 그런 힘이 있었다는 것이, 간판이 아니라 마치 우리 머리 위에 걸린 마담 기요틴 그 자체라도 되는 듯 그 그림이 나와 카푸아 데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헛수고‘는 우리를 한데 묶어서 파멸시켰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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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건대 이 유형지에는 죄수를 묘사한 그림이 단 한 점도 없으며, 그런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가 매우 가혹한 처벌 대상으로 금지되어 있다. - P60

한 장의 그림, 한 권의 책은 기껏해야 한 채의 빈집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열린 문에 불과할 뿐, 일단 그 안에 들어가면 나머지 부분은 여러분 스스로가 최대한 만들어서 채워넣어야 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곤 여기서 일어난 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 P60

물론 킹이 좀더 외향적이고 남들을 좀더 허물없이 대했다면 나는 그를 더 좋아했을 것이다. 그는 팝조이와 잘 지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내가 사교 생활의 명백한 이점을 들어가며 독려해도, 그에게는 나의 똥던지기나 팝조이의 구타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 이것이 그의선택이며,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안다. 참나무가 버드나무처럼 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킹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어이 친구 잘 만났어!" 따위의 입에 발린 말이 아닌 다른 무엇이다. - P66

나는 온갖 것을 탐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가 살아 있음을, 이름 모를 마을에서 이름 모를 여자에게서 나온 이름 모를 인간이 아님을, 이 빠진 노친네들이 뱃밥에서 뽑아낸 근질근질한 이야기와 싸구려 소책자를 뒤져 하느님에게서 훔친 딱지투성이 옛 노래만이 나를 키운 자양분 전부가 아님을 입증하려면 무슨 힘이든 움켜쥐어야 했기 때문이다. - P75

진정한 악당이 다 그렇듯이. 나 또한 빤한 도둑질을 넘어서는 규모의 발상 앞에서는 그만 깜빡 속아넘어갔던 것이다. - P77

나는 또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표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 정확히 말하자면 장바뵈프 오듀본 자신이 아니라 장바뵈프 오듀본이 쏘아맞히지 못한 새들로부터- 배웠다. 사람들은 자기와 상반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 나는 암흑가의 영국인으로 사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익혔고, 나중에 영국의 암흑가로 돌아갔을 때는 미국인 모험가로 행세했다. 또 이곳 밴디먼스랜드에서는 설령 삼류라 할지라도 ‘외지에서 온 예술가- 물론 여기서 외지란 유럽을 뜻한다-만큼 환대받는 존재가 없는 듯하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유럽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부당하게 학대받은 순진하고 촌티나는 식민지인을 연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P78

나는 오듀본으로부터 그림의 대상이 된 동물에게서 그 본질적인 익살, 긍지나 진실함 내지 야만성, 어리석음이나 광기를 찾아내는 법을 배웠다. 그에게는 그 무엇도 단순한 표본이 아니었다. 온 생명이 그에게 소재의 백과사전이었고, 유일하게 곤란한 과제가 있다면 - 그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음을 그도 인정했다-각각의 소재가 드러내는 진실을 이해하고 그것을 최대한 정직하게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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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수치스러운 몰락에 기진한 나는 콩가의 어두컴컴한 거실에 있는 오래된 적갈색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어느덧 깊이 잠들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 가지 끈질긴 의문이 무한 루프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나는 누구냐....? 그 질문은 묻고 있었다. 나는 누구냐......? - P46

그때 나는 풀잎해룡의 무시무시한 평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상상했지만, 한 일생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그 평정의 이유, 즉 일체의 선도 일체의 악도 똑같이 불가피한 것이라는 인식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해하는 풀잎해룡은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괘념치 않는 듯 보였다. - P51

삶이란 등에 지고 다니며 그 안에서 살다 죽는 무의미한 등딱지에 불과할 뿐이니.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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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난 소울메이트는 안 믿어요. 모든 사람에게 완벽한 한 명의 짝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완벽한 짝은 많고, 가끔은 짝을 찾지 못하거나 두 명 혹은 그 이상을 찾는다고 생각해요. 복불복이죠." - P327

현실에서는 우리가 걱정했던 일과 다른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 P349

우리 모두가 그렇듯 그저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불특정한 인간이었다. 딱히 좋은 사람도, 딱히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잭은 앨리슨을 해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죽이고 싶었다. 앨리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시스템의 작은 부품이었고, 잭은 이 시스템을 조정해야 했다. 이 우주의 업보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중이었다. - P350

그 특별한 시련을 겪은 뒤에 잭은 약간 변했다. 자신이 하찮은 인간일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하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맞다. 이 시기에 해적 협회의 아이들을 죽이고 세상을 바로잡는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 P359

나쁜 사람은 늘 처벌받지 않고, 죄 없는 사람은 지독하게 고통받는다. - P376

나도 그 무고한 여덟 명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행성에 거주해온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나의 작은 보복 행위는 미미할 테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다. 악을 악으로 갚아봐야 좋을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도 억울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 P377

나 역시 내 동생의 죽음에 죄가 있으니 그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마땅했다. 앞으로 내가 맞이할 죽음이 그렇듯이.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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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요?" 그녀가 물었다.
"죽는 거요?"
"음, 그냥 죽는 게 아니라 곧 죽을지 모른다는 거요. 우리가 명단에 올랐기 때문에 죽는다는 거." - P202

"확실히 긴장은 돼요. 하지만 사실 난 매사에 긴장하며 살았어요. 수업할 때마다 긴장하고, 카페에서 주문할 차례가 됐을 때도 긴장하고, 일주일에 한 번 엄마에게 전화할 때도 긴장해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라곤 텔레비전에서 봤던 프로그램과 전날 저녁에 했던 요리가 전부인데도. 하지만 이제 정말로 긴장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죽어가는 사람들 명단에 내 이름이 올랐으니, 이번에는 긴장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 감정이 현실과 일치하는 듯해서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어요. 이게 말이 되나요?" - P203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매사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비록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요." - P204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척하지만 사실 그건 피부색이 어떻든 권력자들이 당신을 기꺼이 엿 먹일 수 있다는 뜻에 불과했다. - P211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서늘한 안개 때문에 등대 너머로 펼쳐져 있을 바다조차 보이지 않았다. 등대에서는 램프가 돌아가고 주기적으로 경적이 울렸다. 마치 해안선을 따라 회색 커튼이 드리워진 듯했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았다. 마치 세상이 어떤 지점 너머로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처럼 텅빈 공간을 바라보는 듯했다. - P215

"생각하기 싫어서였겠지. 그 때문 아니겠니?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보통 그거잖아." - P229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우선 그녀의 아버지와 아서 크루즈의 아버지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그리고 둘이서 뭔가 나쁜 짓을 저질렀다. 그 나쁜 짓이 무엇이든 간에 그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제시카는 확신했다. - P230

마거릿이 대학에서 에릭과 만난 이야기를 좀더 자세하게 들려주는 동안 잭은 왜 착한 여자는 꼭 나쁜 남자와 엮이는지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는 아니더라도 미스터리임은 분명했다. 에릭은 당연히 그가 느낀 첫인상과 일치하는 인간일 것이다.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상대에게는 잘난 척하고, 자신보다 힘이 세다고 믿는 상대에게는 굽실거리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깡패. 에릭은 이 가여운 여자가 그의 곁을 떠나거나 신경쇠약에 걸릴 때까지 들들 볶을 것이다. 함께 보낸 시간이 채 십 분도 안 되는 사람을 두고 억측이 지나치다는 건 잭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다. - P248

잭은 죽는다는 두려움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는 해도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 P252

운동화를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제러미의 모습은 제이에게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타인에겐 상처지만 자신에겐 기쁨이 되는 일을 남몰래 해낸 것이다. 그 순간이 그에게는 전환점이었다. - P266

"어디선가 읽었는데, 인간은 사실 자기 죽음을 상상할 수 없대요. 만약 상상할 수 있다면 두려움에 마비될 거라고 하더군요." - P269

"예전에 정신과에 다닐 때, 아마 닥터 페니였을 텐데, 선생님이 그러더구나.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우울증의 장점은 기억력이 떨어지는 거라고. 내 삶에서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까 기억할 가치가 없는 일들이었어." - P281

외로움의 끔찍한 점은 항상 타인으로 치유되지만은 않는 것이라고 잭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쨌든 그의 경험으로는 그랬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웠다. 그는 거의 평생 그런 외로움을 느끼며 살았다. 오래전 누이가 죽은 뒤로, 그리고 부모님이 그 상실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뒤로. - P287

"친밀감을 결정하는 것은 시간이나 기회가 아니라 오로지 성향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칠 년이라는 시간도 서로를 알아가기에 부족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칠 일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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