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회사에서 시위하는 여자를 내몰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세웠다고 했다. 바리케이드 밖으로 밀려난 여자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잰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당신은 식은땀이 났다고 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비겁해지는 나 자신이 두려워. 당신은 어느 날 밤, 침대 위에서 내 손으로 당신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 - P245

피로감에 잠식당해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줄었다. 우리는 익숙한 얼굴의 이웃만큼만 친밀했고, 오래전에 헤어진 남매처럼 서먹했다. 서로의 탓이 아닌 것쯤은 알았는데도 과로의 시간이 누적되고 서운함이 켜켜이 쌓이면서 우리는 새된 목소리로 싸웠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렇게 내 마음을 모를 수가있어. 빗나가고, 빗나가고, 빗나가던 마음들. - P249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말을 받아 적는 것은 처음이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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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기억력이 단 삼 초뿐인 생명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불현듯 궁금해져. 삼초 후면 소멸될 것이 자명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삶은 훨씬 수월해질까. - P169

아니, 어쩌면 지금의 행복과 짜릿함이 삼초 후면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에 삶은 고통의 연속이 되어버릴지도. 분명한 것은 기억이 오직 삼 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생명에게 역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거야. 그렇지? 결국에는 사랑도, 슬픔도, 아니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마저도. 그것들은 모두 기억에 의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 P170

나의 기다림이 우리 관계를 지속시켜준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어. 알고는 있지만, 있잖아. 아주 가끔은 가슴이 아파. 때로는 당신이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 P171

사실 사랑이 식는데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만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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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은 의지보다 언제나 강했다. - P149

행복에 겨운 사람은 타인의 불행 앞에서 무감해지는 법이었다. - P151

우습게도 상대가 나보다 더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면 할수록 나는 상대에게 더욱 관대해졌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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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따라 피부색을 바꾸는 도마뱀처럼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과 닮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가 결국 나를 보호해 주리라는 것을 아주 이른 나이에 깨우친 편이었다. 나는 결코 남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 P114

세계를 향한 최초의 발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린 것은 어쩌면 그 무렵인지도 몰랐다. - P121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 더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은 공유되었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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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그리 크지 않은 남자가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어딘가로 바삐걸어가는 모습을 보다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분초를 아끼며 뛰어다녀도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 삶. 그게 바로 그의 삶이었다. - P77

그녀는 그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됐다. 그것이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그가 즐겨 찾는 술집과 밥집에 이끌려 다녔고, 그의 친구들을 만났으며, 그가 읽으라는 책을 읽었다. - P80

물론 그들에게도 고민이나 괴로움은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그들에게는 신념이 있었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 P80

간혹 술에 취한 그를 바래다줄 때 보았던 자취방은 몹시 비좁았고, 책장이 모자라 아무렇게나 쌓여 있던 책들 탓에 미로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까봐 단 한 번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P80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송두리째 변했을 어떤 사람들의 절망감과 두려움이 서서히 그녀 안에서 출렁이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그토록 무감해지도록 그 사회를 도취시켰던 감정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 P83

만약 정말 바그너가 파쇼의 아버지고 그의 반유대주의가 나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면, 수많은 죽음이,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한 인간의 병든 마음을 토양 삼아 자라났다는 말인가. 그것은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도대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 P89

그는 때때로 그가 믿는 정의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눈 속에서 빛나던 차가운 불꽃. 그렇지만 옳고 그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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